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열린포럼] 진정 난 몰랐네- 이용민(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

  • 기사입력 : 2022-11-21 18:59:01
  •   

  • 지난 주말,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인 윤이상의 ‘심청’을 관람했다. ‘심청’은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축전의 일환으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로부터 위촉받은 작품이다. 독일에서의 초연 이후 반세기가 지났고 1999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의 국내 초연 이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사이 자주 무대에 올리지 못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곡의 난이도가 상당해 엄두를 내기 쉽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장에 가보니 통상 오페라 작품 준비기간의 3배가 넘는 약 6개월을 꼬박 이 작품에 쏟아부은 관계자들의 열정과 출연진들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주역 가수부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등 모든 출연진들과 제작 전 과정이 거의 대구 음악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져 ‘메이드 인 대구’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통영과 대구는 국내 둘 밖에 없는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이다. 통영이 2015년, 대구가 2017년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두 도시는 전혀 다른 행보를 해왔다. 통영이 현대음악 중심의 새로운 음악 창발지로서 단일품목의 생산성과 품질유지에 주력해 왔다면, 대구는 한해 500명이 넘는 음악 관련 전공자들의 배출과 특색 있는 공연장들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음악환경을 만들어 왔다. 오페라축제도 이미 서울에 경종을 울리며 새롭게 준비 중인 부산에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특히 이번 축제의 전반부를 책임지며 오페라 애호가의 찬사를 받은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프로덕션은 대구오페라축제의 과감한 도전이 읽히는 부분이라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편 ‘심청’도 2024년 불가리아 소피아국립극장, 헝가리 에르켈국립극장, 이탈리아 볼로냐시립극장에 이어 2026년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까지 해외투어 일정이 미리 잡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정갑균 예술감독의 말을 빌자면, “유럽 공연을 위해 극장 관계자를 만났을 때 윤이상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결정을 내리는데 대부분 5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윤이상의 유럽 내 위상에 대해 새삼 놀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오페라를 보고 난 후 로비에서 만난 지인이 “이 작품이 50년 전 창작물이라는 게 우선 놀랍고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작곡가에게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문화행사의 메인을 아무 편견 없이 맡긴 독일인들에게 경의를 보내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돌이켜 보면 통영국제음악제와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각각 2002년과 2003년 시작되었다. 통영국제음악제의 메인홀인 통영국제음악당은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재단이사장을 맡으면서 시작된 사업이고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삼성이 제일모직 부지를 내어 놓으면서 건립해 기부채납한 것이다. 문화의식이 있는 기업인들과 지역민 그리고 전문가들의 열정에 시간이 곱해져서 비로소 오늘날 문화강국에 일조하는 결과까지 내어 놓은 것이다.

    윤이상이 독일로부터 작품을 의뢰받고 왜 하필 ‘심청’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그의 부인 이수자 여사는 “세계대전과 각종 국지전들이 잦아들고 불과 10여년 지났을 때 뮌헨올림픽 준비를 했는데 그때는 전쟁의 여파로 전 세계가 가족의 해체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때여서 남편은 효녀 심청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들려준 적이 있다. 최근 이런 그를 빨갱이라는 원시적 용어로 가두고 그의 음악적 업적까지 폄훼하는 일들이 도청과 통영시 일원에서 벌어졌었다. 지난 시절, 간혹 있어 온 일이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20세기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독일정부로부터 대공로훈장을 받으며 대음악가로 인정받았던 윤이상이 그의 이름에 기대 20년간 성장한 축제와 지자체의 문화적 상징 앞에서 K클래식을 선도하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그런 대접을 받을 줄은 진정 난 몰랐다.

    이용민(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