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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1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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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산 이은상은 3·15의거를 폄하하지 않았다 - 오하룡 (시인·마산문협 고문)

  • 기사입력 : 2022-11-24 21: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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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지역에는 노산 이은상이라는 걸출한 문화 보물이 있다. 사실 이 보물이 있어 우리 지역이 예향이니 시향이니 불러지고 있다. 헌데 지역 보물이라면 흠이 좀 있더라도 그 흠집을 덮고 감싸야 인지상정인데 없는 흠집을 만들려 해서 문제다. 그 내용 중 3·15의거를 들먹일 때 앵무새처럼 인용하는 상용문구가 있다.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등이다. 이 문구는 실로 불순하게 과장된 것으로 노산은 3·15의거를 폄하하지 않았다. 이 문구의 출발은 조선일보 1960년 4월 15일자 설문이다. ‘마산사건의 수습책’이란 6개 항목의 내용과 노산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1)마산사건이 촉발된 근본 원인은? (2)마산시민들의 시위가 확대돼 가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3)지금까지의 당국의 수습책을 옳다고 보시나요? (4)마산사태를 시급히 수습하자면? (5)마산시민에게 보내고 싶은 말씀은? (6)당국에 하고 싶은 말씀은? 여기에 대한 노산 선생의 답변은 1항;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다. 2항;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다. 앞으로는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항; 역시 관의 편견이 너무 강했던 것 같다. 비상시 정치에는 무엇보다 성실과 아량이 필요하다. 4항; 정부에서도 비정상적인 사태 앞에서는 비정상적인 방법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야 지도자들은 좀 더 냉정한 지도 정신을 발휘해야 하며 좀 더 ‘스케일’이 커야 한다. 5항; 내가 마산 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 분개한 생각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마는 무모한 흥분으로 일이 바로 잡히는 법이 아니다. 정당한 방법에 의하지 않으면 도리어 과오를 범하기가 쉽다. 6항 답변;(생략)

    이 설문에서 노산의 답변은 ‘3·15의거 개념’ 이전의 ‘마산사건 마산사태’를 말한 것이고 3·15의거 계기를 만든 당시 자유당 정부의 잘못을 통쾌하게 지적하고 확고한 애향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노산 선생은 1982년 타계해 3·15가 일어난 1960년부터 1982년까지 생존한 22년간은 3·15와 밀접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헌데 이 기간 동안 위의 내용을 이유로 그가 3·15의거를 폄하했다는 그 어떤 기록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간 동안 그는 1963년 9월 20일 4·19기념묘지에 건립된 4·19학생기념탑 비문을 썼다.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중간 략)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이 글을 보면 노산만큼 당시의 사정과 분위기를 잘 이해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합리적인 절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오하룡 (시인·마산문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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