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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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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관습법도 법인가요?- 정성헌(경남대 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2-11-27 19: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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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은 국회에서 만들어진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만이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의해 법은 그 자체로도 지켜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게 되고, 정부나 법원은 그 법을 집행하거나 그 법에 따라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그런데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률 말고 관습법이라는 것도 있다. 관습법은 그 사회에서 존재하는 관습에 대해 규범력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법이라는 것이 세상의 준거를 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쩌면 관습법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규범일지도 모른다. 근대법전의 형성 과정에서는 관습법의 규범력을 부정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관습법의 규범력을 인정하는 것 또한 이런 점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관습법의 규범력을 인정한다. 사람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일반법인 민법에서는 관습법의 규범력을 인정하고 있다. 제1조에서는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한다고 하고, 제185조에서는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두 규정은 법률과 관습법의 관계에 있어 상치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어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관습법이 법률과 마찬가지로 규범의 한 종류임은 명확해 보인다.

    문제는 관습법은 그 생성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은 우리가 만든 법이기에 그 규범력에 있어 당위성을 가진다. 하지만 관습법은 그렇지 않다. 관습법은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법원 등 사법기관이 이를 인정함으로써 확인된다. 관습법은 그 특성상 사람 간의 관계인 사적 영역에서 많이 인정될 수밖에 없는데, 법정지상권이라는 권리가 관습법에 의해서도 인정된다. 법정지상권은 경매 등으로 인하여 토지와 건물의 주인이 달라질 경우 건물을 존속시키기 위해 인정되는 권리이다. 이 법정지상권이라는 권리는 물권으로 법률의 규정에 의하지 않고서는 인정될 수 없는데(민법 제185조), 법정지상권에 대한 민법 제366조는 임의경매만을 대상으로 할 뿐 강제경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임의경매와 강제경매는 경매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다를 뿐, 그 구조는 동일하며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도 유사하다. 만약 강제경매의 경우에 법률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법정지상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의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 법원은 그 빠진 경우에도 관습법에 의해 법정지상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결과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관습법이 항상 위와 같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관습법이 이 사회의 새로운 규범이 되거나, 기존의 질서를 바꾸기도 한다. 예전에 우리의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된 문제에서 ‘서울은 한국의 수도’라는 관습법을 승인한 바 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관습법이 인정되는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그 사회의 상식 혹은 합의라고 볼 수 없는 관습법의 인정은, 그 자체로도 부자연스럽거니와, 실제로도 우리 사회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관습법은 그 속성상 그 사회의 상식을 반드시 반영하여야 하며, 관습법의 규범력도 이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경우에라도, 법원이 관습법을 인정하고 이에 따라 판결을 하는 경우는 사법기관인 법원이 입법행위를 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때문에 관습법의 인정은 전체사회의 상식이 반영되었다고 명백히 볼 수 있는 경우에만 인정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관습법은 그저 원하는 결론을 근거짓기 위한 ‘별도의 입법절차가 필요 없는’ 손쉬운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정성헌(경남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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