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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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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염소와 논다- 정연수(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2-12-22 21: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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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쁘고 앙증맞은 귀한 선물이 내게로 왔다. 내 삶을 빛나도록 해 준 선물은 나를 할머니로 만들어준 아기이다.

    “염소 보여줘, 앙앙!”

    세차게 울어대는 아기는 손전화기 저 건너편에 있다. 겨우 몇 마디밖에 말 못 하던 아기는 어느새 깜짝 놀랄 만큼 어려운 말도 할 줄 아는 마술 아기가 되었다.

    네 살배기의 아기, 나의 예쁜 손녀, 화상 전화에 콧방울이 발름발름, 포도알같이 까만 아기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한 바가지다. 아기가 우는 안타까운 모습, 귀엽게 애교부리는 모습, 가까이 옆에 있는 듯 다 볼 수 있어 손전화기의 덕택에 삶이 한층 풍요로워졌다.

    예쁜 아기 아버지는 내 아들이다. 가끔 만나는 할머니와 아기가 낯설어하지 않게 하려고 통화를 영상으로 돌려놓았다. 이렇게 영상으로 보게 되어 자주 만나진 못해도 할머니와 손녀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어 행복이 배(倍)가 되었다. 만나면 품에 꼭 안겨 와 포근한 아기의 체온을 느끼며 할머니가 된 것이 축복이 되어 고마운 마음 가득했다.

    네 살 되더니 아기는 어느새 장난꾸러기 개구쟁이로 자랐다. 맘대로 안 되는 일에는 마냥 억지를 부리고 심술퉁이가 되고 말았다.

    괜히 염소가 있다는 얘기를 했나보다,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주절주절 말해 준 것을 아기는 진짜 염소가 있는 줄 알았고 지금 떼를 쓰고 있다.

    “염소가 그만 달아나 버렸네, 할머니가 우리 공주님을 더 사랑하는 줄 알아챘나 봐.”

    나는 염소가 없다는 것을 여러 번 말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아기는 계속 염소를 보여 달라 조르고 끝내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큰 소리로 울었다.

    내게는 한 마리의 염소가 있다. 오래전 내가 교사일 때 반 아이가 들려준 얘기에서 만나게 된 한 마리의 염소는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염소는 나를 편히 숨 고를 수 있게 하였고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내 염소를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까운 아쉬움이다.

    “나도 그 염소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좋겠구먼,”

    물론 남편은 나한테 염소가 없다는 것을 이미 훤히 알고 있다. ‘염소’라는 자체가 꾸며낸 하나의 환상이라는 것을 말 안 해도 알아챘기 때문이다.

    “참으로 당신은 알 수 없는 사람이오! 굳이 그까짓 염소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 말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달 속에 옥토끼가 있다고 생각하니 달이 아름다운 거지요.”

    말도 안 되는 나의 대꾸에 남편은 내 유아적 기질을 이해하려 했고 흐름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감성을 사람들과 아우러져 살게 일깨워주려고 무던 애를 쓰며 살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한 가지의 ‘값’이 필요하다. 물질이거나 정신이거나 또는 그 어떤 것일지라도, 내가 ‘염소와 논다’는 것은 삶 자체가 되기도 하고 나의 가치관을 나름의 색깔로 색칠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우 허깨비 같은 짓인 줄 알지만, ‘그까짓’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긴 해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내 예쁜 아기가 더 자라면 산들바람 부는 들판에서 염소랑 노는 할머니의 마음을 가늠할 줄 아는 날이 오려나! 지그시 눈을 감고 할머니의 염소와 노니는 아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정연수(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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