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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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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보며] 궤변- 양영석(지방자치부장)

  • 기사입력 : 2022-12-27 19: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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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궤변(sophistry)이란 얼핏 들으면 옳은 듯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둘러대어 논리를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의 변론을 말한다.

    궤변을 잘하는 사람을 궤변론자, 궤변가라고 하는데, 기원전 5~4세기 그리스에서 출세를 위해 필요한 변론술·처세술 등을 가르치고 교습비를 받으며 살아가는 지식인층인 ‘소피스트’가 원조다. 본디 ‘지혜로운 사람’을 뜻했지만 후대에 이르러 ‘논리적인 규범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는 유명한 궤변이다. 거북이보다 10배 빠른 아킬레우스가 10m 앞에서 출발한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 아킬레우스가 10m 갈 동안 거북이는 1m 전진, 다시 그가 1m를 가면 거북이는 또 0.1m 앞서가는 식으로, 끝끝내 미세하게나마 뒤처진다는 주장이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궤변이지만, 당시 수학 수준으로는 논리적 반박이 어려웠다. 나중에 무한론이 정립되면서 논파가 가능해졌다.

    동양에서는 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인 명가(名家)의 학자 공손룡의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이 널리 알려진 궤변이다. 말이라 함은 형체를, 희다 함은 빛깔을 가리키는데, 빛깔을 가리킴이 곧 형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백마는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제논과 공손룡 같은 사람들이 환생했는지 요즘 정치권에서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한 정치인이 ‘법인세가 인하되면 재벌이 아니라 주주와 종업원, 협력업체가 혜택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일면 그럴듯하지만 따져보면 궤변이다.

    법인세 감면 혜택이 종업원, 협력업체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억측이다.

    비슷한 논리로 MB정권 때 ‘낙수효과’가 있다. 성장을 통해 부의 절대적인 크기를 늘리면, 자연스럽게 누구나 다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부유층의 소득 증대가 유발하는 소비와 투자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저소득층도 그 과실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윗물은 고이기만 했지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만 늘었을 뿐이고 중소기업·자영업자·서민들은 별 혜택을 보지 못했다.

    일반 주주는 어떨까. 법인세 인하 효과로 얼마간 배당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득을 훨씬 많이 챙기는 쪽은 대주주다. 상장기업의 경우 주주 다수가 외국인들인데 감세 혜택이 그들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

    ‘다주택자에게 중과세하면 임대물량에 비용이 많이 들게 돼 영세 임차인에게 세금 전가(임대료 인상)가 일어나게 된다’라는 주장도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세금 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궤변성 발언이다.

    세금이 줄었다고 임대료를 깎아줄 선량한 임대인은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임대료는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즉 임대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으면 오르고, 반대의 경우 내린다.

    다주택자를 임대업자로 특정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집값 상승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택시장을 왜곡시키고 서민들에게 주거공간이 고루 돌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감세해 줄 것이 아니라 중과해 여분의 집을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이상한 논리로 억지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난세의 방증인 것 같아 씁쓸하다.

    양영석(지방자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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