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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몇 초의 포옹- 조남숙

  • 기사입력 : 2023-01-01 23: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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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는 사람이 없어야 폐허가 된다. 역사의 한 부분을 떠들썩하게 채워 넣던 도읍지였을망정 인걸이 간데없어지면 폐허가 된다’(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 지음 / 효형출판, 2014)는 문장에서 폐허를 생각한다.

    사람은 공간에 에너지를 채워 넣는 중요한 유기체다. 유기체는 공간에 모여 구분 불가능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공간 속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사람의 힘은 달콤하면서 힘이 있다. 사람 구경 할 수 있는 시장이나 백화점, 극장이나 공연장, 그 어떤 장소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우주 그 자체다. 그중에서 움직임이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곳이 계단이다.

    나에게 세종문화회관은 정신세계의 중심이었다.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의 명맥을 이어 예술의 통로가 되었던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은 나의 설익은 청춘을 낙과로 만들지 않은 곳이다. 예술 공연 보는 일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친구를 만났고 사랑과 이별을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로 통한다는 생각의 전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그 계단에서 알았다. 세상으로 향한 창이 계단마다 있었다. 층층 계단에서 사람의 시선을 마주했고 사연의 주인공을 만났으며 내일로 향한 발걸음을 연습했다.

    완만한 계단은 부드러웠다. 그곳에서 불안한 현실이 묘한 의식으로 변화하곤 했는데 그 의식은 벽과 지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 계단 같은 것이었다. 계단에 앉아서 친구가 타고 올 버스를 기다렸고 흔들리는 거리의 소음을 즐겼다. 계단에 오르며 누군가를 찾는 사람의 얼굴에서 설렘을 보았고 앞에 앉은 사람 뒷모습에서 기다리던 이에게 손을 흔들며 알은체하는 반가움을 느꼈다. 특히 어스름 저녁노을이 번지는 시간이 되면 울렁대는 감성들이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세종로에 있는 모든 생태계의 심상이 공기의 파동과 춤을 추었다. 그러다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단속적인 말들은 소음과 섞여 즐거운 탄성이 되곤 했다. 마음속에 간직한 신뢰나 의심, 성취감이나 미숙함까지도 의식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공간의 생태는 개인의 경험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로 순환하며 섞인다. 시대 변화에 따라 사회 구성원은 종종 누군가의 배경이 된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경험들은 새로운 낱말을 배열하며 가치 있는 문구를 창조한다. 창조된 문구로 이어진 이야기는 쉼표와 마침표로 예기치 않은 이야기를 완성한다. 문장은 오선지에서 리듬을 타고 있는 음표처럼 온몸으로 느껴지는 변화를 표현한다. 순환되는 이야기는 공간을 확장하기도 축소하기도 하는 마법 같은 일이다. 새벽부터 밝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던 마음은 기어이 떠오르는 해 같이 빛났다.


    계단에서 사람들이 스친다. 스치다 멈춘다. 멈추고 바라본다. 그러다 계단에 자리를 잡는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하늘을 보면 멀리서 몰려오는 두려움으로 침묵할 때도 있다. 웃음이 나는 일상이 울음으로 겹쳐 보이기도 한다. 눈물 섞인 이야기를 나누다 허공으로 이야기를 던지기도 한다. 복잡한 마음을 담아 던진 이야기의 꼬리가 종내 사라지기 시작하면 슬슬 엉덩이를 들썩인다.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오면 옷깃을 여미고 떠날 준비를 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잠시 고요하게 정지하는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게도 하는 계단은 귀 기울이는 장소이며 기다리는 장소다.

    시간이 흐르면서 곳곳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섰고 그곳에 각자의 목적과 취향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생기가 있다. 새로움을 탐하는 모습은 신선하고 풍요로우며 사실적이다. 세월이 지났건만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그 장소를 채우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해도 계단은 그 자체로 성실하게 품위를 지닌다. 모든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존의 장소로 말이다. 안과 밖을 나누는 문이 없으니 모든 이의 입장이 가능한 곳,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각각의 아름다움으로 공존하는 세상은 어디로 흐를지 모를 바람 같다. 때로는 바람도 무리를 지어서 다니듯이 개인의 속성으로 이루어지는 무리는 생존의 예술이다. 누군가의 무엇으로 이름 지어져 자기의 이름이 불리는 것처럼, 누군가의 누군가가 되어 뿜어져 나오는 힘은 매우 강하다. 힘의 교차점에서 불꽃이 튄다. 그것이 바로 삶의 환희, 자기 자신이다.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하는 세상은 건강하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의 공존으로 개인의 취향이 결정되지만, 취향은 언제든지 변화를 가져온다. 싫었던 것이 좋아지는 현상처럼, 미움과 사랑이, 슬픔과 기쁨이, 아픔과 평안함이, 단순함과 복잡함이 얽혀 만물이 소생한다. 더운 여름날의 기억이 추운 겨울날에 소환되듯이, 아름다운 추억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난다. 지극히 이기적인 개인의 욕심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인간의 양심으로 공존한다.

    계단에서 생각한다. 계단에 번호표 없는 좌석이 얼마든지 있으니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옛 도읍지의 인걸이 되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열린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이 장소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역사성을 지니듯 앞으로도 개인의 일상으로 이곳은 채워지고 비워질 것이다. 각각의 장면이 역사의 무리를 이루며 이 시대를 만질 것이다. 코로나로 애석했었던 현실도, 무겁고 구부러진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일들도, 역사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도심의 새로운 건축물이 자본의 산물이라면 역사성을 지닌 오래된 건축물은 정신의 산물이다. 자본의 정신이 어디선가 뚝, 떨어진 가치가 아니듯이 전통을 느끼는 일도 마찬가지다. 옛 도읍지에서 많은 사람은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타인을 향한다. 그리고 포옹한다. 시대 감각을 느끼면서 미래로 향한다. 전통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역사 공간에서 과거의 빛을 본다. 그 빛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의 우리들은 함께 손을 잡고 걷는다. 어깨를 어루만지며 삶의 역동성을 교환한다. 잠깐의 포옹으로 숨결을 나눈다. 편안한 숨결이 삶의 위로가 된다.

    인적이 간데없는 옛 도읍, 계단에서 기다린다. ‘코로나’라는 낱말이 추억이 되는 날을, 몇 초의 포옹이 하늘의 별처럼 빛나기를. 사람의 숨결이 폐허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음을 기다린다. 그리고 숨결도 문양이 되어 공존의 그림자를 만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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