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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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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가벼운 문학, 무거운 문학- 서형국(시인)

  • 기사입력 : 2023-01-05 19: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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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니 낯선 문학지가 우편함에 있다. 펼쳐 보니 이름만으로도 알 만한 유명 시인의 작품이 특집으로 잡혀 있고, 갈래별 작품들이 꽤 구성지게 자리를 메우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문학지지만, 이어진 탐독의 무게는 점차 무거워졌다.

    다음 날도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니 낯선 문학지가 우편함에 있다. 펼쳐 보니 익숙한 구성인데 갖춰진 살은 물렁하기만 하다. 그 맛이 썩 좋지 않아 불편한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고, 투덜거리는 혼잣말은 점차 가벼워졌다. 물렁한 문학지는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지가 쏟아진다. 그중 대다수는 하늘 위 인공위성과 닮았다. 별은 유심히 바라보면 스스로 반짝반짝 빛난다. 인공위성은 그런 별을 흉내만 낼 뿐 반짝이지 않는다.

    그런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인공위성을 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인공위성만 보고 자란 아이들은 더 이상 별의 가치를 모르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밤하늘이 수많은 인공위성 덕분에 더욱 빛난다고 하는 사람은 있을까.

    문학지가 쏟아지는 이유를 이해한다. 과거에 비해 평균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문학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욱 많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작가로 등단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다 보니 그 욕구를 충족하고자 우후죽순 문학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의 많은 나라가 우주로 향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위성으로 별자리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큰곰자리가 아닌 큰콤자리를 만들곤, 스스로에게 혹은 많은 투자를 한 문인에게 큰콤자리 문학상을 준다. 그후에도 습작 수준의 작품을 그들끼리 내놓고 문인 대우를 해주며 서로의 입지를 굳힌다.

    이어 그게 정답이라 주장하면 정답이라 믿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그들은 정기구독료, 찬조 등에 이용된다. 결국 진짜 별들은 이런 부류를 ‘그들만의 리그’로 간주하고, 이해하기 힘든 게 문학이냐며 폄하까지 하면서 문학과 예술을 자신들의 눈높이에만 맞추는 행태를 품어줄 수 없다고 한다.

    예로부터 문학지는 작가들에게 배움의 수단이다. 깊이 있는 필력은 읽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작품을 배척하고 읽지 않는 작가는 결코 빛날 수 없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결코 쉽게 쓴 시가 아님에도 시는 쉬워야 한다고, 쉬운 시가 좋다고 그들 스스로 암묵적 합의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겨우 자신한테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들리는 만큼 알아듣는 것이 예술이라면 세상에 예술 아닌 것들이 그리고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그중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고 외로이 창작에 임하는 문인들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문학지도 존재한다. 이러한 문학지는 오늘날 고령화된 문인사회에 정말 필요하지만 다른 문학지에 가려 조명받지 못한다.

    오늘밤 책상에 앉아 오래된 문학지와 가슴에 박힌 문학지를 펼쳐 별을 헤아려 본다. 시 하나에 추억과, 시 하나에 사랑과, 시 하나에 쓸쓸함이 있다.

    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반짝반짝 빛난다. 좋은 문학작품도 세월을 초월해 빛난다. 그렇다면 문학의 무게는 별 하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서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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