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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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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일본 패전의 원인- 차상호(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23-01-16 19: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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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양전쟁에서 전쟁 초반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일본이 미국에 패한 이유는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다. 원자폭탄이 결정적인 항복의 이유라고 하지만 그 이전 도쿄 대공습, 소련의 참전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일본의 ‘인명 경시’가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로 전환을 맞긴 했지만 태평양전쟁 개전 당시만 해도 일본의 해군 전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항공모함 숫자는 물론 전력 또한 미국을 앞섰다. 제로센이라 불리는 ‘0식 함상 전투기’에 더불어 급강하 폭격기인 ‘99식 함상 폭격기’, 뇌격기(어뢰 공격기)인 ‘96식 함상 공격기’ 등 항공 전력은 막강했고, 더불어 중일전쟁부터 풍부한 실전경험을 갖춘 베테랑 파일럿의 존재는 그야말로 위협적이었다. 반면, 미국은 항모도 부족했지만, 와일드캣을 포함한 함재기의 성능이나 파일럿의 역량도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미사일과 로켓이 아직 나오기 전 이른바 근거리 ‘도그 파이트’에서 기동력이 뛰어난 제로센은 최강의 전투기였다. 항속거리도 미군의 전투기를 압도했다. 항속거리가 길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먼저 적을 향해 함재기를 투입하면 상대가 준비하기도 전에 기습을 할 수 있고, 일본은 이를 십분 활용했다. 아직은 레이더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던 때였다.

    영화 ‘탑건’ 1편에서 매버릭(톰 크루즈)은 개인적인 기량은 월등했지만, 훈련 이후 아이스맨(발 킬머)에게 비난받는다. 질투가 아니었다. 교전수칙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편대 단위로 전투가 이뤄지고 윙맨과 상호협력해야 하는데 매버릭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 동료를 잃는다. 이런 교전수칙이 처음 나온 것이 바로 태평양전쟁에서였다.

    지미 태치 중령은 제로센과의 교전에서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태치 위브’라는 전술을 개발하고 효과를 거뒀고, 이는 미국 파일럿들에게 교전수칙으로 전파된다. 일대일 도그 파이트가 아니라 협업을 통해 한 대는 유인하고 동료가 공격하는 이 방식으로 미군은 전투기와 파일럿 역량의 열세를 극복했다.

    미군은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신형 기체를 내놓으면서 항공 전력도 강화했다. 헬캣이나 커세어 등 훌륭한 전투기도 생산됐지만, 이와 함께 파일럿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미군은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갖춘 베테랑 파일럿을 전장에 두는 대신 본국에 교관으로 보냈다. 그들이 신참 파일럿들을 양성했고, 이렇게 양성된 파일럿들은 곧바로 실전에서도 우수한 능력을 발휘했다.

    반면 전쟁이 진행될수록 그 우수했던 제로센과 파일럿의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로센의 경이로운 기동력은 극도로 가벼운 기체 덕분이었다. 구멍 투성이 골조는 내구성이 떨어졌고, 연료탱크 역시 조금만 피탄돼도 불이 붙었다. 조종석 뒤쪽 장갑판도 없었다. 반면, 미군기는 조종석 주변으로 방탄판을 설치했고, 연료탱크 역시 피탄돼도 메워질 수 있도록 설계됐다. 파일럿의 생환율은 차이가 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일본은 베테랑 조종사 손실이 갈수록 커졌고, 당장 전투를 위해 파일럿 양성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으며, 종전이 다가올수록 양국 파일럿의 기량 차이는 극명해졌다. 여기에 일본의 ‘가미카제’ 전술은 소중한 파일럿을 도구로 취급한 것을 넘은 광기에 가깝다. 그들의 뿌리 깊은 ‘인명 경시’ 풍토는 스스로를 패배로 이끌었던 중요한 요인이다. 전쟁사를 통해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이다.

    차상호(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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