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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사과할 결심- 이지혜(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23-01-19 19: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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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을 내보낸 한 방송 프로그램은 다음 방송 전 화면에 시청자 사과문을 먼저 띄웠다. 한때는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폭로가 이어진 연예인들이, 코로나 유행 땐 방역수칙을 어긴 유명인들이 줄줄이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나 역시 첫째와 둘째가 다투는 날엔 어김없이 둘을 불러 세워 다그친다. “둘이 얼른 사과해.”

    ▼사과를 제때, 얼마나 잘하느냐는 기업의 위기 관리 능력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갑질 논란에 이어 잘못된 코로나19 예방효과를 홍보했던 기업은 적극적인 사과에 나서지 않았던 잘못을 사과했고, 자회사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제때 사과에 나서지 않은 한 기업은 여전히 불매운동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사과는 어렵다. 사과를 거부하는 인간의 행동은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제창한 ‘방어기제’에서 기인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외부로부터 공격받을까 촉각을 세우게 되고 이 상태에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외부 자극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심리적 방어기제라는 설명이다. 이 방어기제가 강해지면 잘못을 부인하거나 거짓말하거나 핑계를 대고 기억을 왜곡하기도 한다.

    ▼사과를 거부하는 방어기제는 정치권에 특히 만연하다. 사과가 자신의 치부가 될까 ‘유감’이라는 단어로 에두르는 이들을 우리는 여전히 목격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 후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며 고개 숙인 당선인 노무현을 기억한다. 잘못에 망설임 없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결국 용기이고 용기는 그 누구보다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마지막 국정감사장을 떠나며 목 놓아 울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에게도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를 위로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과가 있어야 했다.

    이지혜(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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