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세상을 보며] 줄만 잘 서면 공천받나-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3-03-06 19:56:51
  •   

  • “OOO 국회의원 사무실입니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OOO 후보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특정 당 대표 후보 지지 독려 전화를 받았다는 모 당원의 귀띔이다. 국회의원의 경선 개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실상이다. 국민의힘 당규(제34조)는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이 특정 후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 하지만 강제성 미약한 규정은 휴지 조각에 새긴 빛바랜 문구로 전락했다.

    의원 실명까지 버젓이 밝힌 걸 보면 ‘지극 정성’이 후보에게 전달되기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인 듯하다. 불법을 마다하지 않고 득표 활동에 매진한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공신록’에 이름을 올릴 심산이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 대표는 내년 4월 총선 공천권을 쥐고 있다. 현역의원의 정치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줄만 잘 서면 공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얄팍한 속내다.

    정치 소신을 검증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할 경선은 그야말로 난전이 됐다. 당 미래에 대한 논의나 여당으로서 정책 비전 제시는 실종됐다.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며 진흙탕에서 나뒹굴었다. 여당 대표에게 주어지는 정치적 무게를 걷어찼다. 100% 당원투표가 이렇게 국민 심신 건강에 해악을 끼쳐야 하는지 반문할 틈조차 없다. 갈등과 분열로 대변되는 ‘그들만의 리그’는 민심 외면을 자초했다.

    여기에 역대 전당대회에서 볼 수 없던 대통령의 노골적 개입은 정당 민주주의 퇴행을 불렀다.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마음)’이 경선판을 휘저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공언한 당정 분리 원칙은 빈말이 됐다.

    대통령 눈짓에 현역 의원은 일렬종대 줄을 섰다. 유력 당권 주자이던 나경원 전 의원이 출마 의지를 보이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주리를 틀었다. 그나마 정치 ‘구정물’이 덜 튀었을 것으로 평가받던 초선의원 50명은 연판장까지 돌렸다. 전체 초선 63명의 80%다. 정치 인생 4년 연명의 달콤한 유혹은 민의의 대변인으로서 자존감 따위는 시궁창에 처박았다.

    급기야 당협위원장의 ‘오더’가 하달됐는지 지방의원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특정 후보 지지 대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국회의원은 당 대표에,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에 목을 매는 ‘정치 먹이사슬’의 전형이다. 유권자가 선사한 ‘배지’의 무게는 아무런 자괴감 없이 개인의 정치생명 연장과 맞바꿨다.

    하지만 84만명 당원이 ‘윤심’을 받들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이란 건 오산이다. 국민의힘 당원은 전통적 지지층인 영남권과 60대 이상 비율이 절반을 상회하다가 최근 감소했다. 오히려 수도권과 2030세대 비율이 늘었다. 투표 결과를 예단하기 힘든 배경이다. 4~5일 진행된 모바일 투표율 47.51%는 2021년 전대 최종 당원 투표율(45.36%)보다 높다는 사실도 주목한다.

    8일 오후 전당대회에서 ‘이전투구’의 결과가 공개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점지한 당선자의 손을 맞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골적으로 ‘윤심 전대’를 주도한 대통령은 내년 4월 총선 공천에도 입김을 행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 벌써 대통령실 일부 인사의 차출설도 나온다. 당 대표 후보 지지를 독려하는 전화를 돌리고, 윤심이 꺼리는 후보 주저앉히기를 주도하는 갖은 충성심을 발휘해도 ‘낙천거사(落薦居士)’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권(서울본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상권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