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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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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논도가리- 손정란(수필가)

  • 기사입력 : 2023-03-09 19: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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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우내 얼고 부풀어 물이 새는 것을 마쿠려고 가래지움으로 논두룩박을 새로 따듬고, 못자릿간을 맹건 다음 모낼 준비를 한다. 생명이 자라게 할라몬 땅이 부드러워야 하거든. 따부질로 땅을 뒤비씨고 속 허럭을 겉으로 나오게 하여 거름을 주어 땅을 걸게 하는 것이지. 소를 부림시로 따부를 끌게 하는데, 농부가 하는 말을 소가 잘 알아듣는 기라. ‘이랴’ 하먼 오론쪽으로, ‘자라’ 하먼 엔쪽으로 가고 ‘워워’ 하몬 멈찬다고. 써레질은 따부질을 끝내고 물을 채운 무논을 삶고 고르는 일이라네.

    하놀이 산과 바다를 열었시몬 사램은 들판을 열었제. 해와 달이 바꽜기를 수억만 분, 사램이 연 들판도 산과 바다 마큼 아람답다. 논은 밥 한 그륵의 터전이었는지도 모를레라. 논에는 물과 빛이 만은 생명을 살루기도 거다딜이기도 하고. 땅은 물을 푸무고 물은 빛을 아듬는기지. 사램은 가래지움과 따부질, 써레질로 손을 보탰으니. 쌀, 보리, 밀, 콩…. 논에서 나오는 곡숙은 푸지고 값지다. 여어서 십간 하나가 재미지다네. 빈 논두룸은 빌르는 값이 엄거든. 논임재가 비아둔 논두룸에 콩을 숭쿠었다가 거다딜임도 숭쿤 사램의 몫이지. 논두룸으로 둘러싸인 논 하나하나를 ‘논도가리’라 부리는 기라. 논두룸이 구불구불하여 갑진년(1964) 무렵 경지정리도 몬한 ‘도가리’가 어떤 기 있을꼬. 크기가 치마 한 폭 언찰 마큼인 치마도가리. 우산 하나먼 동네 논밭을 몽땅 덮을 마큼 쫍다는 우산도가리. 산 노푼 곳에 있으이 공중도가리. 죽 한 그륵과 바꽜다는 죽도가리. 깔치맨치로 질쭉한 깔치도가리. 산골착의 빈다리진 곳에 층층으로 맨들어진 쫍고 긴 다락도가리.

    우쪽이몬 윗도가리. 아래쪽이먼 아랫도가리. 이 도가리 저 도가리 외도가리. 구숙진 곳에 구석도가리. 소가 들어가지 몬하는 소시랑도가리. 논 모냥이 큰 두뭉과 같다는 두멍도가리. 에저네 기왜집이 있었다는 지애도가리. 훙연에 요강 한 개와 바꽜다는 요강도가리. 이런 논도가리는 모내기철에 비가 푸지게 내루야 모내기를 할 수 있는 논인기라.

    물이 엄으몬 농사를 지을 수 엄서. 가무름에 내루는 비를 ‘오신다’고 말하지 않던가. 오명가명 니내돌이로 살갑게 지내먼서 뉘 집 밥소까락이 멪 개인지 다 아는 삼이부재라도 물꼬 앞에서는 삿대질에 드잡이도 예사고. 그렁께네 보싸움이거나 물꼬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보싸움은 아래 보에서 물을 대는 농부들이 우 봇또랑 물꼬를 막고 봇물을 아래로 터가다 더덩키어 싸움이 붙는다네. 물꼬싸움은 우아래 논임재끼리 벌어지는 싸움이지. 날이 가물몬 농부들은 물꼬를 지키느라 밤잠을 몬 잔다 아이가. 가무살에 모가 타고 거북등맹키로 갈라진 논바닥을 보는 농부의 안타갑은 마음에 속이 다 녹는다. 우리 속담에 마린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석들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 으뜸으로 보기 좋다고 하더라. 물오름 달의 시골 들녘은 펭온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논은 거다딜임의 가실이 땡기올 때꺼정 농부들의 희망으로 익후겠지.

    손정란(수필가)


    [포준어]

    겨우내 얼고 부풀어 물이 새는 것을 막으려고 가래질로 논두렁을 새로 다듬고, 못자리를 만든 다음 모낼 준비를 한다. 생명이 자라게 하려면 땅이 부드러워야 한다. 쟁기질로 논바닥을 뒤집어 속흙을 겉으로 나오게 해 거름을 주어 땅을 걸게 하는 것이다. 소를 부려 쟁기를 끌게 하는데, 농부가 하는 말을 소가 잘 알아듣는다. ‘이랴’ 하면 오른쪽으로, ‘자라’ 하면 왼쪽으로 가고 ‘워워’ 하면 멈춘다. 써레질은 쟁기질을 끝내고 물을 채운 무논을 삶고 고르는 일이다.

    하늘이 산과 바다를 열었다면 사람은 들판을 열었다. 해와 달이 바뀌기를 수억만 번, 사람이 연 들판도 산과 바다처럼 아름답다. 논은 밥 한 그릇의 터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논에는 물과 빛이 많은 생명을 살리기도 거두기도 하고. 땅은 물을 품고 물은 빛을 안는다. 사람은 가래질과 쟁기질, 써레질로 손을 보탰다.

    쌀, 보리, 밀, 콩…. 논에서 나오는 곡식은 푸지고 값지다. 여기서 습관 하나가 재미지다. 빈 논두렁은 빌리는 값이 없다. 논 임자가 비워둔 논두렁에 콩을 심었다가 거두어들이면 심은 사람의 몫이다.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 하나하나를 ‘논배미’라고 부른다. 논두렁이 구불구불해 갑진년(1964) 무렵 경지 정리도 못한 ‘배미’가 어떤 게 있을까. 크기가 치마 한 폭 얹을 만큼인 치마배미. 우산 하나면 동네 논밭을 몽땅 덮을 만큼 좁다는 우산배미. 산 높은 곳에 있으니 공중배미. 죽 한 그릇과 바꾸었다는 죽배미. 갈치처럼 길쭉한 갈치배미.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만들어진 좁고 긴 다락배미 등 이름도 다양하다.

    어느 산골의 한 농부가 논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마다 손가락을 꼬부리며 세어보는데 하룻날 한 배미가 모자랐다. 휘휘 둘러보다 삿갓을 들었더니 간 곳 없던 논배미가 삿갓 밑에 들어 있었다고 해서 불리는 삿갓배미. 위쪽이면 윗배미. 아래쪽이면 아랫배미. 이 배미 저 배미 외배미. 구석진 곳에 구석배미. 소가 들어가지 못하는 소시랑배미. 논 모양이 큰 두멍과 같다는 두멍배미. 전에 기와집이 있었다는 지애배미. 흉년에 요강 한 개와 바꾸었다고 하는 요강배미. 이런 논배미는 모내기철에 비가 푸지게 내려야 모내기를 할 수 있는 논이다.

    물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기에 가뭄에 내리는 비를 ‘오신다’고 말하는 않던가. 허물없이 살갑게 지내면서 뉘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가까운 이웃이라도 물꼬 앞에서는 삿대질에 싸움도 예사다. 그러니 보싸움이거나 물꼬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보싸움은 아래 보에서 물을 대는 농부들이 위 봇도랑 물꼬를 막고 봇물을 아래로 터가다 들켜서 붙는 싸움이다. 물꼬싸움은 위아래 논주인 끼리 벌어지는 싸움이다. 날이 가물면 농부들은 물꼬를 지키느라 밤잠을 몬 잤다. 가뭄에 모가 타고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바닥을 보는 농부의 안타까운 마음에 속이 다 녹는다. 우리 속담에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 으뜸으로 보기 좋다고 했다. 물오름 달의 시골 들녘은 평온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논은 거둠의 가을이 다가올 때까지 농부들의 희망으로 익어갈 것이다.


    ※경남 사투리로 적힌 손정란 수필가의 칼럼을 깊게 탐독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에 지면에는 사투리로 적은 칼럼을 게재하고, 별도로 표준어로 된 칼럼을 경남신문 홈페이지(knnews.co.kr)와 페이스북(경남신문)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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