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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정치권의 현수막 전쟁- 이현근(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23-03-13 19: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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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주요 사거리 등 교통량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소위 목 좋은 거리마다 확연하게 눈에 띄는 게 있다. 각 정당에서 내건 현수막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정당별 현수막이 느닷없이 온 동네를 장악해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정치권의 작품이었다.

    정치권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표시·설치한 현수막은 정당의 명칭과 연락처, 설치업체의 연락처, 표시기간만 기재하면 신고나 허가 없이 15일 이내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현수막에는 각 정당의 지역위원장이나 그 직을 겸하는 국회의원의 직위, 성명을 포함할 수 있다. 여기에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일반 당원은 제외했다. 가게 홍보하고 싶은 수많은 자영업자도 법에서 정한 게시대를 통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스스로 법을 개정해 자신들만 정상범위를 벗어나 아무 곳이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셀프 특혜를 한 셈이다.

    하지만 정당 현수막은 애초 법 개정 취지와는 달리 국민의 욕받이가 되고 있다. 법이 개정되면서 지자체마다 현수막을 아무 곳이나 걸지 못하도록 게시대를 설치했지만 정당 현수막은 게시대가 아닌 사실상 아무 곳이나 걸 수 있도록 했다. 일반인들이 그렇게 게시했다간 바로 벌금형을 받았을 것이지만 정당은 예외로 만들어 놓으면서 길거리 곳곳에 난립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정당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15일이 지나기도 전에 새로운 현수막을 다시 내걸면서 정당 간 현수막 걸기 자리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내용도 문제다. 정당의 정책이나 현안을 다루기보다는 상대 당을 무차별 비방하거나 인신공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원색적인 욕만 적지 않았지, 사실 욕에 버금가는 내용들이어서 보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넘어서 혐오감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 보니 자기가 싫어하는 정당의 현수막을 훼손하는 사례도 나오고,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거나 교통사고 우려가 크다는 민원도 줄을 잇고 있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 현수막 게시권한에서 제외된 지방의원들은 자신들이 국회의원들보다 더 지역민과 밀접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의정활동 홍보를 제한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현수막 사용이 급증하면 재활용률이 20~30% 선에 그치고 있는 폐현수막 처리와 관련한 환경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당의 정치 현안을 홍보하겠다는 정당 현수막에 대한 애초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국민에게 짜증과 피로감만 주고 있다.

    정당 현수막에 대한 전국적인 민원이 확대되자 결국 행안부에서도 전국 광역단체 현수막 업무 담당들과 만나 실태를 파악하고, 옥외광고물법령 개정안 범위와 수준을 결정하는 등 제도 개선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국민의 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현수막이 국민의 짜증과 고통을 유발한다”라며 재검토 의사를 밝혀 일단 정당 현수막 게시에 대한 개선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 정치권에만 정당성을 준 법개정을 하면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똑같은 홍보 현수막인데 소상공인은 안되고 정치권만 되는 것은 분명 특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놀음은 정말이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이현근(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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