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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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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탐구 조각의 확장

경남도립미술관 ‘심문섭: 시간의 항해전’ 개막
해외 예술항해 후 고향 통영에 돌아온 심문섭 조각가
전통적 형태 조각 영역 확장한 ‘반 조각’ 역사 되짚어

  • 기사입력 : 2023-03-20 0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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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때부터 오대양 육대주가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많은 곳을 다닌 것이 저의 밑받침이 됐습니다. (그 항해의 시작점은 통영이기에) 저를 만들어낸 것은 통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문섭 작가의 제시 시리즈 ‘섬으로 2018’.
    심문섭 작가의 제시 시리즈 ‘섬으로 2018’.
    심문섭 작가.
    심문섭 작가.

    지난 16일 오후, 마도로스 선장과 같은 검은 모자를 쓰고 심문섭(80) 작가가 경남도립미술관 로비에 등장해 자신의 예술세계와 인생 여정이 담긴 항해기를 들려줬다. 60여 년 전, 통영에서 출발한 예술 항해는 서울대 조소과를 거쳐 세계 전역을 기항지로 삼았다. 그는 1987년 서울 국제야외조각 심포지엄, 1997년 통영 국제야외조각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서울 올림픽공원과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 조성을 추진함으로써 세계적인 작가들과 교류했으며,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백남준과 함께 한국 대표작가로 초청받았고, 2007년 프랑스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 10여년 전 고향으로 키를 돌린 그는, 경남에서 처음으로 60여년의 항해 기록을 선보이는 대형 회고전을 열게 됐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지난 17일 1·2층 전시실에서 ‘심문섭: 시간의 항해전’을 개막했다. 그는 흙과 나무, 돌과 철 등 자연 본연의 물(物)성이 드러나는 조각으로 주목받았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통영 파도(물水)를 닮은 단색화 회화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전시 제목 ‘시간의 항해’는 그의 조각에서 보이는 장소성·시간성과 바다를 중심으로 기존의 조각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형태의 작업과 의미를 담아내려 했던 작가의 작업 태도를 뜻한다. 그러니 파도 위에서 흙과 나무, 돌과 철 등 사이를 유람하며 조각과 회화, 시와 사진 등으로 변주해온 작가의 끊임없는 분투를 목도하는 것이 관람객의 주된 일이 될 것이다. 200여 점이 넘는 작품과 자료, 3개의 주제 섹션과 아카이브 섹션으로 구분한 작가의 항로를 함께 하다 보면 ‘모든 것은 순환한다’는 깨달음에 공명할지도 모른다.

    고향 땅이 가까워지니까 더 조심스럽고, 더 경직되고 더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그는 지난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회고전과는 또다를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80 인생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그는 “조각의 영역을 확장할 수 없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작품을 시작했고 ‘심문섭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지금도 해내고 있다”며 “앞으로 좀 더 적은 말로, 더 적은 색으로, 그러나 더 큰 울림이 있는 작품세계를 지속할 것이다”고 말했다.

    심문섭 작가의 ‘제시’ 시리즈.
    심문섭 작가의 ‘제시’ 시리즈.

    심문섭 작가의 ‘반추’ 시리즈.
    심문섭 작가의 ‘반추’ 시리즈.

    ◇섹션1 장을 열다 : 관계에서 제시로= 1970년대부터 2000년대의 근작 회화까지 그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며 작가가 조각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술관은 “1970년대 이미 전통적인 형태의 조각에서 벗어나(반조각) 물질, 재료, 개념, 상황으로서의 조각’을 추구한 그는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재료 간의 관계를 맺어주고 작품이 놓인 공간이나 상황을 설정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에 흙, 철판, 파이프, 철사, 모래, 시멘트, 나무, 돌 등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물질들이 놓였다. 이후 그는 물성탐구를 이어가면서 ‘현전’, ‘토상’, ‘목신(4)’과 같은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했고, 2000년대 이후로는 광섬유, 물, 비닐, 전구 등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고, 야외조각에서는 빛과 물, 바람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자연의 순환 구조를 은유하는 ‘제시’ 시리즈(5)를 선보인다. 여기에 제시 시리즈를 변용한 ‘반추’ 시리즈도 진행했다.

    심문섭 작가의 ‘목신-9028, 1990’.
    심문섭 작가의 ‘목신-9028, 1990’.

    16일 열린 ‘라운드테이블-심문섭, 반 조각을 향한 여정’에서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저걸 어떻게 조각이라고 할 수 있나’고 묻게 만드는 점이 반(反) 조각, 비조각을 설명할 수 있고, 이 측면이 심문섭을 여러 표정을 가진 작가로 만들었다고 본다”며 “(물질에) 작가로서의 최소한의 개입을 하고 나머지는 맡겨두고 방임할 수 있는 태도가 심문섭 조각의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심문섭 작가의 ‘토상 1982’.
    심문섭 작가의 ‘토상 1982’.
    심문섭 작가의 ‘토상 1992’
    심문섭 작가의 ‘토상 1992’

    ◇섹션2 자연의 감각= 자연이 주는 원초적 소재, 흙으로 만든 ‘토상’ 시리즈(2, 3)와 회화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바닥 쪽에는 흙과 철을 사용한 작업들이 놓이고, 벽면에는 파도를 연상케 하는 그의 근작 회화가 걸려 마치 관람객이 섬이나 갑판을 디디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각에서 점토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지만 ‘토상’ 시리즈에서 점토는 본연의 특성을 드러내는 물질로서 등장한다.

    라운드테이블 발제를 위해 프랑스에서 온 올리비에 케플랭 큐레이터는 “흙, 나무와 금속 등을 사용한 작품은, 자연에서 직접 온 재료로서 생명이 중요시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프랑스 팔레루얄 전시에서 특히 흙과 나무가 있는 야외정원에 공간과 조각이 함께 살아가는 듯한 관계성을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섹션3 반(反) 조각의 확장 : 물성에서 회화까지= 사물이나 재료에 충격을 가함으로써 사물 존재 양식과 그 행위의 시간성을 보여주는 ‘현전’ 작업과 철과 나무라는 두 물질을 만나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물성을 보완하게 하고, ‘메타포’ 시리즈, 섬세한 붓 귀얄 자국으로 파도의 결을 끊어 편집한 듯한 회화 ‘제시-섬으로’ 시리즈를 한 번 더 선보인다.

    김종원 전 경남도립미술관 관장은 조각에서 입체에서 평면으로, 평면이 다시 시와 사진이 되는 그의 작품을 동양철학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의 문제로 설명하며 이를 평생 일관되게 지켜온 그의 남다른 의지력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나라 미술사, 회화사에 획기적인 상황이라 부연했다.

    그는 “김종영 조각가의 ‘불각(不刻)’ 심문섭의‘ 반反 조각’과 같은 작가를 설명하는 부정의 접두어는 기존 미술, 기존 조각에 대한 일종의 반성적 자각이며, 기존의 행위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조각과 반 反조각은 서로 채워져야 하는 거래성의 관계이며 이 논리성으로 작품을 본다면 (흙과 철 나무의) 정적인 물(物)과 (회화로 표현된) 동적인 물(水)은 정과 동이 만난 상황으로 결국 음양의 조화, 음양이 하나라는 일원론으로 결론지을 수 있고, 이는 심 선생님의 ‘순환이 생명’이라는 말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풀이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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