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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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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청년 코로나 분투기] (4) 무용청년편 · 끝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어둠 속에서 꿈을 춤췄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친 코로나 3년
코로나로 연습 못하고 공연·강의 줄취소

  • 기사입력 : 2023-03-21 21: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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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용가는 두 발을 디딜 바닥이 없으면 원하는 춤을 추지 못한다. 코로나19는 그 바닥을 잔인하게 없앴고, 그들은 어떠한 저항도 못 한 채 그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공중에서 추는 춤은 서툴렀다. 어쩌면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지로, 낯선 길로, 다른 일을 찾으며 비틀거렸던 3년간의 몸짓이었다.

    지난 17일 창원의 한 카페에서 모신정(37), 천시영(34), 김경률(30) 무용가를 만나 코로나19 기간 불확실한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황과 노력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전히 춤이 꿈이고, 꿈이 춤인 경남의 청년 예술인들의 삶은 누구보다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지난 17일 창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시영(왼쪽부터), 김경률, 모신정 무용가가 경남 무용 환경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7일 창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시영(왼쪽부터), 김경률, 모신정 무용가가 경남 무용 환경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경남에서 무용을 하게 된 계기는?

    - 모신정 : 어머니의 권유로 5살 때부터 무용을 했어요. 춤추는 것에 재미를 느껴 계속 배웠죠. 초등학교 5학년 때 권미애 선생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현대무용을 시작했고요. 지금도 권미애무용단에 소속돼 있는데, 아이가 있다 보니 공연보다는 양산시를 중심으로 예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또, 무용 교안을 개발하는 예술 강사 비영리단체 #PPM 대표로도 있어요.

    - 천시영 : 초등학교 3학년 때 제일 친한 언니가 무용학원에 간다고 해서 따라간 게 시작이었어요. 언니는 연기 쪽으로 전향했는데 결국 저만 남았죠. 고등학교 때 잠깐 무용을 그만둔 적이 있는데 계속 배우고 싶어서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경남에서 춤을 배우고 연구하는 ‘한국춤연구회 비상’에 소속돼 있고, 젊은 무용가들로 구성된 ‘한국춤 단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 김경률 : 저는 좀 늦게 시작했네요.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시립예술단 공연을 봤는데 대북 치는 게 멋져서 무작정 부산까지 가서 배웠어요. 그렇게 예술단체에서 배우던 중 무용하는 남성이 귀하다는 유혹에 넘어가 고2 때 전공을 바꿨죠. 지금은 청년으로만 구성된 ‘춤:혜윰’ 단원이자 전국무용제 집행위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코로나가 삶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였나요?

    - 천시영 : 처음엔 집합 금지로 모일 수가 없으니 연습도 할 수 없었어요. 당연히 잡혀 있던 공연 일정도 모두 취소됐죠. 이후 녹화나 유튜브 생방송 형식의 비대면 공연이 생겼지만, 제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어요. 텅 빈 객석 대신 카메라를 보며 숨소리조차 내면 안 되는 순간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대 위 플레이어와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느끼던 에너지가 너무 그리웠죠.

    - 모신정 : 저희를 비롯한 지역 무용가들의 주 수입원은 공연보다 강의 등 교육 분야예요. 타격이 심했던 사교육 분야는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었을 거예요. 제가 하고 있는 예술 강사는 공교육 분야인데,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전환됐어요. 무용은 직접 부딪치고 교정해야 하기에 많은 무용 강사가 불가능하다고 호소했었죠. 정말 큰 변화를 맞이한 순간이었어요.

    - 김경률 : 지난 2020년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왔을 때 코로나19가 터졌어요. 처음 두 달은 백수로 지냈죠. 무용과 관련된 구직활동을 했지만 마땅치 않았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금전적 문제로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로 일하기도 했어요. 밤에 일하고, 낮에 구직활동을 이어갔지만 계속해서 아쉽게 떨어졌어요. 그때 무용가로서의 자존심이 점차 망가지고 무너지면서 밑바닥을 봤던 것 같아요.

    ◇코로나 극복은 어떻게 하셨나요?

    - 김경률 : 밤에 일을 할 때 지인의 부탁으로 부산에 비대면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저를 찍는 카메라를 보던 중 차라리 영상을 찍는 일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6개월간 밤에는 나이트클럽에 갔고 낮에는 영상 교육을 들었고 결국 영상 제작업체에 취직해 1년간 다녔어요. 그렇게 무용과는 멀어졌죠. 춤을 다시 출 수 있겠다는 생각도 점점 옅어졌어요.

    그런데 어느 날 민속촌에 다니는 지인이 ‘진도북춤’ 영상을 보여주면서 “공연 안 할래?”라고 물었어요. ‘무슨 춤이야’라 생각하면서도 피가 끓더라고요. “하겠다”고 말했죠. 영상 제작 일을 하면서 6개월 만에 18㎏이 쪘었는데, 2주 만에 9㎏을 빼고 갔어요. 그리고 1년간 미친 듯이 춤을 췄어요. 가장 행복했던 1년이었죠. 무엇보다 지난 5년간 함께 춤을 춘 여자친구가 가장 도움이 됐어요.

    - 천시영 : 무용 외적으로 직업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좌절했던 순간이 잠깐 있었어요. 줄어든 수입을 해결하고자 홈스쿨링 수업을 하기로 했어요. 블로그 등을 통해 홍보했고 꽤 반응이 좋았죠. 이것저것 짐을 들고 와야 해서 불편하긴 했지만, 위기 속에서 떠오른 묘책이었네요.

    한 번은 비대면 연극 공연에 섭외가 됐어요. 무용만 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대본이 있더라고요. 선생님들의 설득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연극 주인공을 맡고 무대에 오른 경험도 있네요.

    - 모신정 : 육아 때문에 무용수들과 같은 호흡으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코로나 상황 속 교육 방식에 더욱 집중했어요. 무용도 온라인으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몇몇 강사들과 함께 온라인 수업 커리큘럼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PPM도 그렇게 만들어졌죠.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모신정 : 교육적인 측면에서 무용 교육 발전에 보다 힘쓰고 싶어요. 더 나아가 무용 분야 전공자들의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체계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많은 무용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계속 활동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진 않더라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 천시영 : 작년에 닥치는 대로 공연을 하다 보니 정말 바빴어요. 스스로 과부하가 느낄 정도였지만 여전히 춤이 고프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해요. 또, 젊은 친구들과 하고 있는 ‘한국춤 단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단체를 이끌어 나가고 싶어요.

    - 김경률 : 계속 경남에서 무용가로 활동한다고 생각하면, 무용의 발전이나 증진에 있어서 유소년이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역에서 수도권에 뒤지지 않고 무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고 싶어요. 현재 지역에서 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거든요. 기획자로서는 창원에서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콘텐츠를 꼭 기획하고 싶어요.

    ◇경남에 바라는 점은 있으신가요?

    - 김경률 : 지원사업이 보다 확실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10여명과 함께 한 프로젝트로 지원사업을 신청하니 300만원가량 받았어요.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자비로 500만원을 쓰기까지도 했죠. 두 번 다시는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고향인 창원을 사랑해서 돌아왔지만, 많은 무용인들이 타지역으로 떠나고 있어요. 창원은 특례시라 부를 만큼 큰 도시이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는 떨어져 있다고 느껴요. 조금 더 청년들을 믿어주고 밀어줬으면 해요.

    - 모신정 : 같은 지원사업임에도 타지역은 지원금 자체가 다르다 보니 많은 무용인들이 경남을 빠져나가고 있어요. 경남이 예술가를 지키려면 지역이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발전된 시각으로 바라봐야만 해요.

    - 천시영 : 청년들을 위주로 한 신진단체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막상 지원사업을 받으려면 경력이 필요해요. 마치 ‘경력 있는 신입’ 같은 말처럼 말이죠. 그런데 무용계가 단체보다는 개인으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신진단체의 경력은 채우기가 정말 어려워요. 궁극적으로 청년들을 키우기 위한 지원사업인데, 취지에 맞춰서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김용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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