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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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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맞서는 작은 존재들의 힘

31년 전 구속된 손석희 앵커에게 보낸
배익천 작가의 동화 그림책으로 나와
풀무치 대왕에 맞서 용기 낸 풀벌레들

  • 기사입력 : 2023-03-24 08: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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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공정 방송을 요구하다 구속된 동료에게 보낸 동화 한 편이 31년 만에 그림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풍자하며 언론의 중요성을 담은 동화의 내용은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전한다.

    그림책 ‘풀종다리의 노래’는 배익천 아동문학가의 글과 한병호 작가의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짧은 우화인 원작은 1992년 당시 부산MBC에서 근무하던 배익천 작가가 감옥에 갇힌 손석희 앵커를 위해 쓴 작품이다. 당시 손 앵커는 공정 방송을 요구하며 MBC 노조 파업에 참여했다가 20여일간 구치소에 수감됐었다.

    구치소에서 석방돼 나온 후 책상에서 원고를 발견한 손석희 앵커는 이 원고를 소중한 선물로 간직하기로 하고, ‘풀종다리의 노래’를 1년 뒤 자신이 낸 첫 에세이집 제목으로 삼았다. 해당 에세이에서 손 앵커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숙연하게 한다”고 동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책 ‘풀종다리의 노래’ 본문의 일부.
    책 ‘풀종다리의 노래’ 본문의 일부.

    풀종다리는 7~8㎜의 풀벌레로, 울음소리가 맑고 아름다워서 풀에 사는 종다리(종달새)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었다. 작품은 풀숲 왕국의 풀종다리 한 마리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시작한다. 왕국의 풀무치 대왕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시기해 감옥에 가뒀다지만, 사실은 풀종다리가 다른 풀벌레들의 사연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풀종다리가 잡혀갔다는 소문이 돌자 풀벌레들은 행여나 노래를 할까 겁나 입을 막거나, 아예 풀무치 대왕이 내는 쇳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럴수록 풀무치 대왕의 횡포는 더욱 심각해져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잡혀간 풀종다리의 노래를 그리워하던 풀벌레들 사이에서 풀무치 대왕을 비판하는 낮은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풀벌레들을 위해 다시 노래를 부를 풀종다리 친구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두려움에 떨던 풀벌레들은 잡혀간 이들을 생각하며 용기 내 풀종다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가자 우리 모두 닫힌 입 열어주고 막힌 귀 뚫어 주는 노래 부르러 휘리리리 휘리리리.”

    배익천 작가는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돼 지난 50여년간 한국 아동문학계의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지금은 고성에서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가꾸며 아동문학 전문지 ‘열린아동문학’을 제작하고 있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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