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경남시론] 소리는 영혼의 미학(美學)- 정호영(대한사립학교장회 회장)

  • 기사입력 : 2023-04-18 19:45:55
  •   

  • 소리는 영혼의 미학이다. 어떤 소리든 그 속에는 영적 양식이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소리의 열매를 먹고 산다. 바람소리, 물소리를 먹고, 때로는 자동차소리도 먹어야 산다. 입을 통하여 영양을 섭취하지만 소리의 울림은 귀를 통해 마음으로 먹는다. 소리가 주는 양식은 혼의 양식이다. 그래서 소리는 잠자는 영혼을 깨우기도 하며 다시 재우기도 한다.

    어떤 생명체든 소리와 무관하게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소리 중에도 듣기 좋은 소리가 있고, 듣기 싫은 소리도 있다. 그래서 소리는 때로 소음이 되기도 한다. 소음이란 듣는 사람에게 싫은 소리이긴 하지만, 이런 소음 중에도 좋은 소음이 있다.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컬러소음’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다. 우리 주변 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하는 소음인 백색소음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소리에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다.

    볏단을 들어 메치는 타작은 즐거움이 넘치는 소리 아닌가. 그러나 그 곡식은 얼마나 아팠을까. 땅바닥에 나뒹구는 알맹이를 쓸어 모은다. 다시 방앗간에 싣고 가 겉옷을 벗긴 후 하얀 살을 자루에 담는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알맹이를 또 문지르고 비벼서 펄펄 끓는 물에 익혀 목구멍에 넣고야 만다. 결국 그 벼의 시체는 인분이 되어 텃밭에 묻혔다. 꼿꼿하던 볏모가지도 이렇게 일생을 마감한다. 빗방울은 땅에 떨어져야 소리가 된다. 부서져 만신창이 된 빗방울 소리는 기쁨일까, 아픔일까? 바람의 언어를 소리라 할 수 있을까? 분명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소리를 얻어 언어를 배우고 마음의 양식을 살찌운다. 소리는 언어가 되고 나아가 춤이 된다. 소리의 빛깔은 흑백이며 컬러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간의 귀가 소리에 지치고 타락한 적도 없다. 온갖 세상의 악한 소리와 거짓 소리에 놀란 인간의 귀는 무디어져 버렸다.

    이렇듯 소리는 영적인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중요한 원리이다. 영혼의 소리는 너무 고요해서 깊은 성찰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반면에 욕망의 소리는 마음을 모으지 않아도 행진하는 군악대의 나팔 소리처럼 우렁차다. 많은 사람은 욕망의 소리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영혼의 소리는 알 수가 없다. 또 소리는 계절마다 다르다. 봄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있고, 겨울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세상의 소리 중 자신이 내는 소리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한다면, 그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학교와 교육에도 소리가 있다. 교사의 소리에는 학생들에게 주는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소리가 되어야 하며, 아무리 부족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백색소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백색소음을 지나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소리는 생의 흐름과 같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비난하는 소리, 잔소리, 악쓰는 소리, 권위적인 명령의 소리만 난무한다면 학생들의 영혼이 죽어갈 수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단순한 소리만이 아니다. 입에서 공기, 기운, 호흡도 같이 나오는데 그것은 곧 영적 기운이다. 미움이나 짜증, 걱정하는 소리, 악한 소리들이 나올 때 악한 기운들이 가정이라는 그 공간에 가득 차서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내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에 따뜻하고 기쁨이 있다면 절로 그곳이 천국이 되며,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된다. 나의 삶에, 나의 생활 속에서 부드러운 소리, 사랑의 소리, 감사의 소리, 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감사와 사랑의 소리가 모여 꽃이 피어나듯이 나의 얼굴에도 몸짓에도 소리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호영(대한사립학교장회 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