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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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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책] 열다섯에 곰이라니

사춘기 아이들이 동물로 변했다!
최근 인터넷서 유행하는 ‘바퀴벌레 질문’처럼
‘존재 이유’ 묻는 젊은세대 시대상 짚어낸 소설

  • 기사입력 : 2023-05-26 08: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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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래?”

    최근 인터넷에서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바퀴벌레 질문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부모님에게 질문을 던져 반응을 확인하는 방식인데, 대체로 “가방에 넣고 매일 같이 다녀야지”, “그래도 내 새낀데 키워야지” 등의 답변에 무한한 애정을 확인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는 편이다.

    ‘바퀴벌레 질문 놀이’는 경쟁사회 속에서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은 불안감에서 시작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다. 신기하게도 이 놀이는 107년 전 출판된 프란츠 카프카의 책 ‘변신’에서 파생됐다. 변신을 읽고 엄마에게 해당 질문을 했다는 인터넷 게시글이 삽시간에 공유됐기 때문이다.

    ‘변신’은 하루아침에 흉측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라는 청년의 이야기다. 당시 방에는 그레고르밖에 없었기에 가족들은 벌레를 그레고르라 인식하고 외부 출입을 막은 채 먹이만 주는 식으로 대응한다. 소설은 단편적으로 끝나는 ‘바퀴벌레 질문 놀이’를 넘어 실질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궁핍한 가족의 생계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게 됐고, 점차 가족들에게 존재 가치를 잃으며 홀대받고 잊혀지게 된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추정경 소설가의 ‘열다섯에 곰이라니’는 열다섯 살의 주인공 태웅이 하룻밤 사이에 곰으로 변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재만 보면 카프카의 변신과 바퀴벌레 질문 놀이와 결이 닮아 있다. 그러나 추정경 소설가만의 경쾌한 전개는 따뜻한 결말로 향한다.

    새벽 3시 아파트 20층 가정집에 뜬금없이 곰이 출연했으니 집안은 당연히 난리가 난다. 하지만 곰이 태웅임을 알아차린 가족들은 바퀴벌레 질문을 받은 부모처럼 스스럼없이 곰이 된 태웅을 껴안는다.

    태웅이 겪은 ‘동물화’ 증상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다. 특이한 점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 중 일부만 동물화를 겪는다는 것이다. 곰으로만 변하는 것도 아니다. 하이에나, 원숭이, 기린, 비둘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동물화된 아이들은 인간 세상이 아닌 동물 세상으로 쫓겨나지만, 동물원에 갇힌 한 원숭이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태웅을 비롯한 아이들은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불안감 없이 등교하며 변화된 몸과 마음에 적응해 나간다.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마냥 참기만 했던 태웅은 곰이 된 이후 필요할 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던 서우는 기린이 된 후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극복한다. 하지만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하이에나가 된 상욱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아이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고, 들개가 된 국영은 가출을 한 후 들개 패밀리에 합류해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자 동물화된 아이들이 점차 사람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물화의 원인과 해결법을 추측하는 것도 큰 재미다. 결론에 다다랐을 때, 삶의 이유와 가치를 깨닫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저자 추정경, 출판 다산책방, 253쪽, 가격 1만3000원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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