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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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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성에꽃- 최두석

  • 기사입력 : 2024-01-18 08:07:35
  •   

  •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일상을 겨울 새벽 차창에 핀 성에를 통해 잘 보여줍니다. 냉랭한 현실을 따뜻한 시선으로 녹이면서 촘촘히 핀 성에를 날카로운 감각으로 그려냅니다. 혹한일수록 선명하게 피는 성에꽃,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막히게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화자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새벽 시내버스 안에서 자리를 옮겨 다니며 그 차갑고 기막힌 아름다움에 취합니다. 마침내 간밤에 만났던 남녀노소의 한숨과 숨결이 모여 꽃을 피워냈다고 느낍니다. 하루를 여닫는 사람들의 고난과 시련이 세상을 아름답게 꽃피운다는 역설, 가슴 시리게 와닿지만 어쩌면 이것이 진실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차창에 다가앉아 입김을 불어보고 이마를 대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외면하지 않고 온정으로 공감하는 화자의 태도에서 오늘 하루 추위가 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자와 친구가 걸어온 길이 보입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요. -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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