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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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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우리 집에 사는 도깨비는- 백혜숙

  • 기사입력 : 2024-03-21 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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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마다 밤에 살짝 들어와

    한 줄기 불빛만 밝히는 스탠드 켜고

    뿔 하나 달고 책상에 앉는다


    일요일,

    우리 집 거실을 누비고 다니는

    머리 풀어 헤친 도깨비


    -누나 나랑 같이 보드게임 하자 응? 응?

    -누나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귀찮으니까 가까이 오지 마!


    평소와 다른 누나

    한마디만 더 하면

    도깨비방망이가 날아올 것 같다


    공부에 찌든

    도깨비 얼굴을 한 누나가

    일요일 낮부터 짜증 폭발 중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입시생이 있는 집의 일요일 풍경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우리 집 대장 도깨비 누나. 평소에는 밤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얼굴 보기도 힘들다. 아침이면 도깨비 누나는 언제나 날이 서 있다. 깨우는 순간부터 신경질을 부리고, 안 일어나고는 늦었다고 화를 내고, 걸핏하면 학교까지 차를 태워달라고 한다. 이 도깨비가 등교한 후라야 비로소 집안에 평화가 온다.

    그러나 일요일, 도깨비가 집에 있으면 평화는 없다. 눈치 없는 동생이 놀자고 조르다가는 도깨비방망이로 얻어맞을 수 있다. 도깨비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거실을 누빌 때 식구들은 숨을 죽인다. 도깨비가 원하는 특별식을 준비해 놓고 조용히 집을 비워주는 게 상책이다.

    공부에 찌든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 수험생의 기분을 맞추고 눈치를 보는 것이 가족의 사랑이다. 목련이 화사하고 벚꽃도 곧 필 텐데, 봄바람이 도깨비 뿔을 살살 쓰다듬어 좀 누그러뜨려 주었으면 좋겠다.

    김문주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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