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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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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열애- 이대흠

  • 기사입력 : 2024-04-11 0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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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지나 마음의 창호지 다 뜯겨

    늙은 애마 프라이드 타고 집 나섰지요

    그렁그렁 호흡 가빠도 쓰러지지 않는 말 타고

    한 달 넘게 전라도 땅 돌았지요

    오지게 꽃들 피어나 내 안의 뿌리들

    탱탱히 살아나는 느낌, 지우지 못하고

    화끈히 연애했지요

    무위사 벽화들이랑 보림사 석탑들

    가슴 애리게 피어나는 진달래 자목련

    선암사 일주문 이르러

    한 살림 야무지게 차리고 말았지요


    사랑이라는 거, 그거, 알고 보니

    한순간에 뻑 가버리는 것이데요

    논리도 설명도 필요없이 잎싹보다 먼저

    꽃대가리 내미는


    ☞4월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온 산야가 연두의 물결로 출렁입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가려두었던 마음의 창호지가 다 뜯겨나간 화자는 방안에 웅크리고 있을 수가 없게 되자 늙은 애마를 타고 집을 나섭니다. ‘열애’의 시작입니다. 늙은 애마는 오래된 자동차인데 화자의 모습으로 읽어도 좋겠네요. 가쁜 호흡을 하면서도 전라도 땅을 다 돌았다고 합니다. 한 달 동안 봄 구경을 실컷 한 셈이지요.

    꽃을 사랑의 대상으로 환치한 익숙한 내용과 감칠맛 나는 표현들이 시 속에 오래 머물게 합니다. 살아나는 내 안의 뿌리들 그리고 여기저기 명승지를 다니며 만난 풍경과의 화끈한 연애, 생물 무생물 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살림까지 차렸다고 하네요. 물아일체의 쾌감을 맛본 것이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이렇게 한순간에 뻑 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여기에 무슨 논리와 철학이 필요할까요. 잎싹보다 먼저 꽃대가리 내미는 꽃들 앞에서 말입니다. 읽을수록 재미있고 깊이 음미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최석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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