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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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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시집의 쓸모- 복효근

  • 기사입력 : 2024-05-02 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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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비닐하우스 창고에서 삼겹살을 굽는데

    그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한쪽 귀퉁이에

    얇은 시집 한 권을 가져와 고였다


    기름기가 한쪽으로 흘러 빠져서

    삼겹살이 노릇노릇 구워진다


    그래서, 그러므로

    나는 또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생활의 연장선 속에서 체험한 일상을 이야기하듯 쓴 시입니다. 군살 없이 절제된 짧은 시로 감동과 재미를 더해주며, 읽고 나면 그림을 그린 듯 장면이 선명하게 남습니다. 별다른 해설이 필요치 않으며 끝내는 자아성찰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작가의 시 창작론이기도 합니다.

    ‘시집의 쓸모’를 통해 불현듯, 애면글면하며 언어의 절벽에 목을 매었던 지난날이 부끄럽습니다. 나의 시(시집)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는커녕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언뜻 세상 밖으로 내보낸 첫 시집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오밤중 허기를 달래려 급하게 끓여낸 라면 냄비의 받침이라도 되고 있는지, 혹여 여의찮은 살림살이의 기우뚱한 밥상 다리에 고였다면 끝까지 그 평형에 책임지기를 당부해 보는 것입니다. 일찌감치 중고 서점 책장에 거처를 마련하였다면 눈여겨보아 문우들의 그것이 한꺼번에 우르르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한 어깨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또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만.

    책장에 꽂힌 여러 시인 시집의 두께들을 매만져봅니다. 대체로 작은 편이며 얇고 가볍습니다. 6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시집은 손에 쥐고 다니며 수시로 읽기 좋고 가방에 넣어다니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통해, 쓸모 있는 것의 쓸모없음을 가르쳐주는 것’, 어느 평론가의 문학 효용론입니다. -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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