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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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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자랐다- 김나리(작가)

  • 기사입력 : 2024-05-23 19: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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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리(작가)

    나는 아마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것 같다. 아빠 가족은 결국 이사 가면서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큰집에서 살고 있는데, 하루는 고모들이 왔다. 고모들이 아빠 흉을 봤다. 나는 그 말을 듣는 게 힘들었다. 아무리 나를 버리고 갔어도 우리 아빠였다. 그리고 버리고 간 아빠 이야기라서 아팠다.

    나는 나가서 공중전화로 외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외삼촌은 새엄마의 남동생이었다. 거기밖에는 전화할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울었다. 전화에 대고 말없이 울기만 하는 나를 외삼촌은 잠시 기다려 주었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묻길래, 나는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힘들다고 말하자 마음이 풀렸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고,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었다. 집에 소란이 있었다. ‘사돈 총각’이 이 밤에 무슨 일로 오셨냐는 소리가 들렸다.

    외삼촌은 아침 일찍 읍내 나가는 단 한 대의 버스가 진즉 떠났을 시각에 내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읍내까지 몇 시간을 걸었단다. 삼촌은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내가 있던 도시까지 왔다. 내 걱정이 되어서 왔다고 말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삼촌은 아직 20대 중반쯤 된 ‘어린’ 청년이었다.

    사돈 부끄럽게 ‘우리 식구’끼리 말하지 않고 하필 거기다 전화를 했냐는 타박을 듣는 나를 외삼촌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외삼촌은 내가 원한다면 외갓집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말했다. 나를 맡아준 고마운 큰집이었고 큰엄마는 내게 무척 따스했으나, 나는 그곳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로 가건 어차피 우리 집은 아니었다. 나는 간다고 했다. 짐을 싸서 나가는 내게 큰엄마가 물었다. “니 진짜로 갈끼가?” 내가 그렇다는 눈빛을 보내자 큰엄마는 가서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했다.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외삼촌 말씀도 잘 듣고, 잘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외삼촌과 나는 별 특별한 사이도 아니었다. 외삼촌의 누나인 내 새엄마는 나를 불편해했고 때로는 내 ‘어른스러움’을 끔찍하게 여겼다. 나는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면서도 참담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외삼촌은 오로지 내 편이 되어 주러 왔다. 나는 외삼촌 앞에서 비로소 실컷 울 수 있었다.

    오래 잊고 있던 그날이 생각났다. 어느덧 30년도 넘은 일이 되었다. 나는 20대 중반의 좀 괴짜 같았던 외삼촌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가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 준 사람 중에 외삼촌이 있었다는 거다. 삼촌은 따스하게 말했다. “너 아직 아이잖아.”

    “저는 어린이예요!” 나는 내가 어른스러우니 알아서 잘할 거라 말하는 어른들 앞에서 내가 어린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는 어린이가 되레 어른스럽지 않은가 싶어 웃음이 피식 나온다. 세상은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고 있는가.

    외삼촌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차피 연락처도 근황도 아무것도 모르는 데다, 외삼촌은 새엄마의 동생이라 인제 와서 내가 연락하기도 어렵다. 고마웠다고 혼잣말을 해보았다. 어떤 고마움은 갚을 수가 없구나. 나는 외삼촌 붙잡고 울고도 남았던 눈물을 오늘 다 쏟아내고 고마움을 남겼다.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자랐다.

    김나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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