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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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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II]맛, 그리고... 어탕국수

  • 기사입력 : 2002-03-04 00:00:00
  •   
  • 춘천이라면 막국수를, 전주라면 비빔밥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
    름이 잘알려지지 않았던 안흥도 진빵 덕에 유명세(?)를 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 땅 어느 시골 읍내에 가더라도 평양냉면을 메뉴로 내건 냉면집
    을 볼 수 있듯, 각 지방의 고유한 음식일지라도 곧 경계를 뛰어넘어 보편성
    을 얻게 된다. 하지만 원래의 그 지방이 가진 맛은 지역적 정서나 환경 등
    에 의해 고유하게 남아있기 마련이다.

    이제 경남 각 지역의 고유한 먹거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전국적으
    로 잘 알려진 것도 있을 게고, 지역 테두리에 갇혀 그 명맥만 이어오는 것
    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탐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느낄 수 있고,
    또 잊혀져간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그런 먹거리 여행을. /편집자 주/


    딱 20여년만 세월을 거슬러, 계류를 낀 지리산 자락 어느 마을의 한 여름
    날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경호강이면 어떻고, 이름조차 갖지 못한 작은 내(%?라면 어떠랴.

    냇가 뜨거운 자갈밭에 배를 붙인 얼룩배기는 되새김질을 반복하고, 가는
    세월을 붙잡아 놓으려는 듯 연신 『앵앵』 악을 쓰는 애매미 소리가 멀리
    서 들려오는 바로 그 곳.

    그런 곳이라면, 걷어올린 바지단이 물에 잠기는지도 모른 채 투망질을 하
    며 시끌벅적대는 마을 청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투망이 서툴다면
    족대라도 들었을 터이다.

    그렇게 신나게 벌인 두어시간의 천렵이 끝나면, 피라미며 모래무지며, 온
    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바구니를 채우게 된다. 내다팔기위해 물고기를 잡는
    일이 없는 시절이었으니, 그럭저럭 바구니의 절반 정도는 보장되었을 것이
    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운 청년들은 큼직한 냄비에 강물을 퍼담은 뒤
    곧 불을 지펴 어탕을 만들고는, 준비해 간 국수 가락과 고추가루은 넣
    은 뒤, 마지막으로는 소금을 한 웅큼 집어넣어 간을 맞춘다.
    뙤약볕 아래,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후루룩 후루룩 마시듯 먹
    는 어탕국수 한 그룻의 포만감이란.

    경호강변 마을인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에서 만난 촌로(72)는 『할아버지
    어탕국수 아세요』라는 기자의 우문에 『여름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어탕
    국수를 곧잘 해 먹었지』라며 웃는다.

    『물이 워낙 맑다보니 따로 식수를 준비할 필요도 없이 강물을 그대로 사
    용했다』는 할아버지는 『먹을 거리가 많지 않던 때였다는 것도 있었겠지
    만, 그보다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산수 구경도 하고, 고기도 잡으며 노는 것
    이 더 재미였지』라고 말한다.

    지금은 미식가들이 별미로 찾는 「어탕국수」가 그렇게 생겨났다.
    경호강변 산청이나 함양지역으로 가보면, 조금은 「화려해진」 어탕국수
    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여러 곳 있다.

    촌로를 만난 생초면 어서리 5일장이 열리던 시장통에도 어탕국수를 내놓
    는 집이 두 곳 있다. 주재료는 참붕어로 바뀌었지만, 그런대로 구하기 쉬
    운 피라미와 이름조차 생소한 또 몇가지의 물고기들이 들어간다.

    붕어는 물맑은 경호강에서 얻기 힘들다보니 인근이나 다른 지역의 저수지
    에서 나온 것을 쓰고, 피라미 등 계류에 잘 자라는 것들은 어업허가를 받
    은 주민들이 대준다고 한다.

    수질이 나빠진데다, 남획으로 어자원이 고갈되면서 주인이 족대나 투망으
    로 직접 물고기는 잡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좋은 불에 두어시간 정도 고으며 뿌연 어탕이 만들어진다. 여기
    에 도톰함이 살아 있는 「촌국수」와 근대(때로는 시금치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고추가루와 소금 등을 넣어 끓이고 나면 곧 식탁에 오른다. 각 식당
    주들의 손맛에 따라 양파나 마늘, 그리고 약간의 된장이 들어가기도 한다.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추어탕을 먹을 때처럼 산초가루를 넣어도 된
    다. 그러나 된장이나 산초가루의 힘이 아니더라도, 어탕에는 비린내가 거
    의 나지 않는다. 충분히 고으면 비릿한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 신
    영순(56·수정식당)씨의 이야기이다.

    어탕을 제대로 먹을라치면, 국수를 건져먹고 난 뒤 남은 뿌옇고 걸쭉한
    국물을 그릇째 들이켜 보자. 구수한 내음에다 씹힐 듯 말 듯한 어육이 목구
    멍을 간지럽힌다.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그 맛에다, 추억이 보태지면서 어탕국수는 음식점
    메뉴에 오른 지 불과 20여년만에 경호강변의 대표적 음식이 되었다. 여기에
    는 「특별한 맛」이 있는 곳이라면 수십리 수백리 길도 마다않는 미식가들
    의 입소문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물좋고 산세좋은 산청·함양땅, 마을 청년들의 투박한 솜씨로 태어났던
    어탕국수는 이제 도회지 전문음식점에 자리하면서 시골을 떠나온 도시인들
    에게 「족대」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산청읍내 뿐만아니라 진주나 창원, 부산 등지에서도 어탕국수를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는 홍순흥(57. 제일식당 주인)씨는
    『그래도 강가 자갈밭에 앉아 먹던 어탕국수의 맛을 다 전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듯 말했다. 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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