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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II] 맛, 그리고... - 재첩국(3)

  • 기사입력 : 2002-03-18 00:00:00
  •   
  • 섬진강 포구 80리 굽이굽이 마다에 봄이 눈부시다.

    이맘 때를 시작으로 매화, 복사꽃과 벚꽃, 길가 과수밭에 심어놓은 배꽃
    이 새하얀 봄을 터트리니 여름이 올 때까지 섬진강에는 봄이 끊임없다.
    비내리는 포구, 물안개 피는 섬진강에도 이제 막 연푸른빛을 띠기 시작
    한 강언덕의 수양버들에 실려 강변 가득 봄기운이 완연하다.

    『물이 들어오는 거 같아요.』 『하문예. 저 물 들어오면 재첩배들이 오
    지 안능교.』
    오랜만에 내린 봄 단비로 불어난 강 물살을 가르며 재첩배 한 척이 포구
    에 닻을 내린다. 가난했던 삶들의 눈물과 땀이 녹아내려 있는 섬진강변의
    정경은 부지런한 이들을 위한 또 하나의 삶터다.

    많이 자라야 어른 엄지손톱만한 조개, 섬진강 재첩.
    하동포구 80리 따라 재첩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화개까지 즐비
    하게 이어져 언제라도 쉽게 맛 볼 수 있지만 지난했던 시절, 강가 사람들
    의 허기를 면하게 해 주었던 자연의 선물이다.

    하동에서만 70여년째 살고 있다는 이현자 할머니는 『재첩 채취가 절정
    을 이루는 5월이면 노란 방수복과 커다란 자줏빛 고무대야가 섬진강 전체
    를 점점이 수놓았다』고 들려준다.

    이 할머니는 또 『10여년전만 해도 양동이를 이고 마을마다 돌며 「갱 조
    개(하동 방언으로 강조개를 뜻한다) 사이소~」 「재첩 사이소~ 」 외쳐댔
    재. 그 때는 한 그릇 200원에 사서 물을 보태 호박과 고추를 듬성듬성 썰
    어 넣고 다시 끓여 많은 식구들의 배를 불렸다』고 추억을 더듬는다.

    『1970년대, 모래밭에 손으로 긁으면 재첩이 다 잡혔다. 물길을 걸으면
    돌멩이처럼 발에 밟히는 것은 죄다 재첩일 정도로 지천에 깔렸었다』고 임
    경택(하동군청 기획감사실)씨는 들려준다. 가슴 아픈 일은 이제는 섬진강에
    서 조차 잡히는 재첩의 양이 해마다 줄고 있다는 것.

    이곳 섬진강 재첩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있는 사질토양에서만
    자라기에 비린내가 덜 나고 담백한 맛이 독특하다. 재첩 고유의 향과 맛은
    이곳 섬진강을 따라 올 곳이 없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간 해독작용으로 좋다는 재첩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격도 만만찮게 올라 시골 아낙네의 부업으로도 인기가
    높다고.

    재첩은 맹물에 담가서 모래를 뺀 뒤 끓는 물에 재첩을 넣고 쌀을 일듯이
    하면 알맹이만 빠져 나온다. 요즘은 이 모든 과정이 기계식이라서 편하긴
    하지만 뭔가 제 맛이 덜 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5~6시간 우려낸 진한 굴빛의 재첩국물에 부추를 잘게 썰어넣고 취향에 따
    라 고춧가루를 풀어 훌훌 마시면 해장에 그만이다. 두릅과 취나물 더덕 등
    싱싱한 봄나물과 곁들이는 밑반찬도 입맛을 한껏 돋운다.

    강 포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동흥식당과 신방촌 「할매
    재첩」 등 포구 따라 즐비한 식당은 재첩 맛을 보려는 손님들로 연신 꽉꽉
    찬다.

    동흥 재첩식당 최숙련(52)씨는 『75년 시집올 때부터 시작한 것이 어느
    새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 맛의 비결을 묻자 『별 거 있는가예, 그
    저 좋은 조개를 써서 한 가마솥에 200㎏정도로 많이 삶으면 진국이 된다』
    며 바로 넉넉한 인심에서 맛이 나온다고 전한다.

    식당에서 손님으로 만난 김종석(67)씨는 『20여년 전부터 맛 보기 시작
    한 재첩국을 잊지 못해 부산에서 일부러 찾아 왔다』며 『산뜻하고 독특한
    향이 좋다』고 말한다.

    『「조개는 봄 조개」라 했듯 강둑을 따라 보리밭이 파릇파릇 할 때 조
    개 맛이 최고여서 하동 오면 재첩국을 안 먹어 볼 수가 없다』며 김종석씨
    의 동행도 한마디 거든다.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골목마다 돌아다니면서 새벽잠을 깨우던 아
    낙들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강 포구에 바람이 스친다. 해거름이 다되었는데도 바람이 따사롭다. 봄
    이..., 봄이 온 모양이다. 김다숙기자 ds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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