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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맛 그리고 ...(7) 전복죽

  • 기사입력 : 2002-04-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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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의 향기, 맛 그리고...(7) 전복죽

    유리알같이 맑은 남해 남면
    200여년 전복 산지
    녹두빛 구수한 맛 "캬~"

    봄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길목, 산비탈의 100층 다랑논이 만들어내는 나선
    형 곡선과 다도해의 수평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남해 남면 가천마을.
    바다로 내달리는 급경사지에 50여 가구가 몰려 산다. 산비탈은 무수한 초
    록 등고선. 해안절벽에서 산 8부 능선까지 촘촘이 쌓인 파릇파릇한 다랑논
    들은 쪽빛 바다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다랑논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인 마늘밭과 바위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
    물기 머금은 동네 풍경은 그야말로 선경(仙景)이다. 이곳은 또 민중의 염원
    을 품은 채 말없이 서 있는 가천암수바위, 미륵부처의 서기가 서려있는 곳
    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곡진한 삶까지 들여다보면 그만
    눈을 감고 싶어진다.
    여기서 산모롱이 하나를 돌자 전복축제로 유명한 홍현마을이 나왔다. 무
    지개가 뜨는 마을이다. 옛날, 이 곳에 소라가 많이 나서 소라를 잡아서 생
    활한다고 해 「라라(螺螺)」라 부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말 무지개형의
    재가 있다 해서 홍현이라 불렀다 한다.

    월포해수욕장에서 남면해안도로를 타고 숙호 해변을 지나면 나온다. 오른
    쪽 멀리 서포 김만중 유배지였던 노도가 보인다.

    유리알 같이 맑고 깨끗한 앵강만은 해안선을 따라 큰바위들이 널려 있
    고, 미역 등 해조류가 많이 붙어 산다. 이게 바로 전복의 주식. 전복은 스
    테미너 증강과 폐결핵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패류의 왕」으로 원래 뻘 바
    다에는 살지 못하고 바위에 붙어산다. 이곳 앵강만에서 생산되는 전복은 옛
    날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그 맛을 자랑한다. 그렇듯 남해 남면은 200여년
    간 전복 산지로 알려져 있다.

    기자가 찾은 날은 마침 해녀들이 홍현 앞바다로 물질을 하러 가는 날이었
    다. 물때 맞춰 한달에 20~22일 작업을 한단다. 오전 11시30분에 해녀들을
    실은 배는 떠났다. 오후 3시30분. 7~8명의 해녀들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뭍
    으로 발을 내린다. 해삼 200㎏, 전복 10㎏, 소라 20㎏... 등 바다에 몸을
    내맡긴채 숨가쁜 물질 끝에 얻은 수확이다.

    이들 해녀들은 대부분 제주도 출신들로 이제는 남해가 고향이 돼버렸다.
    5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나이가 지긋하다.
    60대의 한 해녀는 『열 서너살때부터 했으니 바다에서 나서 바다에서 쭈
    욱 산 기라. 비가 와도 바다만 잔잔하면 물질을 나가제』라고 말하고는 연
    방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산물들은 위판장을 통해 남면 일대 횟집
    과 전국 각지로 실려 나간다. 평산마을 사계절횟집, 향촌마을의 유구횟
    집, 월포 꼭두방횟집 등 남면 해안가에서는 어렵지 않게 전복죽을 맛 볼
    수 있다.

    잔뜩 기대하고 평산마을 조용한 바닷가 사계절횟집에 들러 전복죽을 시켰
    다. 녹두빛을 띤 전복죽을 한그릇 가득 내놓는 폼에 영락없는 시골 인심의
    넉넉함이 담겨 있다.
    한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어본다. 구수하고 진한 맛이 입안 가득 찬다. 동
    행인들의 눈빛이 모두 「참 맛있다」는 표정이다. 게눈 감추듯 한그릇 후
    딱 비우고 만다.

    사계절횟집 정정애씨는 『이제 며느리한테 전복죽의 맛을 전수 중』이라
    며 『천혜의 청정해역인 남면에서 채취한 자연산 전복을 내장과 함께 죽을
    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복의 똥이라고 할 수 있는 생전복 내장을 함
    께 넣는 것이 특징. 전복 자체도 높은 영양가를 지니고 있지만 이 똥에는
    보다 높은 영양가가 있다고 정씨는 덧붙였다.

    25년째 해녀들과 함께 전복 채취업을 해 오고 있는 홍현1리 이장 김경진
    (나잠어업선 선주)씨는 『매년 4월에 열리는 전북축제는 남해의 전복을 저
    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오염 안된 깨끗한 바다에서
    나는 자연산 전복을 쓰니 맛이 기가 막힐 수밖에...』라며 자랑이다. 그러
    나 잔잔하기만 한 바다가 밤에는 전쟁터나 다름없단다.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다이버들이 전복을 훔쳐 가니...』 말 끝을 흐린다.

    홍현 앞바다. 낙조가 아름다운 해안, 하릴없이 밀려온 파도가 『쏴아, 차
    르르르륵』 자갈 굴리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글:김다숙기자 dskim@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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