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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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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II ]맛, 그리고...(9) 진주비빔밥

  • 기사입력 : 2002-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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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장도 벌떡 일어난다는 일손 바쁜 모내기철,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큰 양푼 그릇에 콩나물무침 무나물무침 오이무침 가릴 것 없이 뒤섞어 몇
    숟가락 떠서 속에 넣고는 곧장 무논으로 들어갔다. 할 일은 많은데, 느긋하
    게 이 반찬 저 반찬 집어 먹을 처지가 못되었다.

    일꾼들 참 장만하랴 밭일하랴 손 놀 틈없던 시골아낙들은 또 어땠는가.
    바가지에 보리밥 서너 주걱 퍼담아 몇가지 먹다 남은 나물 얹고는 고추장
    에 비벼서는 부엌에서 선 채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비빔밥은 그랬다. 바쁘면 바쁜대로 주린 배를 얼
    른 채울 수 있는 「시간의 음식」이었다.
    비빔밥은 한데 섞이는 나물의 종류만큼이나 그 유래에 관한 설(說)도 다
    양하다.

    농경문화에서 나왔는가 하면, 전란속에서 나오기도 했고, 사찰 법회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제사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으로도 먹었고, 섣달 그
    믐날 남는 음식이 없게 집에 있던 밥에 반찬을 모두 얹어 밤참으로 먹기도
    했다. 궁중에서는 입궐한 종친에게 점심으로 대접했고, 임금이 몽진할 때
    먹던 것도 바로 비빔밥이었다는 게 한양대 생활과학대학장 이효지교수의 이
    야기다.

    이런 비빔밥은 이미 1800년대의 「시의전서」나 「동국세시기」에 기록
    이 남아있을 뿐아니라, 그 유래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까
    지 제기되고 있다.
    때나 곳은 다를지 몰라도, 바삐 먹으려던 음식이면서도 영양을 고려한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지역은 진주와 전주, 그리고 황해도 해주 등이다.
    이 가운데 진주비빔밥은 진주의 상징인 진주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
    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의병과 관군, 그리고 돌
    멩이를 나르던 부녀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생겨난 음식이라는 설이 그것이
    다. 시간을 아끼기 위한 음식이었던 게다.

    진주시 대안동 중앙시장 일대에는 그 비빔밥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비빔밥에 올리는 나물의 종류 등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
    라도, 「진주비빔밥」의 맛을 전하는데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음식점 주
    인들은 말한다.

    1927년부터 진주 대안동 중앙시장에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천황식당
    (☏741-2646). 이 집은 비빔밥을 낼 때 밥 위에다가 「보탕국」 한 숟가락
    을 끼얹는 전통적 방법을 고수해오고 있다. 쇠고기와 말린 문어, 홍합을 가
    마솥에 넣어 곤 보탕국은 영양도 영양이지만 비빔밥의 맛을 깊게 한다는 것
    이다.

    여기에다 집에서 담근 간장에 버무린 콩나물과 숙주나물, 무나물, 고사리
    나물, 양배추나물, 그리고 해조류인 속칭 속데기나물을 놓고 직접 담근 고
    추장을 올린다. 나물은 계절에 따라 호박나물이나 미나리나물이 끼어들기
    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얇고 가늘게 썬 야들야들한 육회가 더해지면서 눈맛까지 돋
    운다.

    이 집 안주인인 김정희(49)씨는 『처음 음식점을 연 시할머니께서는 곰국
    에다 밥을 지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을 따르기 힘들게 됐다』면서도 『예
    나 지금이나 소금과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진주비빔밥에는 또하나 비빔밥과 함께 나오는 선지국이 다른 지역의 그것
    과 구별되는 점이다. 살코기와 선지, 간, 허파, 천엽, 내장을 푹 곤 국물
    에 작고 도톰하게 썬 무와 콩나물, 그리고 대파가 들어간 선지국은 고추장
    때문에 얼얼해진 입안을 어느 정도 씻어주면서, 특유의 얼큰한 맛을 선사한
    다.

    진주비빔밥과 쌍벽을 이루는 전주비빔밥이 20여가지의 재료로 도회지식
    화려함을 자랑한다면, 이곳의 비빔밥은 소박함의 미를 내세운다.
    비빔밥에는 사실 「튀는」 재료가 없다. 그래서 이것저것 섞어 놓은 것
    을 두고 「비빔밥○○」라고 비아냥거리지 않는가.

    그러나 비빔밥에는 그런 특별한 것이 없어 우리의 정서에 더 맞닿는지 모
    른다. 고소한 맛의 나물이든, 매콤한 맛의 고추장이든, 감칠맛의 육회든 모
    든 재료가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바로 「비빔밥」이기 때문이다.

    마침 진주시에서는 오는 25일 시청 구내식당 등에서 진주비빔밥의 전통
    을 되살리기 위한 세미나와 시식행사를 곁들인 비빔밥축제가 열린다고 한
    다. 여기에는 천황식당 외에도 제일식당(741-5591) 등 너덧 곳의 시내 전문
    음식점들이 합심하여 비빔밥의 진미를 진주시민 및 관광객들에게 전한다고
    한다. 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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