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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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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맛, 그리고...] (13) 의령 메밀국수

  • 기사입력 : 2002-07-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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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
    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지난 1936년 「조광」지에 발표된 이효석
    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구절이다.

    굳이 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
    리네 시골 어디에서든 산들바람에 하얀 물결을 이루는 메밀밭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밭에서 거둬들인 메밀은 묵으로, 국수로 식탁에 올려져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고, 별미로 입맛을 돋우기도 했다.

    국수형태로 만들어진 대표음식으로는 물론 냉면과 함께 김칫국물에 말아
    먹는 강원도 막국수. 둘다 차게 해서 먹는 것들이다.
    그러나 의령에서 맛보는 메밀국수는 뜨거운 국물을 부은 얼큰한 맛의 음
    식이다.

    메밀국수의 일본말인 「소바」로 더 잘 알려진 의령 메밀국수는 일본식
    이름 때문에 그 유래를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원조격인 의령 읍
    내 식당뿐만 아니라, 창원과 마산에 있는 분점들도 하나같이 「의령소바」
    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바, 즉 일본의 메밀국수는 고려시대 때 한 선승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본의 메밀국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소
    바」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다.

    일본에서는 우리의 분식점 등에서 내놓는 장국에 찍어먹는 메밀국수인
    「자루(삶은 국수를 올려놓은 대나무 채반)소바」외에도 강원도 막국수와
    같이 차가운 물을 부은 것에서부터 의령 메밀국수의 경우처럼 뜨거운 국물
    을 부어 먹는 것 등 수많은 소바요리들이 있다.

    해방직후 현재의 의령군청 앞에서 「의령소바」집을 열었다는 김처악
    (79) 할머니.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살다 귀국한 신반(의령) 사람한테서
    배웠어』라는 김 할머니의 말에 비춰, 의령 메밀국수는 그 근원을 일본의
    소바에 두고 있는 것같다. 일본에서는 에도(江戶)시대(1603~1867) 중기에
    접어들어 소바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김 할머니가 배운 「의령소바」는 지금의 그것과는 큰 차이
    가 있다. 비록 소바라고 했지만, 메밀없이 밀가루로만 만들었던 일반 국수
    였다. 또 현재 의령 메밀국수의 맛을 살리는 쇠고기 장조림도 김 할머니가
    우리 입맛에 맞춰 「고안」한 것이다.

    지금은 김 할머니에 이어 그 여동생인 막내(57)씨가 자리를 옮겨 「다
    시」 문을 연 읍내 「다시식당」.
    이 집은 시장통 방앗간에서 빻은 메밀가루에 찰기를 보태주는 부재료를
    언니에게서 전수받은 「비법」에 따라 섞어 반죽을 한 뒤, 주방 국수틀에
    넣어 가락을 뽑아낸다. 거무스름한 메밀국수 특유의 빛깔이다.

    가마솥에 익혀 낸 면발에 살짝 데친 시금치와 볶은 양배추, 그리고 길게
    찢은 쇠고기 장조림과 양념장을 얹고는 멸치와 다시마·무 등을 함께 넣어
    달인 뜨거운 국물을 부어 내놓는다. 이와함께 시원한 국물의 냉메밀국수와
    매콤한 비빔메밀국수도 있다.

    이렇게 나온 의령 메밀국수는 그 먹는 법도 따로 있는 것같다.
    우선 입맛에 따라 다르겠지만, 식초를 몇 방울 치고 특히 김 할머니가 심
    심한 맛의 일본식 소바를 의령식 소바로 개량하는데 결정적 역을 맡고 있
    는 짭짤한 쇠고기 장조림을 한 젓가락의 면발과 함께 먹어야 한다.

    그리고는 매콤하면서도 얼큰한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 보자. 전날 과음으
    로 속이 불편한 사람들이 복어국이나 콩나물국 대신 의령 메밀국수를 찾는
    이유를 알 게 된다.

    쇠고기 장조림의 역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
    장. 메밀국수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일본에서는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소바를 3할(메밀
    30%, 밀가루70%), 또는 5할, 8할 등으로 나누고 있다. 찰기의 정도에 따라
    느끼는 맛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령 메밀국수집에서는 그 비율을 고도의 영업비밀로 분류하고 있
    다. 면에 들어가는 다른 부수적인 재료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메밀국수,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건너온 소
    바, 그러나 의령소바는 더이상 소바가 아닌 우리의 메밀국수가 된 느낌이
    다.

    읍내 전문식당으로는 시장옆 다시식당(573-2514)과 함께 제일식당(573-
    3267)이 있다. 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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