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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맛, 그리고...] (14) 진주 콩나물 해장국

  • 기사입력 : 2002-07-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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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주불사의 기행을 영웅담(적어도 주당들에게 한해서)처럼 들려 주는
    「명정 40년(酩酊 四十年)」의 수주(樹州) 변영로나 지인들과 대작하다가
    새벽에 귀가하는 것이 예사였던 「신출귀몰의 주선(酒仙)」 시인 조지훈을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과 낭만을 다스리는 데 술이 빠질 수 없었던 것은
    숙명이었고 그 숙명은 질긴 생명력으로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술과 해장의 인연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
    이 아닐 수 없다. 술이 밤에 사람의 속을 다스리면 아침에는 해장이 사람
    의 속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해장에는 북어국도 선지국도 좋고 파국이나 조개국, 우거지국도 좋지만
    가장 손쉬운 것이 콩나물국. 평범했던 콩나물국이 이름난 「진주 콩나물 해
    장국」으로 탈바꿈한 것은 20여년전이다.

    한기연(70·진주콩나물해장국 대표)씨는 『30년 교직생활을 접고 「느끼
    하지 않고 깔끔한」 해장국을 만들 수 없을까하고 생각하던 중 지금의 진
    주 콩나물해장국을 개발했다』며 콩나물처럼 단순한 동기를 소개한다.

    토장에 버섯, 쇠갈비, 배추속대, 콩나물 등을 넣어 오래 우려내 기름기
    가 있는 전주 지방의 것은 「해장국」이라기보다는 「해장국밥」에 가까워
    깔끔한 맛이 덜하다는 게 한기연씨의 설명. 반면 진주의 콩나물해장국은 깔
    끔하고 시원한 맛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비결이라고 한다.

    『지금은 우리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여러 지방으로 나가서 해장국
    가게를 하고 있다』며 『처음 콩나물해장국을 만들었을 때는 아침이면 늘
    밀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옛날 잘나가던 기억을 되새긴다.

    비법은 짐작처럼 간단하다. 조개, 멸치 등으로 우려낸 국물에 비료나 약
    을 쓰지 않아 통통하지 않은 콩나물을 밥과 함께 뚝배기에 넣은 뒤, 끓여
    둔 국물을 옮겨 부어 바글바글 끓이다가 파를 넣는다. 거기에 메추리알을
    하나 동동 띄워 새우젓과 함께 손님 상에 올린다.

    뜨거운 콩나물해장국을 한 그릇 다 비울 즈음이면 온몸에 땀이 홍건히 젖
    는다. 약장수처럼 설명하자면 수분대사를 원활히 해주며 체내의 알코올이
    나 중금속 등을 땀으로 배설시켜 주는 효과를 톡톡히 보여준다. 이를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청열이습 작용」과 「해독작용」.

    콩나물 속에 있는 아스파라긴이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생성
    을 돕는 등의 이야기는 관두자. 콩나물에다 조개를 넣어 국물을 우려낸 그
    시원한 국물이 속에 들어가면서 「화-」 풀리는 느낌이 들면 그만이다. 복
    잡한 효능의 성분을 운운하는 것은 구차한 조잘거림.

    20여년전 진주 콩나물해장국밥을 나름대로 개발했다던 한씨는 끊이지 않
    는 손님들 때문에 전국적인 체인을 만들까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갑자
    기 찾아든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지자 그만 두었다한다. 다만 함께 일하
    던 사람들이나 지인들이 비법을 배워 각 지역으로 가서 나름의 진주 콩나물
    해장국 가게를 차리고 있다고.

    어떤 집이든 대개 「비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마련이지만 진주
    콩나물해장국 가게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진주 콩나물해장국이야 자신
    이 개발한 것이지만 그 맛은 콩나물과 갖은 음식 재료들이 만들어 내는 것
    이기에 그 맛은 개인의 소유일 수 없었다.

    진주 콩나물해장국, 그 「나눔의 해장국」이 주당들이 찾는 곳마다, 시원
    한 콩나물국이 먹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 찾는 곳마다 깔끔하고 산뜻한 맛
    을 선사하는 건 맛의 은밀한 독점에서가 아니라 상쾌한 공유에서 우러난 맛
    이기 때문이다.
    /글 권경훈기자 hoon519@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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