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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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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맛, 그리고...] (17) 의령 장터 국밥

  • 기사입력 : 2002-08-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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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의 향기-맛 그리고.... (17) 의령 장터 국밥

     그날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지만 장판은 벌써 쓸쓸했다지요. 더운 햇발
    이 등줄기를 훅훅 볶는 여름날 장터. 메밀꽃 필 무렵 허생원이 다른 장으
    로 옮겨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답니다.

     의령 장터. 남순덕 할머니는 「훅훅」 찌는 서른번째 여름을 또 대면하지
    만 처음 맞던 그날처럼 한 켠에 걸어 둔 커다란 무쇠솥에 쇠고기국을 「절
    절」 지금도 끓여내고 있습니다. 허생원처럼 할머니가 장터를 떠도는 장사
    꾼이 아니기에 서른 해를 같은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여든 두해를 사는 동안 쟁쟁한 도내 인사들이 국밥 하나를 먹기 위해 멀
    리서 찾아 들던 호시절도 있었어요. 기력이 쟁쟁할 땐 도 음식대표로 도시
    에 나가 가마솥 비우기를 수차례 한 적도 물론 있었구요.

     넉넉하게 건더기를 건져주다보니 나중에 건더기가 없을 때가 있어 불평
    을 늘어놓던 형사들에게 되레 호통을 치던 기억도 생생한데. 그새 구멍 난
    무쇠 솥을 다섯번 갈았습니다.

     나이 든 몸을 솥 갈듯 할 수 없었던 남 할머니는 세월과의 정면승부가 무
    섭다네요. 아침 이른 시간에는 손자가 할머니 말씀에 충실하게 국을 끓여내
    고 오전에는 딸 둘이 와서 돕고. 집안 형편 상 맡아 키워야 했던 손주들이
    이제는 「수정식당」에서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젊은 손발이 되었어요.
    「삼대」가 힘을 합쳤습니다.

     『여름엔 새벽, 저녁으로 많이들 와. 겨울엔 시도때도 없지. 장이 3, 8
    로 끝나는 날 서는데 이제는 장날하고는 크게 관계없이 찾아. 마산, 부산
    멀리서는 서울서도 오지』 여전히 인기가 있다는 말을 걸죽히 돌려 말씀하
    셨지요. 참, 비가 오면 또 손님이 많다고도 하셨어요.

     장날 뭐 사러 나오든 할일없이 구경나오든 한쪽 구석이나 나무의자에 쪼
    그리고 앉아 먹었던 옛날의 모습은 이제 아니예요. 지금은 맛있는 국밥, 이
    름난 「의령국밥」을 먹기 위한 순진한 탐식의 형태를 띠지요.

     즐겨 먹는 이유야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만 맛이야 변할 수 있나요.
     고기는 한우만을 골라와 먼저 수육을 만들고 가마솥에서 푹 끓인답니다.
    수육은 잘 익으면 따로 건져 냅니다. 수육이 우러난 국물에 설명하기도 힘
    든 비법이 발휘되죠.

    조미료? 할머니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십니다. 콩나물과 무도 넣어 끓
    인 후 간이 들면 밥을 말지요. 뭐 더 자세한 조리법이야 필요가 있나요. 어
    차피 집에서 해 먹을 것도 아닐 바에야. 의령 국밥은 의령에서 먹어야죠.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의령 국밥이 의령
    을 떠나면.... 상상하기도 싫군요.

     국밥의 유래요?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면 서비스 국물로 주던 「술국」에
    요기되게 밥을 말아 「국밥」의 형태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바쁜 장사치
    들이 후루룩 먹고 물건 사고 파는데 전념하기 위해 생겨났었을 수도 있지
    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들이 한데 합쳐졌을 수도 있구요.

     기원이야 어떻든 맛 깊은 「의령장터국밥」을 먹으면 이미 「장터」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 갖가지 상상들을 보너스로 향유할 수 있지요.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TV나 소설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통해서 말입니다. 시골 장
    터를 어린 시절 향유했던 이들은 과거의 향수를 깊숙이 느낄 수 있어 더 좋
    겠지요. 삼대가 함께 이어가는 맛 속에서 옛날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런 조
    건반사인지도 모르겠네요.

     의령에 장이 서도 예전 같지 않겠지만 장터 국밥 맛은 그때와 지금이 따
    로 없습니다. 되물림 해서 국밥집을 하는 데는 「수정식당」 외에도 두어
    군 데 더 있답니다.

     의령까지 가서 국밥 한그릇만 먹으면 섭섭하죠. 수육도 있어요. 입안에
    녹아든다는 상투적 표현은 그 수육의 맛에 녹아 있다 태생하지 않았나 하
    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허생원이 의령 장터에 왔었으면 국밥 한그릇 더 먹고 가려고 다른 장으
    로 옮길 마음을 쉽게 먹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혹 그 내용이 소설에서
    빠진 것은 아닐까요?
    글 권경훈기자 hoon519@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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