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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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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II-맛 그리고...] 거제 해물뚝배기(19)

  • 기사입력 : 2002-09-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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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직하게 보이지만 믿음직스런 사람, 같이 지낼수록 깊은 맛을 느끼게 하
    는 사람을 곧잘 뚝배기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한다.

    냄비처럼 금방 끓여낼 수는 없지만, 냄비처럼 쉬 식지 않는 뚝배기는 그
    래서 깊고 풍부한 맛을 내기 위한 그릇으로 이용되고 있다. 설렁탕이나 곰
    탕도, 청국장이나 된장찌개도 다 오지그릇인 뚝배기로 그 맛을 살리고 있
    다.

    지방에 따라 툭배기 툭수리 툭박이 투가리 둑수리 등의 이름을 가진 뚝배
    기는 이름 만큼이나 그 모양도 제각각이다. 밑바닥이 좁으면서 조금 큰 키
    의 중부지방 뚝배기, 깊이가 얕고 배가 둥글게 곡선을 이루는 동해안 뚝배
    기, 그리고 물 한컵도 제대로 담을 수 없는 크기의 배가 퍼진 곡선형 알뚝
    배기 등으로 다양하다.

    양지암과 서이말 등 아름다운 「곶」 사이에 자리한 거제 장승포항에도
    뚝배기가 있다. 섬지방 답게 연근해에서 나오는 온갖 해산물을 한데 넣어
    끓여내기 위한 뚝배기다.

    장승포수협 옆과 여객터미널 옆에 각각 본점과 1호점이 있는 「항만식
    당」(☏682-3416, 682-4369). 해물뚝배기를 잘 내놓는 곳이라 하여 찾아
    갔다. 비록 섬지방이지만 생선회를 빼고는 특별한 먹거리가 없는 곳이 거제
    이고 보면, 해물뚝배기라는 말에 귀에 솔깃했던 것이다.

    이 집에서 1인분에 7천원하는 해물뚝배기 두 사람분을 시켰다. 한참 후
    식당에 오르는 뚝배기를 보고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된장찌
    개를 끓여내던 뚝배기를 예상했는데, 난데없이 솥을 연상케 하는 오지그릇
    이라니....

    여느 지방의 뚝배기가 국그릇 한두개 분량의 물을 담을 수 있는 크기라
    면, 이곳 뚝배기는 냄비 한두개 크기에 달했다. 또 그 모양도 원통형의 찜
    통을 닮았다. 4명의 손님이 앉아 있는 옆자리를 흘깃 보니 그 뚝배기는 숫
    제 찜통이다.

    「찜통」 속을 들여다봤다. 우선 주먹만한 소라가 눈에 띈다. 여기에다
    돌게와 개조개, 갯가재, 담치, 바지락 등의 해산물들이 수북히 담겨 있다.
    대략 10여가지다.

    얼른 소라 하나를 집어들어 살을 끄집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상큼한 갯내
    음이 미각을 자극한다. 일행은 소라껍데기를 살짝 코끝에 갖다 대며 이렇
    게 말한다.

    『싱싱한데요.』
    『어떻게 알아요?』
    『바닷가 출신 아닙니까. 소라는 여간 싱싱하지 않고는 안 좋은 냄새가
    나거든요.』

    다음은 꽃게로 잘못 알기 쉬운 돌게. 살이 여물다. 물론 여기에도 갯내음
    이 묻어난다.
    국물맛은 또 어떨까. 된장 푼 국물이라 조금은 걱정됐지만, 텁텁한 맛은
    없고 오히려 담백하다. 게와 조개에, 갯가재까지 차례로 먹다보면, 콩자반
    이나 멸치무침 등 따라나온 반찬에 눈길 줄 겨를이 없다.

    거제뚝배기 맛을 이뤄낸 주인 이천용(44)씨는 해산물에도 궁합이 따로 있
    다고 말한다. 서로 어울려 맛을 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데 모이면 해산
    물 본래의 상큼한 맛을 앗아가는 게 있단다. 소금대신 된장으로만 간을 하
    는 것도 해산물의 깊고도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함이란다.

    이외 된장과 해물에 잘 어울리는 애호박과 파, 그리고 약간 매운 맛을 좋
    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고추장과 고춧가루 정도가 들어간다.
    보다 고급의 해물을 넣은 것은 「장승포 해물뚝배기」(2인분에 2만5천원)
    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미시소라(참소라), 쏙, 때에 따라서는 가리비, 그리
    고 거제산 낙지 등의 해산물들이 추가된다.

    거제뚝배기에는 철에 따라, 또 바다 날씨에 따라 들어가는 해물이 달라
    질 수밖에 없다. 어제 나온 뚝배기와 오늘 나온 뚝배기가 그래서 조금씩 차
    이가 난다.

    맛을 이뤄내는데 꼭 필요하긴 하지만 거제 해역에서 나오지 않는 해산물
    도 있다. 갯가재다. 그래서 이놈을 구하려면 새벽길을 달려 삼천포까지 가
    야 한다.

    『꼭 남해산 만을 쓰려고 고집하다 보니, 수지 맞추기가 힘들어요. 한개
    에 1천원을 훌쩍 넘는 소라에다, 4천원을 호가하는 낙지를 가지고는 배겨
    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거제 해물뚝배기를 없앴으면 없앴지, 수입산
    은 쓰지 않을 것입니다.』

    「거제뚝배기」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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