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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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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II-맛, 그리고...](23) 거제 굴구이

  • 기사입력 : 2002-10-25 00:00:00
  •   
  • 「바다의 우유」에 비유되는 굴. 영어 알파베트 중 「R」자가 들어가는
    계절에 먹는 다는 굴은 10월의 끝머리에 먹기에는 「딱」일 것 같아 청정해
    역을 자랑하는 거제도로 한달음에 달렸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찬 가 싶더니 이내 갯내음이 와 닿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쓰레기통이 하나씩 주어진다.
     분명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들어온 식당인데 면장갑 한짝과, 칼이 상위
    에 놓인다.

    반찬이며 물은 다음 순서다.
     예사롭지 않은 수순이 입맛을 바짝 긴장시킨다.

     『굴구이 주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모 반듯한 떡시루(?)가
    불위에 얹혀졌다.
     『10분쯤 있다 드시면 됩니다』라는 말에 아직까지는 처음 본 장난감을
    어째볼까하는 애들 마냥 어색하다.

     입맛을 다시라고 내온 생굴의 고소함에 취할때 쯤 코끝으로 갯내음을 담
    은 김이 풀풀 올라온다.

    뚜껑을 열어제치자 껍데기채 쌓아놓은 굴이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쓰레기통과 장갑, 칼의 쓰임새가 분명해진다.
    장갑을 낀 한손으론 뜨거운 굴을 꼭 쥐고 다른 손으론 칼을 이용해 까먹
    는다.

     구이 그릇이 떡시루 만하니 껍질을 상위에 차곡차곡 내려놓기도 쉽지않
    아 쓰레기통이 주어진 것.
     하나...둘...셋...
     먹는 행위 자체가 어느정도 손에 익고나면 비로소 맛이 느껴진다.
     굴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그리고 깨끗한 갯향기가 한입 퍼진다.
     배가 슬슬 불러와도 양식장 부표가 총총히 떠있는 바다풍경을 마주치면
    식욕이 다시 솟구친다.

     「지금 먹고 있는 게 바로 저곳에서 막 건져올린 거로구나」는 현장감
    (?) 때문이리라.
     마치 포도원을 찾아 갓 딴 포도를 먹는 기분. 그런 생각을 했다면 제대
    로 맞혔다.

     거제송곡굴구이점(☏632-4200) 백흔기 사장(51)은 이곳에서 30년째 굴양
    식을 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앞바다 3~4포인트서 제법 규모가 큰 6ha의 양식장을 운영
    하고 있다.
     백씨가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구이요리를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
    다.

     『IMF가 막 시작될쯤이니깐 6년쯤 됐나요. 수출도 어렵고 판로도 불투명
    하고, 애써 키운 놈들이 대접도 못받는 것 같아 그래서 식당을 냈습니다.』
     구이 기술은 여수 하양면에서 구이집을 하던 알고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받았다.

     백씨는 어·패류 구이문화는 서해안이 가장 발달했단다.
     예부터-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물량도 많았고 다양한 먹거리가 생겨
    났다고 얘기한다.

     백씨가 굴구이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숫불에 구웠는데 껍데기가 튀고 물
    이 흘러나와 그을음도 나고해 개량한 게 지금의 모습이다.
     어쨌든 굴을 통째로 불에 올려 놓는데 별다른 기술이 필요할까 하지만 그
    렇지 않다.

     바닷물에 건져 바로먹으면 짜고, 민물에 오래 담가두면 싱겁고 신선도도
    떨어지게 마련.
     정확히 가르쳐 주진 않지만 민물에 적당히 재우는게 노하우인 모양이다.
     갯물도 빼고 불순물도 제거하고 그런 이후에 입맛에 꼭 맞는 신선한 구이
    가 만들어지게 된다.

     한판에 굴이 100마리쯤 담기는데 1만1천원, 어른 둘이 먹기에 버거운
    양. 시작할때 1만원에서 손님들의 성화(?)로 1천원을 올린 게 4년전이다.
     별 남을게 없을 것 같다는 질문에 백씨는 당분간 값을 올리지 않겠단다.
     돈도 중요하지만 구이를 통해 굴이 얼마나 좋은 지 알리는 「정직한 수산
    인」으로서 역할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곳에선 식사를 죽으로 대신한다.
     보기에도 맛깔스런 죽이 나오자 백씨는 『이게 우리집 진짜 맛이다』며
    부인 최명임(42)씨를 한껏 추켜세웠다.

     죽도 여수의 같은 집에서 배워 왔는데 전수하는걸 꽤 꺼려했던 모양이다.
     첫 술을 떠보니 그럴만도 하다 싶다.
     재료야 쌀, 굴, 당근, 양파, 파 등이 보이는데다 참기름 맛도 받쳐 뻔하
    지 싶은데 어떻게 조화를 부렸는지 사각사각 씹히는 게 입에 척척 달라 붙
    는다.

     손님들이 나가면서 「잘먹고 갑니다」라는 인삿말이 죽 때문에 나온 것이
    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곳 굴구이는 지금부터 시작해 굴 수확이 뜸해지는 이듬해 5월까지 맛
    볼 수 있다.

    덩달아 인근 식당에서도 생굴과 굴젓 등 다양한 굴요리가 푸짐하다.
    나올때쯤 이들 부부는 내달 중순부터 텃밭에서 직접 키운 배추와 싸먹는
    게 맛의 으뜸이라고 귀뜀했다.

     갯가의 느긋함과 푸짐함을 한껏 느끼게 하는 이곳은 옛 거제대교를 지나
    둔덕면~거제면 사이에 있다.
     글=이문재기자 mjlee@knnews.co.kr·사진=이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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