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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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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II-맛 그리고...] 물메기탕(26)

  • 기사입력 : 2002-1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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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날의 지독한 숙취를 감내하면서까지 밤늦도록 술잔을 주고받는 애주
    가들은 속풀이 비법을 하나씩 알고 있게 마련이다.
    콩나물 해장국, 복어국, 북어국, 아구탕. 하지만 겨울철 속풀이에는 단
    연 「이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음식이 물메기탕이다.

    말린 것은 계절 없이 먹을 수 있지만, 생물메기는 찬 바람 불 때가 아니
    면 맛보기 힘든 생선이다. 최근 물메기의 양식 및 방류사업이 시행 직전 단
    계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경제적·기술적
    인 이유로 비양식군에 포함된 어종이었고, 그 덕분에 「자연산 제철」이란
    운치를 얻은 생선이기도 하다.

    거제·통영 일대와 진해 앞바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해역인 이 일대에
    서 물메기가 가장 많이 난다. 보기에는 더없이 투박한 놈이 은근히 까다로
    왔던지, 눈이 많이 내리면 제대로 생존하지 못하고 개펄에 몸을 숨긴 채 죽
    기 십상이라는 게 어부들의 설명이다. 자연히 눈도 없고 물도 따뜻한 경남
    쪽 바다가 물메기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수소문 끝에 물메기탕을 시원하게 잘 끓인다는 집을 찾아, 야트막한 앞바
    다를 끼고 있는 거제 사등면 성포리로 나섰다. 제법 쌀쌀한 초겨울 바람에
    얼굴부터 얼른 들이밀며 들어선 성포의 종점횟집.(☏632-5077)

    차림표에는 아구·복요리부터 각종 회까지 다양하건만 손님 상에 오른 것
    은 어째 죄다 물메기탕이다. 『아저씨, 왜 물메기 뿐입니까?』 『겨울이라
    서요』 질문을 무색케하는 짧은 답이 돌아온다.

    한 그릇에 9천원하는 물메기탕을 사람 수대로 시켜놓고 한참을 기다리니
    「머슴밥」에 다양한 젓갈 밑반찬으로 차린 상이 들어온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물메기탕은 고춧가루를 뿌려 색을 냈지만 사실은
    거의 맑은 국이다.

    말랑말랑하다 못해 흐를 듯한 물메깃살과 국물을 한 술 가득 떠서 입에
    대니 씹힐 것도 없이 후루룩 넘어간다. 생선국인데도 전혀 비리지 않고 시
    원한 맛이 일품이어서, 과연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을만 하다싶다.

    먹어보고 살펴봐도 특별한 양념이나 별다른 재료가 없다. 주인 김종명
    (60)씨의 설명도 그렇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별다른 요리법이 없습니
    다. 물 끓이면서 무 비져넣고, 메기 토막내 넣고, 소금 간하고, 파·마늘
    만 넣으면 됩니다.』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재료인 물메기의 신선도란 얘기다.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메기를 새벽 5시에 성포 구판장에서 사다가 그날 그날 탕을 끓여내는
    데, 11월 중순경부터 2월말까지는 물메기만으로 장사를 할 정도로 사람들
    이 많이 찾는단다.

    주인과 물메기탕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맛을 찾아 제법
    이곳 저곳을 다녔다는 한 손님이 『강원도나 또 다른 지역에서 맛본 「곰치
    국」, 「물곰탕」도 모두 물메기로 끓인 탕인데, 양념을 많이 하고, 신김치
    도 썰어 넣어서 얼큰한 맛은 더하지만, 물메기 고유의 시원한 맛은 경남 쪽
    이 낫다』고 식평(벡?을 들려준다.

    식사 후 들른 인근 고현 시장에서도 겨울 생선 물메기가 좌판마다, 대야
    마다 가득하다. 시장 아주머니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일일이 불러세워 『지
    금 아니면 물메기 못먹습니더, 한 마리 하믄 친정·시집 식구 다 먹을 수
    있으니까 사가이소』라며 「유혹」한다.

    시세는 매일매일 다르지만 작은 것은 1마리에 1만원 안팎, 큰 것은 1만4
    천원, 아주 큰 것은 2만원까지 다양하다.
    물메기 잘 팔리냐는 물음에 비로소 고기 살 사람이 아님을 눈치챘는지 시
    큰둥해진 아주머니들. 『덩치만 컸지 별 남는 것도 없다』며 볼멘 소리도
    하지만, 『그래도 철 아입니꺼. 팔리기는 많이 팔립니더』라고 덧붙인다.

    시장에는 보기에도 푸짐한 물메기가 가득하고, 골목골목의 식당마다 「물
    메기탕 개시」라는 임시 차림표가 붙어있다. 이 곳 거제를 돌아보며 물메기
    탕을 찾아 온 일행은 뒤늦게 겨울을 실감한다.
    /신귀영기자 beauty@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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