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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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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와현 피해 르포] 해상양식시설 `금빛 해변` 삼켜

  • 기사입력 : 2003-09-17 00:00:00
  •   
  • 『마을 앞 해상에 있는 해상가두리 시설이 해일과 함께 집을 덮쳐 다 부
    숴졌습니다.』

    『그동안 마을에서 수차례 시에다 해상가두리 양식장에 대한 허가 연장
    을 내주어서는 안된다고 애원했건만 연장은 계속돼 결국 마을이 초토화 되
    는 비극을 맞게 됐습니다.』

    16일 오후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와현마을에서 만난 이영미(41·여)씨는
    바닷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끌어내 말리다 기자가 양식시설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던지자 이내 흥분했다.

    이씨 소유의 집과 옆 건물 3동이 나란이 있던 자리에는 와현해수욕장 전
    방에 위치한 해상가두리 양식장(5●)에서 떠밀려 온 수십t에 달하는 길이
    20m, 폭 10m의 양식시설이 대신 앉아 있었다.

    20여년째 이 마을에서 살아 온 이씨는 『지금까지 그 어떤 태풍이 와도
    이번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복구작업을 하다 집을 폐허로 만
    든 양식시설만 쳐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 시청으로 달려가 따져보
    고 싶다』고 울먹였다.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마을과 해수욕장에는
    마치 폭격을 당한 것처럼 잔해가 백사장에 널려 있었다.

    얼마전까지 일운검문소 옆 국도에서 바다로 내려다 본 와현마을은 반짝이
    는 금빛 모래와 어우려져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풍광을 자랑해 이 곳
    을 지나가는 운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검문소 옆길을 따라 내려가다 마을 입구에 다가가자 순간 불어오는 해
    풍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와현 마을의 20여가구를 초토화 시킨 해상가두리에서 양식하던 우럭, 돔
    등 수만마리가 같이 떠밀려와 해수욕장에서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천여마리 갈매기떼는 복구작업으로 구슬땀을 쏟고 있는 주민들의 고충
    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백사장에서 죽은 고기로 한가롭게 배를 불리고 있
    다.

    태풍이 강타한 다음날 일운면에서 1차 마을방역을 시도했으나 해안도로
    유실과 폐허된 집들의 잔해가 뒤엉켜 차량 진입에 실패해 악취는 더했다.

    그러나 이 동네 출신인 거송중기 이정봉(38), 조대진(33)씨는 13일부터
    굴삭기 3대와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투입, 폐허된 집의 잔해와 양식시설
    등 수천t의 폐기물을 백사장으로 모은후 트럭으로 실어내 16일 오전부터 해
    안도로 차량 운행이 재개됐다.

    이씨는 『실의에 빠진 동네 선후배들을 위해 태풍 피해복구가 끝날 때까
    지 적극적으로 장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백사장에 쌓아둔 폐기물에서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어 차량 방역은
    물론 주택방문 방역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회관 옆 해안도로에는 복구작업을 하다 지친 노인이 무너진 벽돌 잔
    해에 등을 잠시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수심으로 가득차 있
    다.

    동네 뒤 나대지에 천막이 3~4개 설치돼 있으며 시에서 보낸 듯한 구호품
    상자와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취사도구로 마을부녀회에서 중식을
    제공하고 있다.

    낮에 복구작업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나눠먹는 유일한 공간이다.
    다시 해안도로로 나와 와현유람선터미널 방향으로 가다보면 올해 설치한
    200여m의 방파제 끝부분 1/3 정도가 잘려나갔다.

    새삼 태풍 「매미」의 위력을 실감나게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방파제에는 피해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주민들의 고충
    을 외면한 낚시꾼 30여명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어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16일 와현해수욕장을 지나 예구마을로 가는 도로가 차량 통행이 가능하
    자 주민들은 「수해지역 낚시꾼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도로에다 세웠으
    나 여전히 낚시꾼들은 몰려들어 출입 문제를 놓고 실랑일 벌있다.

    급기에야 경찰이 검문소에서 와현마을로 내려오는 낚시차량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사태를 빚었다.

    주민들은 『강원도 태풍 피해복구시 전국에서 너도나도 봉사활동에 참여
    한 것을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보았는데 5일만에 겨우 예비군 몇명만 지원
    됐다』며 『행정 당국에서 충분한 인력지원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종신(30)씨는 『기존 해안도로에 해일에 견딜 수 있는 방호벽이 없어
    피해가 더욱 컸다』며 『이번 복구시 시에서 충분히 예산을 투입, 백사장
    폭을 더욱 확대하고 해안도로도 학동이나 해운대해수욕장 처럼 높이 2m 정
    도의 방호벽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와현해수욕장은 만조시 마을과 20여m 정도로 인접돼 있어 항상 침수위험
    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해질무렵 어둠이 낮게 깔리자 주민들은 하던 일손을 멈추고 인근 지세포
    나 구조라의 친인척 집으로 불꺼진 동네를 뒤로 하고 이동한다.

    그러나 이번 복구를 통해 주민들은 내년 여름에는 환하게 불켜진 명성높
    은 해수욕장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거제=이회근기자
    leeh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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