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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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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4) 창녕장

  • 기사입력 : 2005-03-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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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장) "사람냄새 폴폴 나야 장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설렌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거의 사라져버린 장날 향수를 되새기며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창녕으로 들어선다. 터미널 옆 도로가를 주변으로 난전이 20m 정도 늘어서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주로 고추와 마늘을 파는 할머니들과 곡물상들이다. 그나마 오전 11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몇 곳은 이가 하나 둘 빠진 듯 자리가 듬성듬성했다. 일부는 벌써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너무 늦게 왔나? 벌써 파장인가?’ 창녕장은 꽤 크다고 알고 있었는데 약간 실망스럽기도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기우였다. 오리정 난전이라 불리는 이곳은 본전이 있는 장터가 아니었다.

        창녕장은 세 군데로 나눠서 열린다. 창녕은 마늘과 고추가 아주 유명해 군에서 옛 공설운동장에 임시로 마늘·고추만 거래하는 장을 마련해줬다. 이곳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반짝 열린다. 외부 도매상들이 들어와 금방 동나 버리기 때문이다. 마늘·고추 장에서 미처 다 팔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의 터미널 옆 길가 오리정 난전으로 올라와 점심까지 자리를 지키다 간다고 한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마늘 세 접을 길모퉁이에 놓고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 마늘 한 접에 얼마예요?” “5천원.”
        “장사 좀 하셨어요?” “마 고마 그렇지.”
        “할머니. 어디 사세요?” “성함은요?“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이상한 눈치다. 기자라고 밝히자 경계하는 듯했다. ‘세월의 주름만큼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일까?’ 질문에 묵묵부답이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옆에서 고추를 팔고 계신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우리 이웃이 신문 방송에 함 나가고 경찰서 군청에 법원까지 증인 선다고 얼마나 시달렸는데.”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는 이름을 말해주면 큰일이라도 날 듯 싫은 눈치를 보인다. 아주머니의 말이 귀엽기만 하다.

        이들을 뒤로 하고 150m쯤을 걸어 올라가면 본전이 있는 재래시장이 나온다. 역시 본전답게 많은 인파들로 붐빈다.
        한쪽에선 입구에 들어서 조금 걸어가자 칼을 가는 할아버지가 눈에 띈다. ‘쓱싹쓱싹’ 톱같이 생긴 틈 사이로 무딘 칼을 가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아나.” “수고했습니더.”
        할아버지가 칼을 다 갈자 갑자기 기다리고 있는 한 아저씨 앞으로 칼을 홱 던져 버린다. 근데 이상하게도 아저씨는 당연한 듯 돈을 주고 인사를 하며 자리를 일어선다.

        김성휘(80) 할아버지. 55년 동안 장날이면 나와 이 자리에서 칼을 갈아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를 찾는 손님들은 칼을 다 간 뒤 던져주는 버릇을 잘 아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칼 가는 것 외에도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옆에 진열해 놓은 함석으로 만든 물 조리개는 예술품이다.
        옆에서 씨앗을 파는 아주머니가 “저 할배 손재주 요선 알아준다. 내하고 30년 동안 옆에서 장사해 왔는데 단골 억수로 많다.” 30년간 이웃? 알고 보니 아주머니도 여기선 명물이었다. 윤말자(70) 할머니. 사실 아주머니 같은 할머니다. 전혀 칠순으로 보이지 않는 윤할머니는 외모부터 심상치 않다. 특히 장갑 사이를 오린 틈으로 빠끔히 나온 알 굵은 보라색 보석반지는 왠지 만화에 나오는 마법의 반지 같다.

        윤할머니는 18살 때부터 직접 키운 30여 종류의 씨를 가지고 다니며 장터를 돌아다녔다. 자그마치 52년이다. 창녕장에는 30년 전부터 단 하루로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10㎖에 2천원’. 한 할머니가 비싸다고 반만 달라고 하자 단호히 한마디 한다. “씨 팔아 뭐 남는 게 있다고. 고마 2천원에 가지고 가소.” 손님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씨를 봉지에 담다가 반 정도를 빼놓고는 천원만 던져주고 도망치듯 달아난다. “아따. 그라믄 되는가.” 윤할머니 냅다 소리치다 그냥 웃는다.
    오후 3시가 넘어서면서 장터의 활기도 점점 수그러든다. 하지만 오히려 여유롭고 정겨운 모습들로 가득하다.

        평상에서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을 치며 무료함을 달래는 과일전 상인들. 민물고기를 즉석에서 회를 쳐 소주와 함께 먹는 어물전 상인.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는 모습들이 행복하게만 보인다.
        옆 빈 공터에는 재래식 뻥튀기 기계 두 개를 양손으로 돌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할머니가 잠시 쉬는 동안 대신 할머니 기계를 돌려주는 모양이다. 40년 동안 뻥튀기 기계를 해온 금실 좋은 노부부라고 맞은편 아주머니가 귀띔한다. 돌아가는 길. 올 때는 봇짐을 한 짐 지고 오던 할머니들이 이젠 가벼운 보자기만 둘둘 만 채 버스장류장 앞에서 웃음꽃을 피운다. 장터는 그런 곳이었다. 신선한 봄내음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물씬 풍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뻥이요~" 뿌연 연기 속 40년 뻥튀기 노부부

        '쓱싹쓱싹' 능숙한 손놀림 55년 칼갈이 장꾼

        푸근한 인정 30년 창녕장 지킴이 씨앗장수 할머니

        이고 진 봇짐 속 파란만장 인생사 장바닥에 풀어놓고…

     

        ▲장터사람들= '참기름집' 강명도(75) 할아버지.
        ‘참기름집’. 재래시장 길을 절반쯤 갔을까. 시꺼멓게 낡은 가게 유리문에 빨간 페인트로 허술하게 그려진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시대 배경을 삼은 TV 세트장에서나 봄직한 허름한 참기름집. 가게 내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기름 짜는 기계는 금방 기름을 짠 듯 남아있는 온기가 아니라면 ‘저게 과연 작동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낡아 보인다. 50년째 허름한 이곳에서 기름을 짜고 있는 강명도(75)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기름 짜는 기계는 보일러로 뜨겁게 달군 다음 깨를 직접 볶고 갈아 기계에 넣고 눌러 기름을 짜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정성이 들어간 만큼 보기와는 달리 그 고소함이 예사롭지 않다. 읍에만 최신식 기계를 도입한 기름집이 20여 곳이나 생겼지만 진정한(?) 참기름 맛을 아는 사람들은 할아버지 가게를 아직까지 단골로 이용한다.

        “옛날엔 손님들이 버글버글했지. 3일 동안 밤을 지새우며 기름을 짠 적도 있었어.” 자신의 골동품을 자랑한다.
        강 할아버지는 경북 달성이 고향이다. 24살에 무작정 창녕으로 내려온 뒤 취직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10여년 가까이 성실하게 직공생활을 하며 주인의 눈에 들었던 할아버지. 40년 전 주인으로부터 기름집을 인수하면서 평생을 기름을 짜왔다고 한다.
        “평생을 이 자리에서 이놈(기계)과 함께 했지. 6남매를 이놈이 다 키웠어.”
        할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아주 젊어 보인다. 60대 초반이라 해도 믿길 정도다. 옷도 항상 깔끔하게 입고 다닌다.

        “참기름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봐. 참기름이 보약이지. 가게주인은 가게의 얼굴이야. 늙었다고 아무렇게나 있으면 올 손님도 그냥 돌아가버려.” 할아버지의 철학이다.
        최근엔 기름장사 외에도 가게 앞에 탁자를 하나놓고 담배를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사실 담배가 참기름보다 더 많은 수입이 되고 있다고 귀띔한다.
    한참 이것저것 물어보다 기자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고민거리도 털어놓는다. 자신이 함께한 이곳이 소방도로로 편입됐다는 것. 평생직장을 잃을 생각에 할아버지는 조금 전과는 달리 한숨을 내뱉는다.

        ▲창녕장은
        현재 창녕에는 장이 세 군데로 나눠 열리고 있다. 시외버스터미널 옆 길가로 20m 정도 늘어선 조그만 오리정 난전과 새벽 6시에 열려 9시면 마치는 술정리 구 공설운동장 내에 장날이면 한시적으로 열리고 있는 임시 마늘고추 시장. 본전이 들어서 있는 창녕 재래시장이다. 본전인 창녕 재래시장에는 상설점포 72개 등 난전상인을 포함해 평균 200여명이 장사를 한다. 창녕에는 우시장도 유명하다. 원래 교리에 있다가 지난 93년 10월에 지금의 위치인 하리로 옮겼다. 부지 2만1천767㎡의 규모로 장날 하루 평균 3백50마리가 거래된다. 한편 창녕군은 올해 아케이드 설치 등 재래시장 환경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주변 볼거리
        창녕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 교동 고분군. 창녕향교. 창녕 석빙고. 창녕박물관. 우포늪. 화왕산. 부곡온천 등 가볼 곳이 즐비하다. 창녕군 홈페이지나 읍내에 들어가면 관광안내도가 자세히 나와 있다. http://www.cng.go.kr

        ▲장터구경도 식후경
        창녕장에는 점심 한 끼 간단히 때우기 위해 이곳을 들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국수집이 있다. 40년 동안 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는 동삼식당 정현순(67)·정인갑(72)씨 부부. 현재는 아들 내외에게 물려주고 장날에만 정씨 부부가 도와주고 있다. 2대째 가업을 이은 셈이다. 반평생을 넘게 해 온 솜씨만큼 국물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인지 취재팀이 간 날도 20석 규모의 식당이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다. 특히 30년 전부터 말아온 김밥은 정씨의 후덕한 얼굴 만큼이나 크기와 맛에 인심이 넘친다. 아이들 소풍가는 날이면 엄마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서 김밥을 사갈 정도라고 한다. 여름엔 시원한 콩국수도 일품이다. 국수는 2천원. 김밥 1인분 3천원.
        이외에도 장터에는 인근 우시장에서 가져온 신선한 선지로 만든 선지해장국과 설렁탕을 파는 식당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추억을 열며
        -1985년 12월 6일 본지에 게재된 창녕장= 예전부터 고추 마늘이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러다 보니 주부들이 새벽 6시부터 대구 밀양 진주에서 완행 첫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또 구한말부터 미두(米豆)가 유명해 보부상들의 활동무대로 전국에 알려졌다. 당시 장터 한 가운데에는 3~4백 년 전 건립된 건물로 추정되는 보부상 장옥(=창녕객사)이 있었는데 기둥뿌리가 썩어 있는데다 상인들이 훼손을 해 보호가 시급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현재의 창녕장은=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5일장 치곤 제법 크다. 고추와 마늘장은 따로 거래되는 장이 있을 정도로 아직까지 유명하다. 재래시장 내부에 있던 보부상 장옥은 지난 83년 지방유형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된 후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88년 5월 현재의 위치인 창녕 만옥정 공원으로 이전 보수했다. 보부상 장옥이 있던 자리는 현재 공터로 평상시에는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장날이면 각종 곡물상들이 들어선다.

        ▲주말 열리는 장
         4월 2일= 진주 지수장. 통영 중앙장. 김해장. 밀양장. 창녕 대합장(십이리장)·남지장. 고성 영오장. 남해읍장. 하동장. 함양장. 거창 신원·위천장. 합천 야로·삼가장
        4월 3일= 진주 일반성장. 진해 경화장. 장유장. 밀양 수산장. 양산 신평장. 의령장. 함안 칠원장. 창녕장. 고성 당동장. 남해 동천장·고현장. 하동 진교장·옥종장. 산청 생초장·문대장. 합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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