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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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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10) 김해장

  • 기사입력 : 2005-05-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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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장]  - 점포 앞 보따리 장수 '共生의 美'

    떨이… 물물교환… 장터만의 情


     # 특별한 문화재
     찾기 쉬웠다.
      김해장은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이 잠든 커다란 능 맞은편에 아스팔트 도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현대식 건물 여러 개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난전은 마치 전통가옥의 문창살 같다.
     구한말부터 번창한 김해장. 10여년 전만 해도 인근 부산의 구포장과 함께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장시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동물원을 방불케 하던 가축시장도 완전히 사라지고 그 몸집도 아주 작아졌다.
     도로변으로 나오면 할머니들이 고구마, 감자, 부추 등 채소류와 곡물을 조금씩 소쿠리에 담아 길게 늘어서 있다. 재미있는 건 대부분 할머니들이 마치 아들네 집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듯 점포를 가진 상인들의 가게 한쪽에 들어가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점. 옆 할머니는 아예 자신이 세(?)들어 있는 가게의 물건을 대신 팔아주기까지 한다.

     “할머니가 이렇게 장사한 지 벌써 5년은 돼요. 점심도 같이 먹는걸요. 간혹 남들은 고부간인줄 알고 나이든 시어머니 장사시킨다고 오해를 받곤 해요. 호호.” 약재상을 운영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다.
     김해 곳곳에 현존하는 국보급 문화재 만큼이나 김해장 사람들의 순박함과 넘쳐나는 정 또한 특별한 문화재란 생각을 해본다.

     # 장터 소리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싱싱한 어류와 해물, 천 원짜리 일색의 잡화, 형형색색의 떡 종류, 파릇한 나물 등 다양한 종류의 먹을거리와 물건들이 다 나와 있다. 중간 중간 들려오는 70·80년대 트로트 음악은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그러나 ….

     한참 장을 돌아보는 순간 시장 입구 쪽에서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감흥을 깬다.
     “안녕하십니까? 김해시민 여러분, 저는 기호0번 000입니다.∼∼”
     그랬다. 27일 취재간 날은 국회의원 재선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중이었다.

     “정치한다는 사람 다 똑같애. 선거만 되면 한 표 얻으려고 아주 생각해주는 척하고 말이야.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면서 뭐 하러 마이크는 저렇게 크게 켜낳노.” 맞은편에서 채소를 파는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내뱉는다.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한 후보의 열띤 연설이 절정에 달할수록 시장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져만 갔다.
      
     # 또다른 시장경제학
     평상시에는 뜸하던 정치인들이 돌아가며 시장을 휩쓸고 가자 오후가 다 가버렸다. 해가 산에 걸릴 즈음 장꾼들도 하나 둘씩 보따리를 싸기 시작한다.
     어물전을 하는 한 할머니가 손님에게 떨이라며 멍게를 한 움큼 더 넣어준다. 그리고 조금 남겨둔 멍게와 생선을 검은 봉지에 가득 담더니 옆쪽 잡화상으로 향한다.

     “이 바지 하나 얼마고?” “1만5천원예.” “아나, 이거 많이 담았으니까 집에 가서 먹어라.” “아이고 할매예, 바지 손자 줄라고예?” 할머니는 검은 봉지를 건네고 받은 바지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한다.
     장꾼들 간에 이뤄지는 특별한 거래 `물물교환'. 특히 `떨이'로도 물건을 다 팔지 못한 장꾼들은 서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자주 현물로 바꿔간다. 아마 같은 직장(?)에서 오래도록 쌓인 온정 때문이리라.

     이른 오전엔 `마수'. 한창 흥정을 하고 물건을 살 때엔 덤', 그리고 장이 파할 땐 `떨이'와 `물물교환'. 우리 장터에는 케인즈나 마르크스의 경제이론보다 더 훌륭한 시장경제법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셈이다.글 =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장터사람들
        ★ 가족 그리며 장터 떠돌이 50년 … 전향군인 안병모(88) 할아버지

     시장 한복판.
     꼬질꼬질한 옷차림. 머리엔 어울리지 않는 정자관. 게다가 특이한 억양까지. 한 손엔 편지봉투 한 뭉치를 쥐고 다른 한 손엔 좌판을 얹은 조그만 손수레를 끄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선을 끈다.

     “사진은 왜 찍어, 뭐하는 사람이야.” 사진기 플래시가 터지자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안병모(88) 할아버지. 낡은 좌판 위에는 한방동의보감, 천자문 등 책 몇 권, 상처 났을 때 붙이는 마스터 밴드, 효자손 등 초라한 잡화를 20년 넘게 팔아오고 있다. 할아버지에겐 유일한 생계수단이지만 `이게 과연 팔릴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움이 먼저 든다.

     할아버지는 북한 출신이다. 고향은 황해도 재령. 6·25 때 징집돼 포로가 된 후 남측으로 전향했다고 한다.
     “나이 서른에 할멈이랑 자식 셋 두고 전쟁터에 끌려왔다가 포로가 됐지. 전향 후 풀려난 뒤 부산으로 왔어. 50년 넘게 시장터 주위를 떠돌며 가게 심부름꾼, 청소, 막노동 안 해본 게 없었어.” 북에 두고 온 가족생각이 나는지 주름진 눈 주위에 물기가 맺힌다.

     현재 어렴풋이 기억하는 가족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세살 터울의 동생 병근(85)씨, 큰 아들 정남(당시 7살)씨과 군대에서 훈련받을 당시 태어나 손수 이름을 지어준 막내딸 순희씨 정도. 얼굴은 커녕 그 이름조차도 요즘은 깜빡깜빡한다며 한숨을 짓는다.
     나이도 나이지만 전향자라는 사회 편견 속에서 숨가쁘게 살아온 할아버지의 고달픈 인생이 고향에 대한 추억마저 희미하게 했으리라.

     “고향 소식만이라도 알 수 있으면 편히 눈 감으련만. 신문에 나가면 (고향소식) 좀 들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의 표정에 막연한 기대가 언뜻 묻어 나온다.
     “그냥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기자의 대답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할아버지. 손수레를 지그시 잡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꼭 가족 소식을 접할 수 있길 희망해본다.


        ★ 조각칼 '쓱싹' 福 새기는 예술가 … 도장인생 20년 권원호(60)씨
     단 1분이었다. 조그만 타원형 안에 조각칼이 몇 번 쓱싹하자 순식간에 이름 세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다.
     20년째 도장업을 하는 권원호(60)씨.

     그는 판화가면서 서예가다. 손가락만한 도장에 남의 이름을 새겨준 것 만해도 수만 개가 넘는다.
      필체도 낙엽체, 필기체, 반초서, 부적체, 고인체, 부자체 등 한두 개가 아니다.
     작업실을 갖춰놓고 작품 활동을 펼치는 통상적인 예술인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만족하는 도장을 만들겠다는 `예술 혼'은 일맥상통한다.

     “도장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행여 이름이 나쁘다해도 도장은 그것들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그런 도장을 아무렇게나 만들 순 없는거 아닙니꺼.”
      그의 철학이다. 좌판 한쪽에 놓인 사주정설, 성명학전서 등 오래된 책들이 포개져 있는 게 눈에 띈다.

     “사주공부도 하시나 봐요.”
      의아해 하자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름에는 사람의 건강, 명예, 재산, 액운, 복 등이 다 담겨 있지요. 보통은 도장 `印'자를 이름 뒤에 많이 넣는데 손님의 사주나 성명, 관상학 등에 맞게 이름 뒤에 믿을 `信', 점 `点', 글월 `章' 등을 넣기도 하죠. 최근엔 그렇게 주문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구요.”

     그는 요즘 첫 논문(?) 준비에 바쁘다. `인생사'에 관한 논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자신이 만난 사람들, 도장업의 흥망성쇠, 역대 정권마다 달라지는 시장 체감경기 등 자신이 도장업을 해오면서 느낀 인생사를 일종의 자전에세이 형식으로 책을 펴내고 싶다고 한다.
     “점포를 차려서 일을 해오다 7년 전부터 좌판 들고 시장으로 나왔어요. 지금은 김해장에서 유일하게 도장을 파는 사람이 돼 버렸죠. 내가 느낀 인생사를 손자들이 나중에 볼 수 있도록 하나 남겨 놓을까 합니다.”
      훗날 할아버지가 쓴 책을 펼친 손자들의 표정이 사뭇 기대된다.

     


        <장터구경도 식후경> 김해장 한가운데에는 100여 평 규모의 커다란 포장마차가 자리하고 있다. 기존 주차장 공터 자리에 장날에만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한다. 이곳의 주메뉴는 꼼장어. 선지국밥. 선지국수. 50여년 넘게 장사를 해 온 할머니의 손맛이 음식에 그대로 나타난다. 새콤달콤한 양념으로 입맛을 돋우는 꼼장어는 1만5천원.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인 선지국밥. 선지국수는 각각 3천원. 2천500원.

        <주변볼거리>
        ▲수로왕릉= 가락국(서기 42년) 창건자이자 김해 김씨·허씨의 시조인 수로왕을 모신 능침이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채색된 신어문양의 남릉정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원형봉토분 외형은 위엄을 느끼게 한다.
        ▲봉황동 유적= 사적 제2호. 철기시대 초기의 것으로. 높이가 7m. 동서의 길이 약 130m. 남북의 너비 약 30m의 낮은 언덕 위에 이루어져 있다. 패각층이 드러난 단면과 구릉 위에 흩어진 흰 조개껍데기를 볼 수 있다.
        ▲대성동 고분 박물관= 박물관은 지상 1층의 전시실과 지하 1층의 부속시설을 갖추고 있다. 예안리고분군 출토 인골을 토대로 하여 복원한 1:1 크기의 기마. 무사상. 무덤모형과 유물모형 등 금관가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인근에는 가락국과 금관가야의 다양한 유적과 내동에 위치한 연지공원. 문화의 거리 등 가볼만한 장소가 많다.

        <주말 열리는 장>
        ▲5월 14일= 마산 진동장. 진주 문산장. 진해 웅천장. 사천 삼천포·서포장. 김해 진영장. 밀양 송지·구지장. 양산 서창·석계장. 의령 신반장. 함안 군북장. 창녕 이방장. 고성 배둔장. 남해 지족장. 남면장. 하동 북천장. 산청 화계·단계·덕산장. 함양 서상장. 거창 가조장. 합천 대병장.
        ▲5월 15일= 진주 미천장. 진해 마천장. 사천 사천·곤양장. 김해 진례·불암장. 밀양 송백장. 양산 물금장. 의령 칠곡장. 함안 가야장. 창녕 영산장. 남해 무림장(이동). 하동 횡천·계천장. 산청 차황·단성장. 함양 마천·안의장. 합천 가야·초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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