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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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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14) 밀양장

  • 기사입력 : 2005-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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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장]"옛소~ 덤이요" '시장표 인심' 그대로

        보랏빛 탐스런 '오디' 유년시절 새록

        상설시장 35년 세월에 낡았지만 깔끔

        좌판 밥상 삼아 점심 나누는 장꾼들…


        #추억
        여름 초입. 비가 그친 뒤 차창 밖의 누렇게 익은 보리밭 풍경은 평화로웠다. 한 폭의 그림 같다.
        무논과 벌써 모내기를 끝낸 논에선 바지런한 농부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부지런한 손놀림이야 어디 이곳뿐이랴.

        찾아간 밀양장에는 발갛게 익은 앵두와 뽕나무 열매 ‘오디’. 산딸기 등 꼭 이맘 때 진귀한 손님처럼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열매들이 보기만 해도 군침을 돌게 한다.

        오일장에 내다 팔기 위해 하루 전날 종일 목이 빠져라고 소쿠리에 따 모았을 이 열매들을 보니 유년시절의 추억이 그리움으로 밀려든다.

        그 시절 오디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좋은 먹거리였다. 누에치기는 농촌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듯. 밭두렁마다 뽕나무에는 오디가 보랏빛으로 탐스럽게 물들어 갔다. 오디를 따 먹느라 온 입가는 푸르죽죽하고. 흰 러닝셔츠는 얼룩덜룩 물들어 볼썽사나웠지만 달짝지근한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정
        “형님. 밥 먹으러 가입시더~.”
        때마침 점심시간이다. 여기저기서 서로 끼니 챙기는 소리가 사람사는 동네에 온 것 같다.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건너편의 떡집 오복전문점 오난숙(38)씨는 “마수를 잘 해서 오전에 이미 다 팔렸다”며 “기분이다”며 완두콩이 총총 박힌 보리떡을 먹어보라고 덥썩 안겨준다.
        좌판을 밥상 삼아 네 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직접 한 밥을 나눠먹는 모습도 정겨운 시장풍경이다.

        “아이고 마~ 흩어지면 죽는다 아이가.”
        “이게 마~ 사람 사는 모습 아니겠능교”라며 길 안내를 해준 손병주(55) 번영회 부회장의 자랑이다.

        “아이고 할머니. 다슬기네예. 어디서 잡았습니꺼.”
        “저기. 유천에서 잡아서 갖고 온다 아이가.”

        “밖에 나와서 일하면 시간도 잘 가고. 아는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벌고 일거양득인기라”고 말하는 이출 할머니께 연세를 여쭙자 “죽을 때 됐다”며 손사래를 치다가 “무진생. 78세”라고 답한다.

        #정갈
        2·7일장인 밀양장은 마침 장날이라 북적댄다. 내일동 사무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밀양재래시장의 첫 인상은 정갈함이다. 지난 71년 상설시장으로 개장. 35년여 세월에 따라 장옥은 낡았지만 반질반질한 살림처럼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다.

        현재 번영회 회원은 130여명. 주위 상가와 노점상 200여명을 모두 합하면 350여 상인들의 삶터이다.
        한창 잘 나갈 때인 70~80년대만 하더라도 이곳 우시장에서 소 판 돈으로 자식 결혼자금을 마련. 장을 돌며 예복과 예물 등을 다 챙길 정도로 시장경기가 좋았다.

        그러나 시청. 경찰서 등 관공서와 터미널 이전 등으로 상권이 분리되면서 매출이 급감. 지난 89년부터 상설시장 주변에 노점상을 유치했을 정도다. 게다가 대형마트가 입점할 예정이어서 갈수록 태산이다.

        이창현(59) 밀양시장 번영회장은 “인구 11만명인 현재 대형마트 입점시 영세상인들이 큰 타격을 볼 것”이라며 “대형마트 입점을 보류해 달라고 시에 청원서를 제출해 놓고 있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번영회 김대건 상무도 “상권 변화와 함께 가장 시급한 것은 상설시장 현대화로. 지하1층에 주차장을 갖춘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것이다”며 “지자체가 계속 관심을 가져줄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장터 사람들>
        ★ 81세 포목점  박성희 할머니 "내 손으로 돈 버는 재미 말도 못해"

        “옛날엔 비단만 팔았지만 요즘은 이불도 같이 해.”
        시장들어서기 전부터 50여년째 포목점을 해 오고 있는 팔순 포목상 박성희(81) 할머니.

        밀양 단장면에서 버스로 40분을 타고 와서 하루종일 장사를 한다. 물론 문 열고 닫는 것은 이웃의 몫이다.
        한 때는 가을 결혼철이면 하루 3~4벌씩 매상을 올렸지만 요즘은 한달에 옷 한벌 겨우 팔 정도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하긴 70년대 당시 예복 한 벌이면 2만5천~3만원이었지만 지금은 열배가 오른 25만여원이다.

        장사 안되니까 지겹고. 살 사람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포목점을) 팔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애들한테 손 안 벌리고 내 벌어 인심쓰고 싶은데 쓰니까 좋다”며 일하는 즐거움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1남2녀, 3남매 잘 키워 보람도 크다.
        “장사 잘 될 때보다 자식들 공부 1등 할 때가 가장 기뻤다”는 박 할머니는 아직도 밭 2천평 농사도 짓고 있다.

        새벽부터 밭에서 일하고 낮에는 시장에 나와 일하는 박 할머니는 계산기 없이 머릿속으로 암산이 다 될 정도로 총기도 좋고 건강하시다. 일거리는 일하는 즐거움과 함께 건강을 선물로 안겨주는 것 같다.

        ★2대째 뻥튀기 김호영씨 "재료만 보면 불 조절 눈 감고도 하지"
        “콩. 쌀. 옥수수. 떡가래 등 시골서 가져 오는 것은 뭐든 뻥튀기 해 주죠.”
        아버지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힌 지 40여년째. 2대째 뻥튀기를 해 오고 있는 김호영(58)씨.

        중 1학년때 아버지한테 기술을 익혔으니 상품의 건조 정도만 봐도 불 온도를 기가 막히게 조절한다.
        비결을 묻자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며 “경험”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상품의 건조를 볼 줄 모르면 태우기 십상”이라며 “참 많이도 태워 물건을 사서 바꿔 줬다”며 씨익 웃는다.
        물론 지금도 바쁘다 보면 태울 때도 있단다.

        그럴 땐 더 좋은 물건을 사서 바꿔 주면 가져가는 사람이 더 미안해한다고 들려준다.
        장사가 잘 될때는 설 대목이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종일 일했는데 요즘은 신통찮다. 그래도 시골할머니들 흘러간 얘기도 듣고. 세상사는 이야기 듣는 재미가 쏠쏠하기만 하다.

        딸 1명 뒀지만 시집보냈고. 물려줄 사람도 없다.
        노후 준비 하는 셈 치고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할 마음이다.

        “일할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냐”는 김씨 아저씨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다숙기자

        <밀양장은> 2일과 7일 열린다. 1915년 3월 공설시장으로 허가받았지만 그 이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골목을 끼고 시장이 형성.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내일동 사무소(당시 밀양관아)를 중심으로 우시장과 방앗간. 신전. 닭전. 고기전. 솥전. 나무전. 떡집 등 없는 게 없는 큰 시장을 이뤘다. 특히 대추. 밤. 깨 등 곡물과 사과 등 농산물로 유명했으며. 대구와 부산의 중간 장터 역할로 물물교환은 물론 소통(정보)의 공간이었다. 

        <장터구경도 식후경> 보리밥정식과 국수. 수제비. 돼지국밥집이 장터사람들의 시장기를 달래주는 곳이다. 
        남해보리밥집은 긴 테이블에 배추김치. 콩나물. 부추. 양배추 등 갓 무쳐 내놓은 채소 겉절이 10여가지가 양푼에 담겨 놓여져 있다. 역시 양푼그릇에 담아 내오는 보리밥에 된장과 여러가지 겉절이를 넣어 비빈 다음. 다시마와 상추 쌈에 싸 먹으면 꿀맛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비우고 보리숭늉까지 마시고 나면 속이 편안해진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바짝 당겨 앉아 어깨 부딪치며 먹는 맛도 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또다른 맛이다. 2천500원.


        <주말 열리는 장>
        ▲6월 11일= 창원 신촌·가술장. 진주 금곡·대곡장. 사천 완사장. 밀양 무안장. 의령 궁류장. 함안 대산장. 고성 고성장. 하동 화개·악양·고전장. 산청장. 거창장. 합천 묘산장
        ▲6월12일= 진주 지수장. 통영 중앙장. 김해장. 밀양장. 창녕 대합장(십이리장)·남지장. 고성 영오장. 남해읍장. 하동장. 함양장. 거창 신원·위천장. 합천 야로·삼가장

        <주변 볼거리>
        ▲영남루= 밀양시 내일동 남천 강변에 위치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 이곳에는 조선시대 여인의 정절로 대표되는 아랑의 전설을 지닌 아랑각. 단군의 영정을 모신 천진궁. 밀성대군단 그리고 사명대사 유물관으로 건립된 밀양시립박물관이 있다.
        ▲밀양백송= 천연기념물 백송 나무가 있어 알려진 곳이다. 밀양시 활천동에 있는 이곳은 은어. 누치. 피라미 등 각종 강 고기가 낚이는 곳으로 소와 여울이 이어져 있다. (밀양군 홈페이지 참조. http://www.mir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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