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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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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 땅 순례 ③ 문경 봉암사

  • 기사입력 : 2005-06-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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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년에 한번뿐인 만남을 기다리며…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는 희양산은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암봉이다.

        이 산 자락에 자리잡은 봉암사는 일반인에게는 일년 중 단 하루 석가탄신일 음력 4월 초파일에만 산사의 모습을 드러낸다. 인근에 있는 대야산을 자주 찾아 갈 때도 도로 옆에 있는 초라한 봉암사 이정표를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희양산 자락에 가을의 전령이 내리던 어느 날 홀린 듯 찾아갔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몇 굽이 돌아가도 봉암사는 보이지 않고 경비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안내판에는 1982년부터 대한불교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성 문구가 붙어 있었다. 경비실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에게 애교 있는 통사정을 해도 줄이 처진 육중한 산문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봉암사 골짜기에 석양이 내리는 것을 보고 되돌아 나왔다. 며칠 후 원주 스님과 전화가 연결되어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싶다는 부탁을 하여 결국 봉암사를 다시 방문하였다.

        정적이 감도는 봉암사내의 문화재를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은 얻었지만. 인기척은 물론 신발 끄는 소리 하나 없는 정적만 감돌아 고집을 부렸던 마음이 송구스러웠다. 그 후 세번 더 봉암사를 찾았지만 당시 원주스님께서 “속세에서는 스님들 보고 수도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수도하고 있는 깊은 산 속까지 찾아온다” 라고 하던 말이 지금도 귓전에 남아있다.

        석가탄신일 단 하루 공개되는 산사

        선종 '희양산문' 열린 조계종 특별수도원

        굽이굽이 계곡 따라 경내로 가는 길

        풋풋한 숲 향기 실은 자연이 흐르고… 

     

       ▲봉암사로 가는 길
        봉암사로 가는 길은 문경시 가은읍에서부터 차량과 사람들로 붐빈다. 오리쯤 남은 가은읍 상괴리부터는 일반 차량의 출입이 통제되어 한가로운 시골길에는 걸어가는 사람들로 긴 행렬이 이어진다. 경비초소에서 봉암사 경내로 이어지는 길은 숲 냄새가 풋풋한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계절마다 꽃과 숲이 어우러지고 길 옆에는 맑은 계곡 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다.

        ▲봉암사의 개창
        봉암사는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이 열린 절이다.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도헌 지증대사(824~882년)가 창건했다.

        봉암사에 있는 지증국사 비문에 따르면 도헌은 어려서부터 불심이 깊어 부석사에서 출가했다. 열일곱에 구족계를 받고 정진에 힘썼고. 스물에 이미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임금의 간곡한 권유에도 경주로 나아가지 않고 수행정진에만 힘썼다.

        그러던 중에 심충이란 사람이 희양산에 있는 땅을 내면서 선원을 세우기를 청하여 둘러보고 “이 땅을 얻었다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승려들이 살지 않는다면 도적굴이 될 것이다” 하면서 봉암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신라 하대의 새로운 사상인 선종의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문이 개창되었던 것이다.

        창건자 지증대사 업적 기리는 부도비

        대웅보전앞 삼층석탑 단아한 자태 그대로

        계곡 건너 바위엔 마애보살좌상 새겨져

     

        ▲정진대사 부도비와 부도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버리고 계곡을 건너면 절 영역에서 좀 떨어진 동쪽 산기슭에 각각 100m쯤 거리를 두고 정진대사 부도비와 부도가 서 있다.

        부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석 몸체를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거북의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이 두드러지게 커 보인다. 꼭대기에는 불꽃무늬에 휩싸인 보주(寶珠: 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또렷하게 조각되어 우뚝 솟아있다.

        부도는 부도비를 지나 경내에서 벗어난 산중턱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각 부분이 8각을 이루며 탑신(塔身)을 받치는 기단(基壇) 곳곳에 꽃무늬조각과 구름·용·연꽃무늬 등의 불교 세계를 상징하는 각종 장식을 화려하게 두었다.

        탑신의 높직한 8각 몸돌은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조각이 있고. 앞쪽 면에 자물쇠 모양의 조각이 있을 뿐. 다른 7면은 조각이 없다. 지붕 돌은 지나치게 두꺼워 둔중한 느낌을 주며. 꼭대기에는 연꽃 모양의 머리장식만이 남아 있다.

        ▲극락전
        경내에는 점심을 공양하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새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종무소 앞에는 시원스럽게 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초여름 같은 날씨라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나무 감촉이 찹찹한 마루에 걸터앉으니 극락전이 지척에 있다. 앞면과 옆면이 모두 한 칸인데 지붕이 두 겹이며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어 전각의 모습이 매우 독특하다.

        중심 꼭대기에는 탑의 상륜부처럼 보이는 것을 얹고 있는데 ‘절병’이라고 한다. 평면이 정방형인 이런 전각은 대개 본래 목탑이 세워졌던 자리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지증대사 부도비와 부도
        극락전에서 대웅보전 앞을 지나면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지증대사의 부도비가 있다. 최치원의 지증대사 비문은 4산비(四山碑) 중 하나이다. 거북모양의 비 받침은 머리는 용의 형상이고 몸은 거북 모양이며. 등위에는 비를 끼워두는 비좌(碑座)를 갖추고 있다. 비석의 몸체 위로 올려진 머릿돌에는 연꽃무늬와 함께 서로 다투듯 얽혀 있는 8마리 용이 장식되어 생동감이 느껴진다.

        비문에는 지증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당대의 명필인 분황사의 승려 혜강이 83세에 글씨를 썼다. 부도는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기단부(基壇部)를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다. 윗단은 각 모서리마다 구름이 새겨진 기둥조각을 세우고. 사이사이에 가릉빈가를 새겨 넣었는데 그 모습이 극락에 있는 듯 매우 우아하다.

        ▲삼층석탑
        대웅보전앞 석축 아래 넓은 마당에는 삼층석탑이 등대처럼 탑 상륜부만 보이고 하얀 창호지로 만든 연등이 석가탄신일에 맞추어 바다를 이루고 있다. 상륜부까지 제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석탑이 드문데 봉암사 삼층석탑은 비교적 단아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어 반갑다. 탑을 보고 있노라면 세우는데 들인 공이 대단했다는 것을 나이로 보나. 아름다움으로 보나 단박에 알 수 있다.

        ▲마애보살좌상
        삼층석탑을 지나면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봉암사 계곡이다. 육중한 문이 달려있는 선원은 정적에 잠겨있고 스님들이 수도를 하다 잠시 고뇌를 하며 거닐었을 소나무와 대나무 오솔길이 이어진다. 오솔길을 잠시 오르면 바위를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이 너무 차가우며 소름이 돋는 계곡을 건너면 마애불이 있다. 계곡바위에 새겨진 ‘白雲臺’는 최치원 글씨라고 전한다.

       Tip-맛집
        경은집(054-571-8633)은 가은읍 왕릉 1리에 있는 가정집 같은 식당이다. 주인 송소익(63)씨의 묵직한 경북사투리에 우거지와 토란 후추를 넣고 끓인 5천원 짜리 골뱅이(다슬기)국이 특미이다. 4천원 짜리 정식도 먹을 만 하며. 엄살을 떨며 6천원인데 7천원 받아야 한다고 하는 돼지갈비도 일품이다. 인근에 석탄 박물관이 있다.
    (옛그늘 문화유산답사 회장· 마산제일고 학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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