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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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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23) 거창장

  • 기사입력 : 2005-08-09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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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절마다 色色 특산물 '풍성' 

    영호강 둔치 따라 늘어선 장

     환경개선사업 등 '장터 살리기' 한창

     나무그늘 아래 벌어진 막걸리판

     장꾼들의 피곤한 땀방울 씻어주고…


     #지금은 변신중
     어둑하고 칙칙한 과거는 온데간데없다.

     햇빛이 여과되는 깔끔한 투명한 차양막. 일렬로 잘 정돈된 상가점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새로 만든 기차역 주변을 연상시킨다.
     변신중이다. 모든 재래시장이 그렇듯 거창에서도 죽어가는 '장터'를 살리기 위해 많은 변화를 주고 있었다.

     거창읍 중앙리 일대 거창장. 거창읍내로 들어와 중앙교를 지나면 영호강 둔치를 따라 장이 펼쳐져있다.
     거창장은 조선시대 말부터 합천, 함양, 산청 등 인근 지역의 장꾼들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군단위 지역으로는 전국에서 세 번째에 들어갈 정도로 그 규모가 아주 크다.

     "지난 68년 거창공설시장이 들어서고 상설화되면서 5일장이 함께 열립니다. 현재 장터 살리기 차원에서 환경개선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죠.
     지난해부터 이곳은 방호시설까지 갖춘 산뜻한 장터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 계절마다 달라요
     "총각 함 먹어봐라. 요기 특산품이다" 장터로 들어가는 중앙로 입구의 과일전 아주머니가 수박 한 조각을 권한다.
     참외보다 약간 큰 크기의 수박. 거창 복수박이다. 다른 수박보다 훨씬 달고 맛있다.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지리적 영향일까. 여느 장과 다르게 계절마다 나오는 물건이 딱 정해져있다. 다시 말해 계절별 장색깔이 뚜렷하다.

     봄이면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산나물로 장터는 푸른색을 띤다. 초입 여름엔 하우스에서 출하된 새빨간 딸기와 특산품인 복수박으로 빨간색과 녹색이 공존한다.

     선선한 가을로 들어서면 선명한 연두색과 적당히 빨간 사과로 또 한번 옷을 갈아입는다.

     "철마다 다르지예. 하우스 재배로 사시사철 다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계절마다 나오는 물건이 다 틀립니더. 인근에서 가져오는 건 벌써 맛이나 신선도에서 차이가 난다 아닙니까." 맞은편 과일전 아저씨의 자랑이다.

     #휴식의 장(場)
     오후가 되면서 다시 무더워지기 시작한다. 굵은 빗줄기를 퍼붓던 시커먼 먹구름 사이로 강렬한 햇빛이 쏘아 내린다.
     중앙교 바로 옆 강변로에 우뚝 서있는 수백 년 된 나무 아래는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의 차지다.

     시원한 그늘아래 부채 한번 살랑이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장터 중간 중간 장꾼들이 펼쳐 논 '막걸리 판'도 하루의 피곤함을 잊기 충분하다.

     "캬~ 이 맛 아니겠어. 돈 벌어봤자 얼마 벌겠어. 반가운 사람만나 한잔 하고 얘기하는 게 낙이지"
     장사는 안 하고 벌써 낮부터 술을 드시냐는 질문에 되돌아온 할아버지의 대답이다.

     거창장에는 노인들이 유난히 많다. 장꾼들이 대부분 인근 가조, 남상, 남하, 위천 등 11개 면지역에서 올라오는 분들. 거창읍내를 제외하곤 여느 농촌처럼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홀로 고향을 지키는 분들이 대부분. 그러다보니 장날이면 이곳은 그들의 놀이터요 휴식처가 된다.

     #또 다른 연극축제
     "아줌마 무슨 소리합니꺼. 오늘 새벽에 바로 가져온거라예. 마, 사기 싫으면 사지 마소." 어물전에서 갈치를 파는 주인아저씨가 흥분해있다.
     "아 그기 아이고, 비늘이 좀 이상해서 함 물어보는 거 아닙니꺼. 물어보지도 못해예." 아줌마도 지지 않는다.

     '의심' 많은(?) 한 아주머니와 '100% 신뢰'가 장사신념인 어물전 아저씨와의 한판 자존심 대결이다.
     이런 실랑이는 장터 곳곳에서 연출되는 이런 '진풍경'은 현재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거창국제연극제의 화려한 연극보다 더 재밌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하나의 거창한 연극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이곳 지명처럼.
     하나라도 더 팔려는 장꾼과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입씨름과 모습은 하나의 대사요 몸짓이다. 

     게다가 그들이 실랑이하는 물건은 연극무대에 필요한 소품. 한마디로 삼박자가 다 갖춰진 살아있는 진짜 연극인 셈이다.
     거창을 들르면 한번 거창장을 둘러보자. 관람은 무료다. 글·사진=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장터사람들  55년 구두수선 김석년(68)씨

        "척 보면 걸음걸이까지 알지"

        한때 잘나가던 유랑극단 가수… 원로 코미디언 심철호 등 동기

     슥~ 스쳐만 봐도 안다. 걸음걸이는 어떤지, 얼마나 신었는지, 교체 가능한 구두굽인지 아닌지.

     김석년 할아버지(68). 장이 시작되는 강변로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1평 남짓 규모의 허름한 구두수선집이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공간인 이곳에서 구두를 멋 내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한다.

     벌써 구두와 함께 산지는 55년. 현재의 자리에서 구두수선집을 다시 오픈한 건 6년 정도 됐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충북 보은. 40년 전 결혼한 후 처가인 거창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원래 할아버지는 과거에 연예인이었다. 젊은 시절 배고파 구두와 인연을 맺긴 했지만 애초 직업은 유랑극단의 가수.
     '김현'이라는 예명은 한때 시골 젊은 처자들의 가슴을 크게 설레게 했다.

     "이거 하나 달랑 메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면 세상이 내 것 같았지"
     막걸리를 한차례 들이킨 할아버지는 과거의 전성기를 떠올린다. 당시 할아버지의 십팔번은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무대에서 멋들어지게 한 곡조 부르고 나면 사인공세에 몸살이 날 정도로 인기절정이었다.
     타계한 원로 코미디언 심철호씨나 '셔틀콕 여왕' 방수현의 아버지인 방일수(코미디언)씨 등은 할아버지의 극단 동기라고 한다.

     "당시 혜은이(가수) 아버지가 '낙랑쇼 유랑극단' 단주였는데 다같이 입단을 했었지"

     동기들은 코미디니 영화니 TV출연 등으로 성공가도를 달릴 때 할아버지는 유랑극단을 전전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돈이 떨어지면 구두를 닦고 또다시 유랑극단에 들어가고 이런 생활을 반복하며 반평생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사연도 많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결혼해달라는 여자도 많았고 '꽃뱀'한테 걸려 모은 돈을 다 날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할머니도 가수와 팬의 만남이 결혼에 골인한 케이스. 젊은 시절 할아버지가 몸담은 유랑극단이 거창으로 공연을 오면서 인연을 맺었다.

     "할멈 속을 많이 썩였지. 지금은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 시절 내 방랑벽은 나도 어쩔 수 없더라고. 딴따라 잘못 빠지면 말로가 비참해"
     할아버지는 막걸리가 다시 생각나는지 한마디 던지고는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공간 한 켠에 쓸쓸히 남겨진 낡은 통기타만이 할아버지의 영화로웠던 과거를 어렴풋이 가늠하게 한다. 최승균기자

     ▲거창장은= 1·6일날 열린다. 지난 68년 거창공설시장이 들어서면서 상설화 된 시장과 5일장이 함께 열리고 있다. 현재 재래시장에는 280여개의 점포와 150여명의 상인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지난해부터 재래시장환경개선사업으로 일부가 새롭게 단장됐으며 내년 후반기에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장터구경도 식후경= 시장 서쪽 편으로 가면 묵집과 분식집들이 들어서 있다. 보통 '묵만드는 골목'이라고 불린다. 그 중 대구식당은 시어머니의 바통을 이어받은 며느리가 40년째 묵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순메밀로 만든 묵에 김, 호박, 참깨 등과 시원한 육수를 담은 메밀묵채는 단돈 2천원. 그 외 도토리묵(3천원), 비빔밥(3천원)도 맛이 일품이다.

     ▲주변 볼거리
     ★수승대= 수승대는 거창에서 서북쪽으로 16㎞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위천면 황산리 구연동에 있는 거창 제일의 유서 깊은 명소로 거북바위있는 곳이다. 주위에 서원과 정자들이 짜임새 있게 서 있는 사이로 수 십리 계곡물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어 청량감을 더해주고 있다. 현재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월성계곡= 거창 북상면에 위치한다. 덕유산 삿갓골샘에서 솟은 월성천이 동쪽으로 흐르면서 만들어낸 계곡으로, 길이는 5.5㎞이다. 물이 바위와 벼랑을 끼고 돌면서 빼어난 경관을 이루어 거창의 소금강이라 부른다. 1990년 5월 자연발생유원지로 지정됐다.

     ★거창박물관= 1989년 5월 거창유물전시관으로 개관하고 1993년 4월 거창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에는 별관을 건립하였다. 총 1,2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95% 이상이 가야국에 속하였던 거창군 내에서 수집됐다.

     ▲주말 열리는 장
     ▲8월13일= 진주 일반성장, 진해 경화장, 장유장, 밀양 수산장, 양산 신평장, 의령장, 함안 칠원장, 창녕장, 고성 당동장, 남해 동천장·고현장, 하동 진교장·옥종장, 산청 생초장·문대장, 합천장

     ▲8월14일= 마산 진동장, 진주 문산장, 진해 웅천장, 사천 삼천포·서포장, 김해 진영장, 밀양 송지·구지장, 양산 서창·석계장, 의령 신반장, 함안 군북장, 창녕 이방장, 고성 배둔장, 남해 지족장, 남면장, 하동 북천장, 산청 화계·단계·덕산장, 함양 서상장, 거창 가조장, 합천 대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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