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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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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 시인이 찾은 함안 악양루와 남강

  • 기사입력 : 2005-08-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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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강은 北으로 간다


      ‘꽃잎이 질 때를 기다려 / 나도 따라 하류로 간다 / 일몰의 시간 / 잦아진 남강은 왜 북으로 가나 / 저무는 곳에서 보면 / 휘영청 안간힘 속에서 보름달이 뜨고 / 어느새 더 깊은 / 급류의 낙동강을 만나는 / 이 합수(合水)의 장관을…’(졸시 ‘합강정(合江亭)에서’부분)

      오늘도 강은 북(北)으로 간다.

      지리산에서 시작된 강물이 논개의 혼을 싣고 동으로 흘러온다. 바다에 닿고 싶지만 산맥들은 좀체 바닷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함안군 법수면을 지날 즈음 바다를 찾을 요량으로 속도를 가해보지만. 아뿔싸! 남쪽엔 해발 744m의 여항산(艅航山)이 버티고 서 있다.

      여항산의 발목에 부딪힌 강물은 다시 북으로 가고. 길을 따라 이십리를 오르면 함안군 대산면과 창녕군 남지읍 한 지점에서 낙동강에 합류되어 최후를 맞는다.

      악양루는 이렇게 북으로 길을 드는 남강 하류에 있다. 물이 불지 않은 때라면 모래톱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냇버들이 강을 따라 줄지어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쩌다 놀이라도 붉게 물드는 날이라면 악양루를 찾은 나그네는 세사를 잊고 만다.

      하지만 여느 이름난 곳과는 달리 인적이 없다. 가야읍에서 법수면을 따라 가다 대산면으로 우회전하여 약 2~3분 정도. 그것도 아주 속도를 낮추지 않으면 언덕 위의 악양루를 보지 못한다.

      다리를 건너 곧바로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만나 좌회전하면 악양루가 있다지만 그곳에서도 누각은 보이지 않는다. 악양루라는 현판과 음식점이 보일 뿐이다.

      이 음식점 아래 중간에 갈라진 바위가 있고. 바위 틈새를 지나면 작은 오솔길이 나있다. 남강으로 흘러드는 지류(함안천)를 따라 난 길을 올라가면 그제야 누각이 보인다.

      악양루 오르는 길. 돌을 쪼아 만든 계단에 눈길이 간다. 언덕에서 흘러내린 바윗돌의 모양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레 만들었다.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옛 어른들의 지혜와 심미안이 아닌가.

      주변 경관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손쉽게 콘크리트를 발라 만든 요즘의 조악한 편리함과는 얼마나 대비되는 풍경인가. 자세히 보면 누각을 지은 터도 원래 큰 바위가 자리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양반들의 풍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석수장이들의 노고가 맘에 걸린다.

      바다 찾아 동으로 흘러온 강물이 여항산에 부딪힌다

      언덕에 숨어 북으로 가는 강물을 굽어보는 악양루

      강바람 뚫고 노젓는 '처녀뱃사공'이 아른거리는 듯

      악양루란 이름은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를 본떠 지었다. 장강의 중류에 적벽이 있고. 그 중류를 따라 다시 흘러들면 동정호가 있다. 그 호수를 굽어보는 아름다운 누대 위에 악양루가 있으니. 중국의 그곳을 못 가본 이들이라면 함안 악양루에서 저 중원의 쟁패를 겨루던 삼국의 영웅들을 떠올려 봄은 어떨까.

      유비와 조조. 손권의 야망. 복룡. 봉추. 원직. 주유. 노숙 등의 지략. 관우. 자룡. 하후돈. 장료. 황개. 주태 등등. 하늘을 찌를 듯한 사내들의 기개와 호국정신.

      중국 악양루는 무수한 역사의 사연을 안고 있고 두보를 위시한 많은 문장가들의 글을 얻었지만. 함안 악양루는 이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으로 가는 강물을 굽어보며 숨어있는 누각은 그 나름으로 의미를 지닌다.

      선조 때의 학자 정구가 함안 군수를 지낼 때 펴낸 <咸安誌>에 따르면 이런 역수지형(逆水地形)을 순화하기 위해 바꿔 붙인 이름의 풀이가 나온다. 여항산의 ‘艅航’은 ‘산이 낮아 배를 쉽게 저어간다‘는 뜻이고. 대산면의 ‘代山’은 ‘원래 산이 있어야 할 자리’로 풀이한다.

      기실 바다에 인접한 여항산은 결코 배가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요. 대산면은 큰산은 고사하고 물난리를 겪던 낮은 지형이 아니던가. 누각이야 어딘들 없으련만 이곳 악양루는 이런 지명들을 새삼 떠올려준다. 옛날에는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峯)이 쓴 악양루라는 현판만이 걸려 있다.

      남강을 따라 둘러쳐진 둑엔 달맞이꽃과 개망초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남강댐이 서기 전엔 이곳까지 강이었다. 이 강을 건너던 윤부길의 ‘부길부길쑈’단은 강바람에 손이 튼 처녀뱃사공이 젓는 배를 탄다.

      군대 간 오빠 대신에 앙가슴을 헤치는 바람을 뚫고 뱃일 하는 처녀의 갸륵함을 윤부길은 노랫말로 만들었다. 그 노래가 바로 오늘날까지 국민가요로 불리는 ‘처녀뱃사공’이다. 당시 눈밝은 누군가가 악양루에 올라 이 광경을 보지나 않았을까.

      이런 사연을 담은 노래비는 못내 아쉽다. 처녀는 분명 헤진 옷고름에 손발이 부르텄지만 우리들 누이 같이 강인하고 정겨운 모습이었으리라. 그러나 이 조각상은 옷을 다 벗은 나신으로 서양의 인어공주를 연상시키는 백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하얀 대리석이 주는 차가운 질감 탓일까.

      이런 곡절들을 안고 도는 강물을 오늘도 악양루는 지켜본다. 처마 밑에 벌집들이 있는지 여름엔 큰 벌들이 붕붕거린다. 이곳에 오면 사람도 하나의 자연이 된다.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몸짓만이 간간이 보이던 저 아래 함안천에 오늘 무슨 고기떼가 왔는지 쉴새없이 물너울을 만든다.

      ▲이달균 시인은 경남문학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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