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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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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억을 찾아 (26) 진해 마천장

  • 기사입력 : 2005-08-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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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은 기본 50년 이상된 '토박이 장꾼' 30여명 장터 지켜

    100년 넘게 한자리… "규모는 줄었지만 있을 건 다 있다우"


    '상설시장 없는 순수 5일장'   

     #시인의 고향
      진해 마천장이 서는 곳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근대시인이자 승려. 한학자인 월하 김달진(1907∼1989)선생의 고향이다.

      선생이 태어난 소사마을은 장터와 불과 200m 정도의 거리. 이곳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등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과 조그만 계곡이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다.

      지난 80년대 마천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최근 일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골 공기와 주변의 경치를 가리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나마 옛 정취가 거의 그대로 묻어난다.

      청명한 산새 울음소리는 기본이고 꿩이나 솔개 등의 출현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런 주위 환경 탓일까? 선생의 많은 작품들은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을 소재로 삼고 있다.

      “가끔 바람이 오면/ 뒤우란 열무우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가난한 가족들은/ 베적삼에 땀을 씻으며/ 보리밥에 쑥갓쌈을 싸고 있었다.//… 어둔 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별빛 아래 떠오르면.// 모깃불 연기 이는 돌담을 돌아/ 아낙네들은/ 앞개울로 앞개울로 몰려가고 있었다.// 먼 고향 사람 사람 얼굴들이여/ 내 고향은 남방 천리./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생각이여.” -열무우꽃-

      #오리지널 장터
      진해 웅동1동 사무소 앞길에서부터 장은 시작된다. 마천장은 상설재래시장과 함께 서는 대부분의 장과는 차별된다.

      순수하게 5일마다 섰다 파장하는 오리지널 오일장이다. 그러다보니 옛 장옥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사마을로 들어가는 조그만 도로를 사이에 두고 큰 장옥이 양쪽으로 두 개가 들어서 있다. 3년 전 철제기둥과 지붕을 교체한 것을 제외하면 100년도 넘게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존재해오고 있다.

      “아마 일제시대 이전부터였을 걸. 내가 아주 어릴 적엔 장터 옆을 지나는 하천을 따라 장이 길게 늘어섰었지. 인근에선 성산장(부산 강서구 성산동)과 웅천장을 빼면 아마 제일 큰 장이었을거야.”

      이곳에서 5대째 살고 있는 조영기(62)씨의 설명이다.
      지금은 문전성시를 이루던 과거와는 너무 비교된다. 현재 마천장은 아주 작기 때문.

      요즘엔 보통 30여명의 장꾼들이 난전을 펼친다. 대신 오전부터 일찌감치 선다. 원래는 오전 11시면 파하던 장이 올 봄부터는 종일장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객지에서 물건을 팔러온 장꾼 말고는 기존의 장꾼들은 점심이 되기 전 보통 짐을 챙겨버린다.

      #할머니들의 장수비결
      “달수할매 손자 봤다면서.” “개똥이네는 이사간다데.”

      장옥 한가운데. 감자. 양파. 옥수수 등을 조그만 소쿠리에 담은 할머니 장꾼들이 서로의 소식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다른 장터도 그렇지만 마천장에는 유난히 할머니들이 많다. 이곳에서 10~20년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할머니들 대부분은 이곳이 고향이거나 일찍 시집온 경우. 그러다 보니 보통 30년은 기본이고 50년 동안 장터에 출석부를 내미는 할머니들도 있다.

      생계 반 마실 반. 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들을 장터에서 팔아 버는 돈은 하루 3만원 정도. 다만 용돈 버는 재미는 할머니들에게 덤일 뿐이다.

      “할머니 이제 그냥 편안히 집에서 쉬시지 무거운 거 들고 왜 나오세요.”
      “썩을 놈. 내가 돈 벌라고 나왔나. 놀러 나왔지. 집에 있으면 몸이 더 쑤셔.”

      그랬다. 한눈에 보기에도 버거워보이는 무거운 짐은 할머니들의 운동기구에 불과했다.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건 할머니들만의 장수비결이었다.

      #규모는 줄었어도…
      규모는 예전과 비할 바가 전혀 못 되지만 장에 나오는 물건은 여느 장 못지 않다.

      할머니들이 직접 텃밭에서 재배해온 무공해 채소. 인근 용원과 속천항에서 가져오는 싱싱한 생선과 해물. 그 외 외지상인들이 가져오는 옷. 과일. 분재. 계란 등 종류. 올망졸망 펼쳐 놓은 난전에 없는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인근에 대형마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날이면 아파트 젊은 세대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레 이곳으로 향한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잖아요. 어릴 적 생각도 나구요. 흥정만 잘하면 정찰제를 하는 할인마트보다 더 싸게 살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딸과 함께 장을 보러온 주부 김화영(31)씨의 웃음이다.
      규모는 줄었어도 마천장이 100년 넘도록 명맥을 유지해 온 대답이기도 하다.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는 한. 장터를 찾는 젊은 주부들이 있는 한 마천장은 다음 세대에도. 그 다음 세대에도 변함없이 오늘처럼 흘러갈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글·사진=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장터사람들

      욕쟁이 할머니 허일달(80)씨 - 만나는 사람마다 '헬로우' … "이래봬도 마음은 고와"

      “이 XX야!. 니 뭐꼬. 뭐할라꼬 할매들 사진찍노. 죽을래.”
      당황스럽다. 다짜고짜 지르는 고함소리에 좌중의 시선이 확 쏠린다.

      장옥 한가운데에서 채소를 파는 허일달(80) 할머니. 장터에서 ‘욕쟁이 할머니’로 통한다.

      애칭인지 실제 그런지 몰라도 성격이 엄청나게 괄괄하다. 욕도 정말 잘한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연신 퍼부어대는(?) 할머니의 노익장에 혀를 내두를 따름이다.

      할머니가 마천장에 나온지는 40년이 훌쩍 넘었다. 고향 진주에서 서른 살 늦깎이 나이에 시집을 온 이후 줄곧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생계유지는 장터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부.

      “나 원래부터 욕하고 이러지 않았어. 그 도둑놈들 때문이여. 나쁜 XX들.”

      할머니는 장에 팔러 나오는 오이. 박. 고추 등은 국유지 텃밭을 임대해 직접 재배한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임대를 받은 이 텃밭을 5년 전 다른 정부기관으로 소유주가 바뀌면서 필지를 분할해 다른 곳에 임대를 준 모양이었다. 법을 잘 모르는 할머니는 일구던 텃밭이 조각나자 시와 동사무소를 오가며 많은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라 서러움이 한으로 남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나쁜 건 아니다. 속마음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옆에서 어물전을 하는 아저씨는 ‘헬로우 할머니’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고 귀띔한다. 장터에서 보는 사람마다 ‘헬로우’하며 인사를 하기 때문이란다.
      마침 한 둥실한 체격의 중년 아주머니가 오이를 사러왔다. 덤으로 몇 개 더 달라고 하자 할머니 曰.

      “아따 얼마 남는다고. 언제든지 보면 뚱땡이는 욕심이 많아. 그랑께 살이 불지. 아나. 더 갖고 가라. OK?”
      웬만하면 화도 나겠건만 아주머니는 이미 할머니의 성향을 잘 아는 듯 웃음만 짓는다.

      오전에 대충 채소를 다 판 할머니. 이내 주위사람들에게 남은 채소를 나눠주며 자리를 정리한다. 친절하게 ‘욕’도 한바가지 덤으로 주면서. 최승균기자

      ▲장터구경도 식후경
      특별한 먹을거리는 없다. 장터에 나오는 묵무침이나 과자류. 떡 등 군것질로만 한 끼 거뜬히 해결할 수 있다. 군것질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장터 주위에 있는 한식. 중식. 분식 등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으면 된다.

      ▲주변 볼거리
      -해안로= 탁 트인 해안선을 따라 놓여진 20km에 이르는 해안관광도로는 남해안의 절경과 시원한 해풍을 즐기며 하이킹이나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김달진 생가= 1930년대 서정주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한 김달진 시인의 생가가 소사동에 새롭게 복원돼 있다.

      -성흥사 대웅전= 도지정 유형문화재 152호로 대장동 산 180에 위치해 있다. 원래 신라시대 무염국사가 웅동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것을 보은하는 뜻으로 구천동 관남리에 지었다고 전해온다. 사찰뿐만 아니라 계곡의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주말에 열리는 장
      9월2일= 진주 지수장. 통영 중앙장. 김해장. 밀양장. 창녕 대합장(십이리장)·남지장. 고성 영오장. 남해읍장. 하동장. 함양장. 거창 신원·위천장. 합천 야로·삼가장.
      9월3일= 진주 일반성장. 진해 경화장. 장유장. 밀양 수산장. 양산 신평장. 의령장. 함안 칠원장. 창녕장. 고성 당동장. 남해 동천장·고현장. 하동 진교장·옥종장. 산청 생초장·문대장. 합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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