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7일 (수)
전체메뉴

그 추억을 찾아 (28) 하동 진교장

  • 기사입력 : 2005-09-20 00:00:00
  •   
  •   "사람이 있어야 물건을 팔제"

      장사 안된다 투덜대도 마음은 푸근


      “개기(생선) 좀 사 가라 ~~ 그럼 예삐다 쿠지.”
      추석 단대목을 앞두고 큰 장이 열린 진교장.

      때마침 가는 날이 대목장이라 어시장이 활기에 넘친다. 손님을 손짓으로 부르며 쉴 사이 없이 명태포를 뜨고. 바지락을 까고. 생선 비늘을 치느라 한시도 손을 놀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침부터 게릴라성 비가 흩뿌린 장터는 대목장인데도 장이 크게 선 것 같지는 않다.
      “생지 사람이 안 와 못팔겄다. 이리 좀 오소~ 잘해 드릴께. 어지간하면 좀 사이소.”

      그러고 보니 사람의 왕래가 잦은 번듯한 자리에서 비켜나 외진 곳에 전을 펴 놓고 앉은 할머니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도 추석 명절은 명절. “참민어 국산이다. 1만5천원은 받아야 하는데 1만2천원에 준다“며 한 사람이라도 더 붙잡으려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인지 1천~3천원짜리 대신 1만원짜리 배추 지폐가 제법 거래된다. ‘국산이다 중국산이다’ ‘싸다 비싸다’ 등 흥정소리마저 정겹게 들린다.
      이 곳은 50대 아주머니도 새디(새댁)로 불릴 정도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오죽하면 시장내 아동복 매장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50대 아주머니도 이곳선 '새댁'

      시장내 아동복 사라진 지 오래

      펄펄뛰던 전어·숭어 대신 마늘이 특산물 자리 차지

      양포가게 송모(매스컴 탄다며 한사코 이름밝히기를 거부했다)씨는 “옛날에는 아동복을 했지만 요즘은 시골에 애들이 없어 나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옷가게를 하고 있다”며 “피복은 대목이 없다”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며 시간 보낸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무리 면소재지라 해도 신발과 피복의 경우 일반 중메이커라도 들어와야 돈이 외지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마디 던졌다.
      진교 양포에서 대목장을 보러 나온 한 아주머니는 “8남매 대식구다. 그중 맏이라서 제수 비용이 50만원 정도 든다”며 “생선도 사고 김칫거리를 사러 나왔다”고 설명했다.

      “동서도 많을텐데 혼자 장보면 부아가 안나냐”고 묻자 “거기(그것이) 성이 나면 못살지?” 라며 맏동서로서의 넉넉한 마음을 내 보였다.
      “돈 버느라 늦게 오는갑다”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만치 난전에 옷가게가 하나 눈에 띈다.
      손자(손녀)녀석 옷을 고르는 할머니의 손길이 바쁘다. 청바지를 권하며 1만2천원이라고 하자 “애가 크고 뚱뚱하다. 9살짜리라도 13살짜리 옷을 사야 한다”며 이것 조것 고르느라 진땀을 뺐다.

      결국 품이 넉넉한 청바지를 하나 고르는 할머니.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을 손자(손녀)의 얼굴이 햇살처럼 펴질 것을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진교장은 지난해 봄부터 현대화 사업을 추진. 올 1월 제법 번듯한 건물로 이사를 했다. 점포는 76개. 아직 20~30% 정도는 점포가 들어서지 않았다.

      이일순 진교시장 번영회 총무는 “천장 마무리 공사와 차양막 설치 등에 지자체가 적극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한다”며 “이와함께 오일장마다 찾아다니는 난전이 정리돼야 이 지역에 돈이 돌고 지역이 산다”고 말했다.

      새벽 별 보며 고개를 몇개 넘어 찾던 진교장. 그 옛날 펄펄 뛰던 전어와 숭어 대신 마늘이 특산품으로 교체됐지만 아직도 이곳 가을 전어 맛은 여전히 깨가 서말이다.

      ★장터 사람들
      ▲생선장수 30년 박무순 할머니 "2천원 벌면 2천원 쓰고… 그렇게 살어"

      “내 개기(생선)도 먹을 만한데 왜 그냥 보고만 지나가노?”
      “아지매야. 좀 사라.””

      게릴라성 비 때문에 머리카락이 빗물에 젖은 채 한명이라도 손님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박무순(71) 할머니.
      “저어기 금오산 골짝에서 추석 쉬끼라고 기어나왔다 아이가.”

      대목이라 돈도 아쉽고 해서 새벽부터 나왔지만 장사 안돼 죽겠다고 하소연을 쏟아낸다. 하긴 택시비만 왕복 6천원인데….
      마흔 터 시장에서 생선장수를 했으니 어언 30여년. 한때 제법 장사가 잘 된 적도 있었지만 갈수록 장사가 어렵다.

      “자식 한 명 있는데 오늘도 병원 가고… ” 라며 말끝을 흐리는 할머니에게서 고단한 인생역정이 읽혀진다.
      한달 얼마 정도 매상을 올리느냐고 여쭙자 “한달 얼마 벌이는 줄 모른다”며 “2천원 벌면 2천원 쓰고. 1만원 벌면 1만원 쓰고” 라며 입을 다문다.

      한 손님이 명태포에 소금 뿌렸느냐고 묻는다.
      “명태 포 뜨고 누가 맛있는 소금까지 뿌려주노. 오늘 같이 바쁜날 그것도 보도시(겨우) 했는데” 라며 되레 큰소리 치신다.

      장사가 안된다고 하지만 대목장이다 보니 바쁘긴 바쁘다.
      해가 어느새 중천에 떴지만 점심은 무슨. 아직 아침밥도 못 먹었단다.
      손님 한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할머니는 아무래도 오늘 저녁 한끼로 떼우실 모양이다.

      ▲포목점 40년 이일순씨 "옛날엔 운동복 광목으로 만들어 팔았어"
      진교시장 포목점 1호.
      열아홉 살에 시집온 지 2년만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장사를 시작한 게 40년이 넘었다.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는 동안 오로지 포목점으로 밥 먹고 살았지만 그녀가 내미는 명함에는 직함이 여러개 달려 있다.
      진교시장번영회 총무 12년. 진교면·리 중평2구(진교시장 위치) 부녀회장을 15년째 맡아오면서 봉사활동도 해 오고 있다.

      40년 장사 끝에 논도 사고 집도 샀다. 물론 2남 2녀를 남부럽잖게 키워 모두 시집 장가 보냈다.
      1년에 쌀 1가마를 못 먹을 정도로 통보리밥으로 살았지만 논을 샀을 때는 “온 세상에 나만 사는 것 같았다”며 당시의 그 기쁨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고한다.

      “그 전에는 이불이랑 운동복 같은 것도 없었어. 그래서 검은천 광목으로 짧은 팬츠를 만들어 운동복 대용으로 팔았다”고 들려준다. 그 때 아마 쌀 한 되가 60원 했을 거니까 200원 정도 받았는지 몰라.

      90년 초까지는 그럭저럭 밥먹고 살만 했재.
      하지만 IMF를 전후한 10년 정도는 마수를 못할 때도 많아.

      그래서 해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단다.
      “오늘 오전 내내 천원짜리 양말 한 켤레. 베개 5천원 등 1만원어치 팔았다”며 “옛날부터 해 오던 것이니까 공기도 쐬고. 정든 시장 사람들도 보러 나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요즘 시장내 빈상자도 줍고. 소일삼아 밤도 깎는다. 밤 10㎏을 깎으면 알밤 5㎏정도 나오는데 1㎏에 겨우 600원. 모두 3천원 버는 셈이다.
      “밤 깎은 돈 모아 절에 시주도 하면 마음이 편하고 좋다”며 ‘부자가 별건가’고 되묻는다. 김다숙기자

      ★진교장은= 3·8일장으로 하동에서 두번째로 큰 장이다. 일제시대부터 장이 서 온 진교장은 천지가 사람이고. 뒤로 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지만 세월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 둘 빠져 나가고 그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장터 구경도 식후경= 현대화된 상가 내에 있는 죽집엔 콩죽과 팥죽(사실은 콩·팥칼국수) 맛이 일품이다. 65세 할머니가 10여년째 손맛을 자랑하는 죽 한그릇은 2천원. 맛의 비결은 손으로 하는 반죽에 달려 있다. 반죽을 잘 해야 기계에 잘 내릴 수 있다는 것.
    후딱 죽 한 그릇을 비우고 맛있다고 하자 “입맛이 땡긴게 맛있지?”라며 애써 맛 자랑을 손님에게 돌리는 여유로움이 푸근하다.

      ★가볼만한 곳
      백련(白蓮)리 새미골 도요지= 16·17세기 조선 자기의 본류인 분청.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으로 전통 막사발의 본고장이자 일본 국보 찻잔인 이도다완(井戶茶碗) 생산지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1974년 경상남도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어 옛 도공의 후손들이 조선 막사발의 명성을 재현하고 있으며 2002년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칸느 영화제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취화선’의 촬영장이 되기도 했다.

      하동군은 매년 5월 25일 도예(陶藝)와 백련지(白蓮池)를 주제로 찻 사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주말 열리는 장
      ▲9월24일= 마산 진동장. 진주 문산장. 진해 웅천장. 사천 삼천포·서포장. 김해 진영장. 밀양 송지·구지장. 양산 서창·석계장. 의령 신반장. 함안 군북장. 창녕 이방장. 고성 배둔장. 남해 지족장. 남면장. 하동 북천장. 산청 화계·단계·덕산장. 함양 서상장. 거창 가조장. 합천 대병장

      ▲9월 25일= 진주 미천장. 진해 마천장. 사천 사천·곤양장. 김해 진례·불암장. 밀양 송백장. 양산 물금장. 의령 칠곡장. 함안 가야장. 창녕 영산장. 남해 무림장(이동). 하동 횡천·계천장. 산청 차황·단성장. 함양 마천·안의장. 합천 가야·초계장. 글·사진= 김다숙기자 dskim@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