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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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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19) 예제를 활용한 사고력 키우기

  • 기사입력 : 2005-09-26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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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샘: 이제부터 `글샘'은 중학생 수준에 맞춘 논술탐험을 해 볼까 싶다. 자, 그러면 중학 3학년 여학생이 논술형으로 쓴 짤막한 글을 살펴보자.
     먼저 예문을  읽어 보거라.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고, 슈바이처는 생명이 경이롭다고 말했다. 다수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인물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다수의 생명을 해치는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더 큰 악'으로부터 자신의 민족이나 종교적 신념을 지킨다고 말한다. 과연 폭력이 어떠한 명분으로써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폭력은 피해자의 인권과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명분'이라는 것이 뚜렷한 객관적 기준이 없는 주관적 견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옳다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폭력으로 위협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심지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의 경우는 더더욱 옳다 할 수 없다. 자신들의 목표 달성을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만약 폭력이 정당화된다면, 우리는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테러의 위험을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폭력은 다수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개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다른 입장을 가진 개인 혹은 민족이나 국가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조금씩 양보하며 합일점을 찾는다면 사회는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으로써 목적을 달성한다면, 또 이 행위를 정당화시킨다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세계의 평화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글샘: 논술 연습용으로 자주 나오는 주제지. 출제자는 `정당한 폭력은 존재하는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800자 내외로 논술하라고 했을 거야. 이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논지로 글을 쓴단다.

     글짱: 맞아요. 저도 그렇게 쓴 적이 있어요.

     글샘: 학교에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고, 다른 주장을 하기엔 `결론 도출이 어려울 것 같아' 정당화 주장을 택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어느 주장이 답안으로 맞다는 게 아니야. 폭력을 정당화하는 글이든, 비폭력을 강조하는 글이든 간에 자신의 주장에 논거가 뒤따르면 되는 게 논술이니까.

     글짱: 흔히 말하는 논술 기법 면에선 `기본'에 어울리게 쓴 글 같은데요?

     글샘: 그렇지. 글머리에 `생명 존중'이라는 주춧돌을 놓은 뒤 인용기법으로 처리한 구성방식이 돋보여. 그럼에도 어딘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글짱: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드러냈지만 배경지식이 다소 부족하고 참신한 내용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글샘: 오∼호. 글짱이 제법이구나. 그동안 보는 눈이 많이 길러졌구나. 바로 그거야. `다수의 행복추구권 침해'나 `가치관의 충돌' 등 쓰고자 하는 내용은 머릿속에 많았을 텐데, 이를 논거로 활용하지 못한 게 아쉬워.

     글짱: 이런 주제의 글에서 구체적인 논거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글샘: 중3 수준으로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폭력 옹호론'이든 `폭력 부당론'이든, 이런 주제에 어울릴 만한 글감을 우리 함께 찾아보자. 그게 순서겠지.
     
     ­. 폭탄테러를 순교자로 추앙하는 이슬람권의 민족정서와 `폭력의 악순환'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일제시대 윤봉길의사의 폭탄투척을 제3국의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볼까

     ­. 인도의 비폭력주의자 마하트마 간디는 왜 비폭력을 부르짖었을까

     ­. 저항운동(반독재 시위나 독립운동)에서 폭력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 `정당방위'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일까

     ­. `전쟁명분'처럼 폭력의 정당화 주장은 힘센 나라의 지배논리일까

     ­ ­.  학교에서 체벌은 폭력인가

     ­. (고전을 통해 볼 때) 정당하지 못한 지배계급에 저항한 홍길동의 약탈(나쁜 의미로 보면 부자들에게 폭력을 가함)은 정당한가 

     ­.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게 최상의 전략'이라는 손자병법의 대목은 오늘날 `평화적 분쟁해결'이라는 논리로 접근할 수 있는가

     글샘: 대충 이러한 글감 중에 한두 개 골라 자기 주장의 논거로 써먹어야 `짜임새 있는 논술'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 논술은 좋은 말만 골라 쓰는 것이란 편견은 버리거라. 그보다는 생각을 넓혀 논술을 쓴다는 자세가 중요하지.

     글짱: 세부 문장도 지적해 주세요.

     글샘: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고, 슈바이처는 생명이 경이롭다고 말했다. 다수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인물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는 공통점이 있다.》라는 대목을 보자.
     인용이라는 도입 형식은 적절하지만, 논리의 비약 같아. 이런 경우는 설득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
     공통점으로 인용하기보다는 단순히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변형이 필요하단다. 원문을 바탕으로 다듬으려 해도 적절한 논리로 짜맞추기 어렵구나. 아예 이 대목을 포기하고, 앞에 예를 든 논거로 글머리를 재구성하는 방식이 나을 듯 싶다.
     어색한 문장이 또 있구나.
     《그런데 요즘은 다수의 생명을 해치는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사람들도 있다.》에서 `요즘'이 이상하지 않니? 폭력을 정당화하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잖아.
     [민족이나 국가의 내적 기준으로 다수의 생명을 해치는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라는 식의 도입부로 다듬는다면 정당성 주장의 결론을 도출하는 내용으론 잘 어울릴 거야.

     글짱: 용어의 선택이 부적절한 곳은 없나요?

     글샘: 그런 문장도 눈에 띄는구나. 어쩌나. 너무 많이 지적해서 이 여학생이 삐치지는 않을까 걱정이구나.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글쓰기 공부를 위하여 채찍을 휘둘러 보자.
     《그 `명분'이라는 것이 뚜렷한 객관적 기준이 없는 주관적 견해이기 때문이다.》에선 `주관 대 객관'으로 보기보다 `집단(구성원)의 내적 기준'으로 개념을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단다. 논의의 영역을 추상적으로 만들지 말고 사회라는 구체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거든.
     또 《스스로가 옳다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폭력으로 위협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라는 대목을 봐.
     앞 단락에 `테러'를 하는 내용을 언급해놓고선 `민주주의'를 찾으면 안되지. 민주주의란 체제의 하나일 뿐이거든. 그렇다면 이 문장 뒤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군주제 국가를 예로 든 글이 나와야 할 땐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니? 이처럼 논술에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흔히 쓰는 `익숙한 단어'가 함정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단다.

     글짱: 연습예제로 자주 나오는 논술주제가 막상 쓰려면 더 어려워요.

     글샘: 당연하지. 어디서 본 듯한 글이 안되려면 창의적인 내용을 담는 노력이 더 필요하니까.
     어느 여고생의 글을 봤더니 `런던테러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한 흑인 여성의 발언'을 글감으로 써먹었더구나. 그 흑인 여성이 영국정부에 `가해자에 대한 응징을 그만두라'고 요구한 내용을 인용해 `또 다른 희생을 낳는 폭력의 악순환'이 없도록 주장하는 논지를 펼쳤어. 그런 인용을 곁들이면 독창적인 논술로 평가받는단다.
     그렇다고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베끼라는 건 아니란다. 그런 식의 인용기법을 활용하려면 신문이나 책을 많이 읽어 `생각 넓히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어.  (경남신문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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