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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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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21) 흔한 글감 뛰어넘기

  • 기사입력 : 2005-10-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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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짱: 같은 중학생이더라도 글쓰기 수준은 학년에 따라 차이가 많나요?

     글샘: 글쎄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열여섯 살 위성미와 열여덟 살 프로골프선수의 실력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라는 물음과 마찬가지야. 열여덟 살 프로선수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선 답하긴 어렵잖아. 결국 `나이(학년)'보다 `노력이나 재능'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해야겠지.

     글짱: 지난주에 `통일'을 주제로 쓴 중학 3학년의 글은 선수급이랬잖아요.

     글샘: 글을 많이 써 본 학생이기 때문이지. 이곳 논술탐험에선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본보기가 되는 글이 예문으로 적절하거든. 그러면 오늘은 중학 1학년이 같은 주제(`통일')로 쓴 글을 예문으로 소개할게. 먼저 읽은 뒤 질문해 보렴.

    〈 중학 1학년이 쓴  글 - 유일한 분단국가, 우리의 현실 〉

     외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
     그렇다.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돼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가끔 TV에서 방송되는 이산가족들의 상봉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우리의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가족인데, 피를 나눈 혈육인데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이산가족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50여년 동안이나 떨어져 지내면서 생사를 확인할 길도 없이 하루하루를 괴롭고 아프게 살아온 사람들.  그들은 6·25 전쟁의 피란길에서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누가 서로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큰 문제 통일.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그런 문제이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막대한 국방비가 경제발전이나 복지를 위해 쓰일 수 있게 된다.  한 민족이지만 분단되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우리 나라는 자연히 돈을 국방비에 많이 쓸 수밖에 없다. 그 러나 통일이 된다면 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국방비가 줄어들어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 또는 불우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비로 쓰일 수 있게 된다. (중략)

     통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경계심 같은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북한도 우리와 피가 섞인 형제이다. 단지 말과 문화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낯선 사람 보듯이 경계를 하거나 거리를 두고 본다면 통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같은 민족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 가족과 친해지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과 다르다고 해서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과 맞춰가며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통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신의 마음가짐부터 고쳐 통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금강산을 견학하고 북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평양과 개성을 넘나드는 그런 행복한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글짱: 논술이라기보다 `느낌글' 같은데요?

     글샘: 그렇지. 학교숙제로 썼다고 하더군. 그러기에 논술로 보기엔 글의 형식이 어색할 거야. 논술로 가기 전 단계의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살펴보자꾸나.

     글짱: 짜임새는 있어 보이는데 `알맹이'가 없는 듯해요.

     글샘: 아마 중학 1학년 학생들은 이 글을 보곤 잘 썼다고 평할 거야. 그렇지만 글짱의 느낌처럼 `어디서 본 듯한' 내용으로 되어 있지. 어쩌면 중1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어. 대개 중3∼고3의 글은 지난주 예문처럼 `논지'가 들어 있지. 논리적으로 딱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논지에 걸맞은 내용을 적절하게 섞는 `기교'를 안다는 뜻이야.

     글짱: 만약 논술이라면, 어떤 부분이 미흡한 건가요?

     글샘: 글의 형식을 바꿔야 함은 당연하겠지. 글샘이 중간 생략한 부분은 `국방예산을 절약해서 북한을 도와주자'와 `통일이 되면 금상산 관광을 쉽게 할 수 있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 줄 수 있다'는 긴 내용이었어. 더 짧게 줄여야겠지. 그 대신에 자기 주장을 더 곁들이는 게 바람직하단다.

     글짱: `흔한 글감'은 과감히 포기하라는 말씀인가요?

     글샘: 맞아. TV에 나온 이산가족 얘기를 곁들였지만, 크게 와 닿지 않거든. 두루뭉술하게 써서 `누구나 아는 얘기'가 된 게 단점이지. 그래서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어 `흔하지 않은' 표현이나 인용을 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말하잖아. 글쓰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지. 그러려면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장을 펼 능력을 갖춰야 한단다. 그건 그렇고, 이번엔 글머리를 한 번 짚어볼까.

     《몇몇 외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 그렇다.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돼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글샘: 흔한 글감일 경우엔 새로운 글투로 다듬는 연습도 글쓰기에 도움이 된단다. 자, 한 번 바꿔 보자.


     `코리아'. 이 작은 나라를 지구촌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나라, 아니면 삼성이나 현대 등 해외진출 기업의 제품으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의 국민들은 역사 시간에 한국을 `전쟁의 나라'로 배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과 북으로 갈라진 세계 유일 분단국가'로 민족이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는 나라인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글짱: 그렇군요. 글맛이 훨씬 다르네요.

     글샘: 이번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큰 문제 통일.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그런 문제이다.》 라는 대목을 보자. 과연 세계가 관심을 가져줄까?
     결론 부분에 나온 `통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라는 대목과도 상충하고 있지. 오히려 이 대목에선 `민족통일'은 우리 민족 스스로 해내야 할 과제라는 `전제'가 더 나을 성싶다. `남북문제 회담'이나 `맥아더 동상 철거문제'(지난 9월 26일 경남신문 NIE지면 참조)를 글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얼개를 짜 보면 아마 다음과 같은 식이 되지 않을까?

     (6자회담이나 맥아더 동상 철거문제에 관한 내용을 언급한 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맥아더 동상 문제처럼 동상을 철거한다고 우리의 과거가 한순간에 바로잡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철거에 앞서 맥아더와 6·25전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바탕 위에 국민들을 설득하고 호응을 얻었을 때 국론 분열 없이 통일의 밑거름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라는 수치스러운 딱지를 떼기 위해선,  다소 더디더라도 국민의식의 통일부터 이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후 본론을 토대로 강력한 자기 주장으로 마무리)

     글샘: 기자들은 날마다 알찬 기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는단다. 기자도 이러할진대 공부하는 학생들이야 오죽하랴. `흔한 글감'을 뛰어 넘는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뿐이야. 쉽지는 않지만 조금씩 실천해보려무나.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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