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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⑧고추장의 고장 전북순창

  • 기사입력 : 2005-10-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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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에선 강아지가 뛰놀고 멍석엔 빨간고추 널려있는

      아~ 마음의 고향


      물 좋고 산 좋은 순창으로 떠나는 순례는 여행이 아니라.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다.
      처음 고향을 떠난 이후 100번을 넘게 다녀와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이지만. 그래도 고향 가는 길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걸렸던 길이 지금은 3시간 남짓하면 고향 땅에 닿을 수 있으니. 강산이 세번이나 변했을 세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순창읍내로 들어서니 미리 약속을 했던 순창군청 문화관광과 정영호(37)씨가 휴일인데도 순창객사 앞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남근석·장승 등 곳곳에 공동체 문화유적

      60여호 농가가 옹기종기 '고추장 민속마을'

      수채화 같은 풍경들이 손짓하는 '강천산'

      [순창읍내]
      군청 옆에 있는 순창객사는 조선 영조 35년(1759)에 건립된 관사로 고종 9년(1905)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이 다음해 6월 의병을 일으켜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 만이 남아 있다.

      순창은 전체적으로 보면 산지나 구릉이 더 많고 군데군데 얼마간의 들판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유난히 풍성한 농업 생산력을 기원하는 남근석과 입석. 장승 등의 마을 공동체 문화유적이 두드러진다. 순창읍 북쪽 충신리와 남계리에는 남녀 돌장승이 있다. 순창읍의 경우에는 풍수상 북방이 허하기 때문에 북쪽으로 빠지는 물길에 숲정이나 당집과 남녀 장승을 세웠으나. 지금은 장승만 남아있다.

      남계리 돌장승은 북쪽을 향해 서서 북쪽의 허한 지세를 보완하도록 하였다. 각을 살짝살짝 죽인 높이 1.8m가량의 사각 돌기둥에 눈초리가 아래로 처진 듯한 긴 눈과 눈썹. 곧은 코. 입을 새기고 있다. 목에는 부처의 목처럼 삼도가 있고. 두 손의 표현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어 민초들의 염원을 담았던 미륵신앙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원래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먹코를 한 무서운 얼굴인데 남계리 장승의 얼굴은 장난기 어린 소년의 모습처럼 순하게 보인다.

      걸음을 옮겨 순창여자중학교 본관 건물 뒤로 돌아가면 보물로 지정을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유형문화재 제26호 순화리 3층 석탑이 있다. 원래 탑을 세울 당시에는 기단이 2층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이 땅속에 묻혀 위층 기단만 땅위로 드러나 있고. 그 위로 3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이 쌓여 있다. 탑이 서 있던 터에서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당시의 옛 절터로 추측하고 있다.

      [전통 고추장 민속마을]
      담양 방향으로 오리쯤 발걸음을 옮기면 순창읍 백산리 265. 순창의 대명사 전통 고추장 민속마을이 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왔을 때 순창이라고 대답하면 물어보는 사람마다 고추장의 명성을 빠뜨리지 않는다. 순창 고추장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만일 동안 구림면 안정리 337 만일사에서 기도를 하였다는데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무학대사를 찾아오던 이성계가 순창 어느 농가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가 왕이 된 후 진상하게 했다는 내력이 있는 비석이 만일사 경내에 있다.

      고추장 민속마을은 2만5천여 평의 부지에 3년간의 공사 끝에 1997년 60여 호의 농가가 들어서 있다. 질서정연하게 서있는 기와집들을 보면 강아지가 뛰놀고 사립문 너머 멍석에는 빨간 고추가 널려있는 초가집의 고향마을 같은 모습을 꿈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팔덕면 남근석]
      793번 도로를 따라 팔덕면으로 접어들면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은 가로수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마치 초록색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팔덕면 소재지에서 1.3km 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묵은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선 둔덕에 싱싱한 산동리 남근석 1기가 서있다. 높이 1.9m의 남근석 표면에는 가장자리가 말린 연잎과 연꽃 봉오리. 그리고 줄기가 세심하게 돋을새김 되어 있어. 곧 터져 나올 듯 팽창된 힘을 은유한다.

      인근 창덕리에도 크기는 산동리 것보다 작지만 같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남근석 1기가 있다. 옛날에는 아들 낳기와 자손 잘 되기를 빌고 정월보름에는 굿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적한 농촌 마을이 한낱 고적한 느낌을 더하는 풍경으로 남아 있지만. 귀기울이면 도란도란 손 비비며 떠드는 웃음소리도 들릴 것 같고. 걸쭉한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는 곳이다

      [강천산 군립공원]
      순창사람들은 1981년 1월7일 전국 최초로 지정된 강천산 군립공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팔덕면 소재지를 지나면 비단결 같은 잔잔한 호수에 물안개가 피어나는 넓고 아름다운 강천호가 있다. 강천 호수로 흘러드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산세가 웅장하거나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계곡이 깊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강천산 초입이다.

      강천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강천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해발 583.7m의 강천산과 광덕산을 비롯하여 산성산은 연대봉. 선녀봉. 장군봉 등으로 이루어진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계절마다 산의 경관이 변하고 그 경관이 한결같이 수려하여 호남의 금강이라고도 부른다. 매표소에서 잠시 걸음을 옮기면 높이 40m. 폭 15m의 인공 병풍폭포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신발을 손에 들고 황톳길을 따라 2.5km 정도 신선교. 도선교. 금강교를 지나면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강천사가 깊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1596년) 때에 소실된 것을 선조 37년(1604년)에 소요대사가 중창했으나. 6·25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현 건물은 1959년 김장엽 스님이 대웅전. 관음전을 복원한 이후 5층 석탑 1기와 함께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천사 계곡 건너편에는 조선 연산군 12년(1506)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당시 군수인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 문안현감 유옥 등이 단경왕후 신씨를 다시 왕비로 모시자는 상소를 올렸다. 이들은 관직에서 쫓겨날 것과 죽음을 각오하고 관직을 표시하는 도장을 소나무 가지에 걸었던 것을 비석에 새긴 삼인대가 있다. 

      [나의 고향 쌍치]
      국도 21번을 따라 괭이와 삽으로 개통시켰다는 밤재를 넘으면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폐차 직전의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 고개를 힘겹게 넘어 가는 것을 보고 함께 갔던 동료직원은 창문으로 손을 내미니 억새가 잡혔다고 하였다. 6·25전쟁 당시만 해도 30여 개의 제사가 한 동네에 있는 등 수난의 땅이었다. 지금은 수난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복분자 재배단지를 만들고 농사를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지척에 있는 금성리 피노마을은 평등세상을 열망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최고 지도자 전봉준이 동료의 밀고로 붙잡힌 역사의 현장이다. 평생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막내 동생 심재걸(46)이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고향마을 앞 섬진강 상류 추령천에 실어보내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맛집]
      순창 여인들의 맛깔스런 음식 솜씨와.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고추장. 간장 맛이 뛰어나다. 전통고추장 불고기. 3년 이상 숙성된 각종 장아찌 등으로 차려진다.
      ▲남원집(063--653-2376) 반찬 80여 가지. 6인분 기준: 9만원.

      ▲민속집(063-653-8880) 반찬 약 25 가지. 2인분 기준: 1만6천원.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 회장·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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