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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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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24) 숙제와 논술

  • 기사입력 : 2005-11-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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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샘: 오늘은 학교에서 내주는 글쓰기 과제에 관해 얘기해 보자꾸나. 아마 초등 4학년에서 중학 3학년생까지는 그런 과제를 많이 해봤을 거야. 특히 `보훈의 달 글짓기'나 `통일 글짓기' 같은 게 기억날 걸.

     글짱: 네. 저도 중학교 1학년 때 `남녀평등 글짓기' 숙제를 하느라 밤새 끙끙대며 고생한 기억이 나요.

     글샘: 숙제하는 처지에선 괴로웠겠지만 그런 과제를 하는 과정이 논술공부에 도움된다는 걸 지금쯤 알겠니?

     글짱: 아뇨. 정말로 쓰기 싫어서 억지로 쓴 숙제 같아요.

     글샘: 허허∼. 솔직해서 좋구나. 그러나 이젠 논술도 공부의 하나가 된 시대니 어쩌겠니. 글쓰기 숙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기초'를 익혀두는 게 바람직하겠지. 그럼 `양성평등 글쓰기'를 예로 들어 글쓰기 숙제를 알차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자.

     어느 중학 1학년 여학생이 쓴 글 중에서 잘 쓴 대목과 어색한 부분을 골라 하나하나씩 짚어보면서 설명해 줄게.


     ■우리나라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1조 1항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라고 되어 있다.

     글샘: 글머리 부분이야. `무엇을 첫 문장으로 내세울 것인가'하는 고민을 잘 해결했어.
     양성평등이란 주제의 실마리를 `헌법에 보장된 평등'으로 끄집어 낸 점을 높이 평가하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넌 남자니까 남자답게 씩씩해야지! 넌 여자니까 여자답게 얌전해야지!” 라고 하며 남녀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방해를 한다.

     글샘: 이 문장은 허술해. `남녀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방해'라는 어구가 비문(非文)이지. 글샘이 바꿔 볼게.

     [하지만 사람들은 “넌 남자니까 남자답게 씩씩해야지! 넌 여자니까 여자답게 얌전해야지!” 라는 말을 예사로 한다. 이런 말은 이미 남자와 여자의 능력에 차별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우리의 능력을 무시하여 불편함을 겪거나 차별받는 일이 다반사이다.

     글샘: 여학생이 쓴 글이지만 논술에선 이럴 땐 `우리'라고 쓰는 게 아니야. `여성'이라고 써야지. 다듬어 볼까.

     [여성의 능력을 무시함으로써 불편을 겪거나 차별받는 일이 요즘도 여전하다.]

     
     ■또 여성은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지 않아 중요한 일들은 남성이 맡게 되어 버린다.

     글샘: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보태어 썼으면 해. 이 문장에 이어 [우리나라 국회의원 271명 중에 여성이 16명밖에 안 되고, 여성장관도 4명에 불과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나마 예전보다 훨씬 늘어난 것이다.]라는 대목을 넣으면 훨씬 명확하잖아.

     ■이런 일들은 무슨 일이 더 잘났고 무슨 일은 더 못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과 남성은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런 이유로 남녀를 절대 차별해서는 안된다.

     글샘: `여성과 남성은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런 이유로 남녀를 절대 차별해서는 안된다'라는 표현은 좋아. `차이'와 `차별'의 개념을 잘 활용해서 쓸 수 있는 글감이니까.
     
     ■양성평등적인 국가, 남녀 차별이 없는 국가가 되려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여러 분야에 일을 참여 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미용사를, 여자가 자동차 정비사를 한다고 하면 반대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선들에 상관없이 자기가 흥미가 있고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업이라면 능력과 소질을 마음껏 발휘해서 즐겁게 직업일에 참여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성 역할을 고정관념 속의 좁은 범위가 아닌 새로운 생각에서의 넓은 범위로 넓혀가야 한다.

     글샘: 이 부분은 내용이 산만해. 핵심 내용만 살려 간결하게 정리하는 게 좋아.

     [남녀차별이 없는 양성평등 국가가 되려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각 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제도가 보장되어야 한다. 미용사나 자동차 정비사라는 일은 남녀의 역할이 따로 정해진 직업이 아니다.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이라면 능력과 소질을 마음껏 발휘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열린 생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제는 옛 시대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의 양성평등한 생각으로 바꾸어 남녀차별이 없는 선진국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글샘: 마무리 부분인데 좀 식상한 내용이지. 차라리 앞서 본론에 언급한 `여성과 남성은 차이만 있을 뿐이지`라는 부분을 자기 주장과 엮어서 마무리하면 훨씬 깔끔한 주장글이 됐을 거야. `양성평등'하면 떠오르는 신문기사엔 무엇이 있을까?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러 문제들이 기사로 나오잖아. 예들 들면, `호주제'를 폐지한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쓸 수도 있지.

     글짱: 멋진 표현을 많이 쓰라는 말씀인가요?

     글샘: 그건 아냐. 요즘 학생들이 과제를 위해 인터넷에서 게시물을 무비판적으로 베끼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하더구나. 글을 쓸 땐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써야 한단다. 특히 논술 같은 주장글에 자기 생각이 안 담긴 글은 죽은 글이나 다름없거든.
     예문을 쓴 여학생은 `아직 중학생이기 때문에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에 담긴 얘기를 쓴다'고 자신감 있게 밝혔어.
     청소년기의 글쓰기엔 이런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하단다.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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