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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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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⑫ 물레방아 고을 함양

  • 기사입력 : 2006-0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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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솟을대문 정여창 고택 조선시대 건물모습 그대로

      안의초등학교엔 박지원 사적비

      농월정 불탄 화림동 계곡엔 동호정·군자정·거연정 남아


      어느새 나보다 키가 훌쩍 더 커버린 아들과 함께 떠나는 답사 길은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여행이란 목적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함께 가는 사람이나 여행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향기가 있는 사람이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육십령을 거느린 덕유산과 지리산의 두 줄기가 잦아드는 곳에 병풍을 두른 듯 자리 잡은 함양은 큰 산에 계곡이 깊어 화림동 계곡과 용추계곡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은 남계천을 만들고. 위천과 엄천강이 만나 경호강을 만들어 낸다.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승안사 터]

      산청에서 거창 방향으로 국도 3번을 따라 수동면 소재지를 지나면 남계천이 앞으로 흐르는 수동면 원평리이다. 이곳에 정여창을 배향하는 남계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서원입구에 들어서면 근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화강석 추모비가 있는데. 평생 선비로 살았던 선생의 뜻과는 멀어 보였다. 몇 걸음 들어서면 홍살문과 하마비가 나란히 서있고. 그 뒤로 풍영루가 한겨울인데도 정문을 겸해 당당히 서있다.

    (사진 위에서부터 남계서원 풍영루, 연암 박지원 사적비, 학사루)

      정여창은 연꽃을 좋아해서 재실의 이름도 ‘애련헌’이라고 하고. 앞뜰 귀퉁이의 연못에도 연꽃을 심었다. 풍영루에 오르면 연꽃을 비롯한 갖가지 꽃무늬 장식과 그림을 볼 수 있다. 남계서원을 나와 소담스런 마을길을 잠시 돌아가면 지척에 김종직의 제자로 조선 초기 학자이며 언관을 지냈던 김일손(1464~1498)을 배향하는 청계서원이 있다. 순종 1년(1907)에 지었다. 정면은 단층 팔작지붕으로 구경재와 동서재가 있고. 솟을삼문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

      겨울바람이 차가운 서원을 뒤로 하고 5리쯤 안의 방향으로 가면 도로공사가 한창인 곳에 승안사 터 임시 안내판이 있다. 간판을 왼쪽에 두고 우회전하면 파란 기와집 제각이 있는 옆으로 승용차 한 대가 통과할 수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있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호젓하고 가파른 길을 1km쯤 가면 대낮에도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민가 옆에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석조여래좌상 뒤로 20m쯤 건너편 밭 가운데에 보물 제294호 승안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불상은 높이가 2.3m쯤 되는 거구로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고 하체가 땅속에 묻혀 있다. 근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보호각은 답답해 보였다. 고려 초기의 양식을 띠고 있는 삼층석탑은 기단과 탑신부에 불상. 보살. 비천 등이 차나 꽃을 공양하거나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새겨놓았다. 삼층석탑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남계천이 보일 듯 말 듯한 능선에 정여창 묘소가 있다. 원래는 이정표가 있었으나 묘지 앞에 있던 석양(石羊)을 훔쳐가는 바람에 안내판이 없어져 버렸다.

      [연암 박지원 사적비. 허삼둘 가옥]

      화림동과 용추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금호천을 만드는 안의교를 건너면 광풍루가 있다. 정유재란(1597)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선조 34년(1601)에 복원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팔작지붕 겹처마로 조선시대 건축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안의면 소재지 안쪽으로 들어서면 안의 초등학교가 있다. 이 자리는 옛날 안의현(縣)청이 있던 곳으로 실학사상가 연암 박지원이 55세 되던 1792년 현감으로 부임해 5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그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40여 편이 이곳에서 쓰여 졌고. 자연과학의 지식을 이용해 실생활에 적용되도록 실험을 한 곳이다. 함양군의 상징물인 물레방아는 박지원에 의해 용추 계곡에서 최초로 실용화 되어 그곳에 물레방아 공원이 가꾸어져 있다.

      사적비만 남아 있는 교정을 나서면 정겨운 낮은 돌담장과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중요민속자료 제207호 함양 허삼둘 가옥이 있다. 갑오개혁(1894)으로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시기에 지어진 주택으로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던 안주인의 의견이 평면 구조에 많이 존중되었다. ㄱ자형 안채의 꺾인 모서리 부분에 부엌이 들어서 있다. 부엌으로 드나드는 통로에 설치한 시렁과 선반이 매우 실용적이다. 그러나 안채와 사랑채가 화재로 내부가 불에 탄 채 방치되고 있어 아쉽다.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

      심란한 마음을 뒤로 하고 26번 국도를 따라 육십령 방향으로 여정을 잡으면 골이 넓고 물흐름이 완만하며. 기암괴석 사이를 굽이굽이 돌면서 작은 소를 만들기도 한다. 계곡물이 너럭바위를 만나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놓은 곳에 8담 8정이 있었다고 하나 최근에 농월정마저 화재로 소실되어 버리고.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만이 옛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계곡 초입에서 반겨 주었던 농월정은 사진에 남아 있고. 황량한 겨울바람을 받고 서있는 소나무들이 장대주춧돌만 내려다보고 있다.

      한 굽이를 돌아가면 임진왜란 때 황석산성에서 순국한 사람들을 기리는 황암사가 있고. 5리쯤 더 올라가면 냇물 가운데 바위섬으로 넓게 펼쳐진 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동호정이 노송에 둘러싸여 있다. 커다란 통나무의 한 면을 도끼로 파서 나무의 자연스런 맛을 살린 계단이 눈길을 끈다. 동호정에서 1km 쯤 더 오르면 또 하나의 선경이 펼쳐지며 들쑥날쑥한 바위섬에 자연스럽게 높낮이를 맞춘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누각 거연정이 사뿐히 자리하고 있다. 거연정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철재가 아닌 통나무였으면 더욱 운치가 있겠다. 50m 아래쪽에 조선 성종 때 대학자 정여창이 찾아와 시를 읊었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 이름 지은 정자가 있다.

      [정여창 고택]
      안의에서 국도 24번을 따라 함양으로 10km쯤 가면 지곡면 개평리에 중요민속자료 제186호 정병호 가옥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이정표를 보고 개울을 건너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알통이 솟아오른 사과나무 과수원 사이로 솟을대문이 보인다. 곡선으로 굽어진 담장을 따라 막돌로 포장된 길을 따라가면 높은 솟을대문 집이 정여창 고택이다. 3천여 평의 너른 대지 위에 사랑채. 안채. 별당. 가묘. 곳간 등 크게 5개 공간이 샛담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대부분 조선후기 건물이다.(사진)

      솟을대문에는 정려를 게시한 문패가 다섯 개나 걸려있어 집안의 내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대문을 들어서서 사랑채에 앉으면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집주인의 높은 안목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사랑채 앞마당은 돌을 모아서 산과 골짜기를 만들고 갖가지 나무를 조화롭게 심어 집터에 달린 숲처럼 꾸몄을 터인데 지금은 옛 모습이 많이 변해 있다. 각 방문 앞 댓돌 위에는 하얀 고무신이 한 켤레씩 가지런히 놓여있고.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추녀 밑 풍경소리만이 격조 높은 고택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함양 석조여래좌상. 학사루. 함양 상림]
      짧은 겨울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어 함양읍내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분주했다. 함양중학교 화단에는 전체 높이가 4m가 넘는 석조여래좌상이 서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 이곳은 절터였다고 하며 전체적으로 마멸 정도가 심하다. 읍내를 지나다 보면 군청 앞에 1498년 발생한 무오사화의 불씨가 되었던 현판이 달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학사루가 있다.

      최치원이 함양태수를 지낼 때 이곳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숙종 18년(1692)에 중건하였다. 학사루에서 1.4km쯤 백운산 방향으로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으로. 신라 말 함양태수였던 최치원이 홍수를 막기 위해 위천 주변에 둑을 쌓고 심었던 나무들이 퍼져서 10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무성한 천연기념물 제154호 상림이 있다.

      TIP. 맛집
      금농: 함양읍 교산리. ☎055-963-9399. 아낙꽃게(아구+낙지+꽃게)찜 3인용 2만5천원. 매콤하며 알싸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안의 원조 갈비: 안의면 당본리. ☎055-962-0666. 갈비찜 3만원. 갈비탕 7천원. 함양. 거창 지역에서 키우는 축산물을 사용한다.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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