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심강보의 논술탐험] (31) 인터넷 글의 두 얼굴

  • 기사입력 : 2006-02-20 12:10:00
  •   
  • 편견을 버리면 세상이 보인다?

     글샘: 지난주 신문기사 중에 `공부할 때 자주 쉬어 주면 학습 능률이 오른다'는 미국 MIT공대의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끌었어.

     글짱: 정말 그래요?

     글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때 두뇌는 마치 `되감기'버튼을 누른 비디오처럼 뒤로 돌아가 학습내용을 반복한다고 하더구나.

     글짱: 오∼예! 오늘 논술탐험도 쉬어야겠네요.

     글샘: 우려했던 상황이군. 어떤 정보를 얻으면 제대로 받아들여 활용해야지, 꼭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게 문제란 말이야. 벼락공부는 효과가 없다는 게 기사의 행간에 숨겨져 있잖아. 2주 동안 논술탐험을 쉬었는데도 또 쉬자고? 그건 안 되지. 그 대신 오늘은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소재를 다뤄 보자꾸나. 자, 그림 ①을 보거라.

     글짱: 헉. 아니 이렇게 야한 그림이 논술공부 소재라고요?

     글샘: 허허. 왜 야하다고 생각하지. 논술도 마찬가지야. 편견을 갖고 글을 쓰면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쉽거든. 이제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두 가지 글을 예로 들거야. 이 그림을 소재로 한 글이지. 원문은 조금 길기 때문에 간추려서 소개할게.

     
     [인터넷 글 예문 1]

     푸에르토리코의 국립 미술관에는 수의를 입은 노인이 젊은 여성의 젖을 빠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딸 같은 여자와 부적절한 행각을 하는 듯한 이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불쾌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그림이 정말 3류 포르노인가?

    <사진 : 인터넷에 떠도는 화제의 그림 ① (위 사진)과 루벤스의 작품 `Roman Charity' 그림 ② (아래).>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독재정권은 노인을 감옥에 가두고 `음식물 투입 금지'라는 형벌을 내렸다. 노인은 서서히 굶어 죽어 갔고,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딸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감옥을 찾았다. 뼈만 앙상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생명이 위태로운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운가. 딸은 가슴을 풀었고, 자신의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렸다.

     `노인과 여인'은 부녀간의 사랑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을 놓고 사람들은 포르노라고 비하하기도 하고 명작이라고 격찬도 한다. 이 그림에 깃든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 속에 담긴 본질을 알고 나서는 눈물을 글썽인다. 사람들은 가끔 본질을 파악하지도 않고 비난의 화살을 쏘는 우를 범한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 편견을 버려야만 세상이 보인다.

     
     글짱: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정말 가슴이 뭉클한 얘기네요.

     글샘: 그러면 다음 글을 보거라.

     
     [인터넷 글 예문 2]

     `노인과 여인' 그림을 다룬 감동적인 글이 사이버 공간에서 유행이다. 그러나 진상은 이렇다.
     감옥에 갇혀 굶어 죽게 된 아버지를 딸이 자신의 젖을 먹여 살려 냈다는 내용은 맞다.

     문제는 이 일화의 배경이 현대의 푸에르토리코가 아니라 고대 로마시대라는 점이다.
     막시무스가 쓴 `Facta et dicta memorabilia'에 실려 있는 얘기로, 아버지의 이름은 시몬(Cimon), 젖을 먹인 딸의 이름은 페로(Pero)라고 한다.
     딸의 숭고한 행동에 감동한 당국은 결국 아버지를 석방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라고 부른다. 고대 로마에서 벽화로도 많이 그려질 정도로 인기가 있었으며, 르네상스 시대부터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을 보고 에로틱한 상상을 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정답이란 없으니.
     이 그림이 3류 포르노 작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카리타스 로마나'를 보고, 푸에르토리코 운운하는 왜곡된 해설이야말로 더 큰 잘못이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한 박물관(Rijksmuseum)에 있는 루벤스의 `Roman Charity'란 1612년 작품이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 라는 말은 엉터리 해설을 하는 인터넷 논객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말이 아닐까?

     글짱: 아니, 웬 반전이에요? 두 글 중 어느 것이 진실인가요?

     글샘: 두 번째 글이 신빙성 있다고 봐야지. 글샘이 원문을 간추려서 그렇지, 작품이 소장된 박물관 이름이나 인용한 원전의 출처 등을 명시하고 있는 탄탄한 글이거든. 나도 박물관 사이트에 들어가 봤는데, 글의 내용과 거의 맞더구나.

     글짱: 거의 맞다니요? 확실한 게 아니고요?

     글샘: 완벽한 글쓰기란 쉽지는 않거든. 엄밀히 말하면 루벤스의 작품은 그림 ②야. 또 다른 인터넷 논객의 글에서도 그림 ①은 비슷한 작품일 뿐이라는 내용을 볼 수 있었지. 두 그림을 비교해 보거라.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도 `야함'의 수위에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루벤스의 작품인 그림 ②는 훨씬 점잖게 그린 것 같지 않니?

     글짱: 제가 뭐라고 답하긴 조금 그렇네요.

     글샘: 아무튼 오늘 논술탐험의 초점은 그림감상이 아니라 본질과 시각의 문제야. 물론 지금까지 얘기만으로도 감을 잡았겠지만, 논술을 공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얘기해 주고 싶어. 대입 논술엔 그림이나 통계표가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대비해 놓는 게 좋지.
     특히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지만, 어설픈 정보가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독특한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논술글에 인용해 자기 논리에 맞추다간 낭패를 볼 수 있거든.

     글짱: 첫 번째 예문 같은 게 그런 경우겠네요.

     글샘: 교회 사이트엔 목사님이 `푸에르토리코식 일화'로 설교를 해놓은 글이 많아. 본질을 알고 인용하면 더 좋았을 텐데…. 논술에선 개념과 본질을 잘 알아야 논리있는 글을 완성할 수 있어. 또 독서가 중요한 건 누구나 알지만, 책 중에도 논술을 대비해 읽어 두어야 할 갈래가 있어. 그 중에서도 철학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지.
     어려운 서적은 대학에 들어가서 읽더라도 가볍게 다룬 `입문서' 정도는 중학생 시기부터 접해야 한단다. 철학과 논술에 관한 탐험은 다음 번에 다루기로 하자. 오늘은 이만. (편집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