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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 땅 순례 ⑬ 거창

  • 기사입력 : 2006-03-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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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따라 계곡 따라 문화유산들이…(금원산 사진 위)


      함양에서 3번 국도를 따라 거창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용원정. 낙수정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고. 아직 떠나지 못한 겨울의 잔설이 남아 있다.

     경남 최북단 서부지방에 자리 잡은 거창은 해발 1.614m에 이르는 덕유산을 비롯하여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사진 왼쪽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서다 보니. 주름처럼 겹쳐지는 곳에 깊은 계곡도 많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연을 누렸던 선비들이 곳곳에 누대와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금원산 자연 휴양림]

      마리면 삼거리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수승대와 금원산 휴양림 이정표를 보고 방향을 바꾸면. 맑은 위천이 함께 간다. 위천 건너편에는 영승서원과 시락정이 덕유산의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장풍교에서 3km쯤 금원산 품안으로 들어서면. 길목에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불상은 논 가운데 우뚝 서 있으며 원추형 광배를 구비한 독립형 불상으로 높이 365㎝. 넓이 130㎝의 화강석에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강남사라는 옛 절터에 서 있던 석조여래입상인데. 어떤 절인지 전해져 오는 기록은 없다. 불상은 연꽃 받침대(蓮花臺) 위에 서 있으며. 광배(光背)가 크게 표현되었다. 얼굴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어 그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금원산 자연 휴양림 주차장에 들어서니. 상천마을에서 왔다는 경종호(43세)씨가 골짜기 도로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다며. 부지런히 트럭에 체인을 감고 있다. 봄이면 산촌 사람들의 주 수입원이 되는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러 왔는데. 작년에 비해 날씨가 추워 고로쇠 수액이 많이 나오지 않아 걱정 이라고 한다.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휴양림 가는 길을 버리고 가섭암지로 가는 길은 즐겁다.

     맑은 물이 얼음장 속으로 졸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소나무가 울창한 계곡을 몇 번 건너면 커다란 문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사진 왼쪽 상동리 석조관세음보살입상, 양평동 석조여래입상)

     몇 해 전 겨울 방학 때 마산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우리 고장 문화재 알기 답사를 하면서 일부러 아이들에게 차가운 계곡물을 맨발로 건너도록 하였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매운 맛과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만나는 즐거움을 더욱 많이 느끼게 하고 싶었던 생각이 났다.

      문바위를 돌아서면 암자인지. 관리소 인지 알쏭달쏭한 작은 건물이 있다.

     가섭암지는 금원산과 현승산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있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불상을 찾아오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건물 옆에는 불가에서 중생의 근본 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계단이 이어져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 서 좁은 바위틈 사이를 지나면 마애불상이 새겨진 바위굴이 있다. 10평 남짓한 공간 한쪽 바위면 전체를 배(舟) 모양으로 파서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만들고 그 안에 삼존불입상을 얕게 새기고 있다.

     불상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못난이 삼형제를 보는 듯하다. 끝이 날카로워진 연꽃무늬 대좌(臺座)와 새의 날개깃처럼 좌우로 뻗친 옷자락 등은 삼국시대의 양식과 비슷하지만. 형식화되고 도식적인 요소가 보여 더욱 친근감이 있다.

      [동계고택]

      금원산 휴양림에서 찬바람을 뒤로 하고 위천면 소재지를 막 벗어나 강동 마을로 접어들면 중요민속자료 제205호 정온선생가옥(鄭蘊先生家屋)(사진) 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온선생의 호를 따서 동계고택이라고 흔히 부르는데. 남방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남쪽지방 거창에 뚜렷한 북방적 요소가 섞여 들어 평면구성이 우리 건축 문화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동계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곳간채. 뜰아래채. 가묘. 그리고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집안에 항상 훈훈한 온기가 남아 있다.

     그것은 14대 종부 최희(81) 할머니가 20년 전부터 굳건히 종가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동계고택 가묘에 도둑이 들어 출입문을 파손하고 도망갔다고 푸념을 하였다.

      [수승대]

      동계고택에서 위천을 건너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수승대(오른쪽 사진)이다.

     수승대는 백제의 사신들이 중대한 임무를 띠고 남의 나라로 떠날 적에는 반드시 거쳐 갔던 너른 반석을 말한다.

     본래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수송대 이었으나. 조선시대의 학자 퇴계 이황이 이 근처에 왔다가 시를 한 수 읊으며 수송을 수승이라 바꾸어 부른 이후 수승대라고 불렀다.

     수승대는 거창의 누대와 정자를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요수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관수루라는 누각이 있으며. 크고 잘 생긴 수승대라는 바위가 있다.

     거기다 구연서원이라는 배움터가 있으니 갖출 건 다 갖춘 셈이다. 여름이면 거창 국제연극제가 성황리에 열리니 수승대의 빼어난 절경 속에 낮에는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보며 연극을 관람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북상면 방향 수승대 상류로 여정을 잡으면 구불구불한 도로가 이어지다. 용암정이라는 작은 정자를 만나고. 정자가 끝나는 지점에 농산교가 있다. 농산교를 건너 소나무 숲 속에 꼭꼭 숨어있는 불상을 찾아가는 길은 미로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표지판만 보고 무조건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논길을 따라 가다. 소나무 숲을 헤치듯이 절골로 잠시 오르면 절의 자취는 흔적도 없는 야산자락에 맑고 복스러운 얼굴에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가득한 포근한 불상이 반겨준다. 보물 제1436호인 불상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거창읍내]

      건계정을 지나 읍내로 들어서는 거열산성 입구 강변에는 늦은 주말 오후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비켜가 상림리 들판을 지나 낮은 산자락으로 눈길을 보내면 상동 석조관세음 보살입상이 있다. 여러 고장을 수없이 답사를 다녔지만. 보물 제378호 상동 관세음보살입상 만큼 못생긴 불상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진 왼쪽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예전에는 까만 이끼가 끼어 있었는데. 지금은 세척을 하여 새 옷을 갈아입은 모습이다. 불상 주변이 유난히 깨끗한 것은 인근에 사는 윤우제하(71세)씨가 40년 동안 주변에 울타리처럼 나무를 심고. 관리를 해온 덕택이다. 불상 주변이 지저분하고. 풀이 자라면 마음이 개운치 않다고 하니. 불상과 윤 할아버지는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인가 보다.

      읍내를 가로 질러 가조면으로 가는 지방도로 1084번 원예농산물 간이 집하장에서 금융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보물 제377호 양평동 석조여래입상을 만난다. 전체 높이 3.7m의 거대한 석조상으로 따로 마련된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형태이다.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모자 모양의 천개(天蓋)는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거창박물관은 이 지역 독지가 두 사람이 평생 수집한 귀중한 자료들을 당국에 기증하고 직접 건립운동에 앞장서 1988년 5월 20일 거창유물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유물의 수는 약 1천200여 점이며. 대동여지도. 송림사지석조여래좌상. 정온선생 관복. 이보흠선생 실기책판 등이 있다. 둔마리고분벽화 모형 자료 등은 대부분 거창의 지역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 문화유산 답사회장)

      [맛집]
      ●구구식당: ☎ 055-942-7496 거창읍 대평리. 추어탕국수- 담백하고 구수한 맛
      ●원동별미갈비찜: ☎ 055-942-1850 거창읍 서변리. 갈비찜- 배즙으로 만든 특별한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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