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3일 (화)
전체메뉴

[유혜경의 NIE] (38) 키비처로 민주시민 거듭나기

  • 기사입력 : 2006-03-27 00:00:00
  •   
  •      어르신들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장소에 가면 항상 보게 되는 광경이 있죠. 바로 훈수 두는 사람 때문에 옥신각신하는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는 나이도 적잖은 분들이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다툰다 싶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꽤 심각한 문제인 셈이에요.

    남이 두는 장기판을 볼 때면 자기가 둘 때보다 판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왜 그럴까요? 냉엄한 승부세계에서 한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훈수꾼은 승패를 뒤바꾸어 버리는 훈수의 맛을 잊지 못해 계속 훈수를 두고. 당사자들은 훈수꾼의 뺨을 때리고 싶을 만큼 훈수꾼이 밉게 마련이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와 같이 훈수를 두고 참견을 하는 시민을 ‘키비처(Kibizer)’라고 해요.

    미국의 철학자 왈저가 고안한 개념이에요. 키비처는 사적 영역에서만 머물러 있는 ‘비(非)시민’과 저녁시간의 대부분을 사회에 빼앗기는 사회주의적 ‘열성시민’의 중간자에 해당해요. 대의제 민주주의는 수동적이고 무관심한 시민을 양산해 낸다는 문제점이 있어요. 그렇다고 요즘 사회에서 모든 시민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요하기를 강요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왈저는 키비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 거예요.

    자. 그럼 아까 훈수를 두던 훈수꾼이 바로 ‘키비처’의 역할을 하는 거겠지요. 어떤 일이 잘 진행되는 걸 보면서 ‘잘한다’고 칭찬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야단치는 사람. 야단을 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적극적인 개입자가 바로 ‘키비처’예요.

    오늘날 우리를 흔히 ‘시민’이라고 불러요. 어떤 지역. 사회. 국가에 살아가는 사람들 일반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순한 명칭쯤으로 여기고 있어요. 하지만 시민은 특별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개념이며 이 형성과정을 돌아보면 시민이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시민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근대국가를 탄생시킨 주역이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사회의 주체로서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줄곧 스스로 노력해 온 존재예요. 멀리 보지 않더라도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치게 만든 것도 시민들의 노력이에요. 그리고 월드컵 때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것도. 월드 클래식 야구에서 신나는 응원으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한 것도 시민들이죠.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시민의 지위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고통에 애써 관심을 갖지 않으며 스스로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라며 위안을 삼고 있어요.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사적 이윤의 무리한 추구에서 비롯된 것들이에요. 오늘날 중산층을 지향하는 우리의 머릿속에는 어두운 중세를 밀어내고 자유. 평등. 박애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부르주아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물질적 풍요라는 부르주아의 얼굴만 남아 있어요.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사회에 경제적 시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예요. 바로 정치적 의미의 시민이 또 다른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어요. 투표를 할 수 있는 그리고 미래에 해야 하는 우리는 다 정치적인 시민이에요.

    요즘 우리사회는 국무총리 인준문제. 서울시장 비리 의혹. 최연희 의원 문제. 5·31 지방선거를 향한 정치권의 행보 등 많은 정치적 문제가 있어요. 정치시민으로서 ‘키비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해요. ‘정치는 왠지 싫어’ ‘정치가 왜 만날 저모양이야?’ ‘세상은 참 불공평해’라고 불만만 늘어놓는다고 바뀌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몸으로 느끼면서 자라난 세대이며. 대통령도 잘못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세대이며.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세대예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입을 앙다물고 죽어 있는 민주주의를 살리자고 거리를 나서지는 않지만 대신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즐기는 세대이고요.

    총과 칼이 아니라 날카로운 댓글이나 끝장을 보는 토론. 누구의 명령과 지시도 받지 않는 자발적인 참가의 모습도 다른 누구도 아닌 여러분의 모습이에요.

    ‘키비처’는 느끼는 만큼. 아는 만큼 먼저 실천하고 참여하는 시민이에요. ‘키비처’는 국가와 사회의 주인임을 선포하는 시민이에요. 우리 시회의 주인. 키비처를 구합니다!

    [이야기 나누어보세요]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요? 쉽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이야기 하려고 하면 ‘그냥요’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기본적인 용어와 성립 과정. 특히 시민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사하여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2. 우리나라의 시민형성 과정을 조사하고 문제점은 없는지 비판해 보세요.
    (예: 대한민국헌법에는 시민이라는 말이 없다?)

    3. 최근 새만금 간척사업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어요. 하지만 새만금 사업은 환경과 경제라는 논리보다 정치적 논리가 강한 사업이에요. 노태우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공약에서 출발했으니까요. 새만금과 관련된 기사를 스크랩하여 정리하여 보세요. 그리고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공약에 대한 비판이 많아요. 매니페스토운동과 연결하여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4. 이해찬 국무총리가 비리의혹과 관련하여 사퇴를 한 상황이에요. 새 국무총리에 거론되고 있는 후보를 조사하여 우리만의 인사청문회를 먼저 가져 보세요. 우리가 판단한 것과 정치인들의 판단을 비교하여 잘못된 점을 비판하여 보세요.

    5. 참여정부의 새로운 정치스타일로 책임총리제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국정 운영을 총리와 나누어 총리에게 힘을 실어 주는 정치라고 할 수 있어요. 대통령 권력분산과 책임총리제에 대해서 알아보세요.

    6. ‘키비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신문을 보세요. 그리고 시끄러운 곳을 찾아가 보는 거예요. 오늘 가장 시끄러운 일이 무엇이지 파악하여 관심을 가지세요. 신문마다 어떤 입장으로 이야기 있는지 알아보세요. 그리고 논쟁의 대립점을 찾아보세요. 그 대립점이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일 거예요. 나는 어떤 생각인가요? 나와 비슷한 관점을 찾아 정리해 보세요.

    여기까지는 우리가 많이 하는 거예요. 하지만 ‘키비처’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나의 견해를 밝히고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며 적극 참여하는 거예요. 댓글 달기. 국회의원이나 정부 부처에 편지쓰기. 신문에 기고하기. 학교 내의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던 강의석군과 같은 1인 시위. 1인 홍보하기. 같은 생각을 하는 시민단체와 연계해 보기 등 아주 많지요. ‘키비처’가 되기를 포기하는 순간 정치와 행정은 제멋대로 흘러가는 거예요. 이런 사례들을 한 번 찾아보세요. 나의 참여로 바꿀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왜 키비처가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될 거예요.

    7. 최근 태국의 총리 탁신이 기업비리와 연관되어 정치는 물론 나라 경제까지 위험한 상황이에요. 정치와 나라의 경제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어보세요.

    유혜경(부산·경남 NIE연구회 회장)
    ▶약력 : 한국NIE협회 부산·경남 책임강사 / 신문방송학 석사 / 동아대·신라대 사회교육원 출강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