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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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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글 마당] 타임캡슐

  • 기사입력 : 2006-1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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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등부 최우수상>
    타임캡슐-  성영준 (마산 양덕중 3년)

    바스락~. 바스락~. 걸을 때마다 들리는 소리. 그것은 노란색. 빨간색의 낙엽이 발에 깔려 아프다고 외치는 소리. 낙엽의 외침을 통해. 나는 비로소 가을이 도래했음을 느낀다. 세상이 푸름을 잃어 가고 있는 가운데. 나는 걷고 있다.

    낙엽이 깔린 길을 지나 밭이 펼쳐진 길이 나타났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농기계로 수확물을 거두어 가는 사람들과 떨어진 벼이삭을 먹는 새들이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다. 나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자그마한 초등학교.

    공을 차는 아이들. 내가 졸업한 이 초등학교는 바뀐 것이 거의 없다. 학교 건물을 한참이나 보고 나서 그 뒤편으로 걸어갔다. 학교 건물 뒤편에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홀로 있는 나무는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은행나무로부터 서쪽을 세 발짝. 나는 가방에서 삽을 꺼내 그 아래를 팠다. 삽 끝에 단단한 것이 부딪혔다. 나는 그것을 꺼냈다. 그것은 내가 10년 전 묻어두었던 타임캡슐. 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묻어두었던 것이다. 얼마 후 우리 가족이 이사를 하게 되어 도시로 나갔지만 이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쌓은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타임캡슐을 열었다.

    입학식 바로 전날. 학교에 가는 것에 들뜬 나는 어머니한테 몇 번이고 질문을 한 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갔다. 입학식 때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학생이 되었다는 것뿐. 첫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자기소개는 정말 짧았다.

    “안녕. 나는 영준이야. 잘 지내자.” 나의 자기소개처럼 1학년은 짧게 지나갔다. 그다지 특별한 일도 없었고 기억에 남아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3학년이 되어서 정수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정수와 논 기억일 정도로 정수와 친했다. 그러나 정수는 4학년 때 전학을 갔다. 정수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정수와 너무 친했기에 상실감도 컸던 것이리라. 4학년은 외로이. 아프게 지나갔다.

    5학년 때 학교에서 하루를 자는 행사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해 집에서 쓰던 이부자리를 학교에 들고 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침낭을 보았다. 둥글게 말려 있는 그 속으로 친구가 들어가는 것이 번데기 같아서 웃겼다. 불이 꺼진 학교는 무척이나 어두웠다.그 어두움은 귀신을 불러내는 것만 같았다. 친구와 함께 있었기에 나는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다.

    6학년이 되어서는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서해안도로를 달렸는데 가끔 해안과 가까워졌을 때는 바다가 보였다. 휴게소에 도착하면 여러가지 먹거리를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서울의 경복궁 등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수학여행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놀이공원에 간 것이었다.

    찰칵. 찰칵. 찰칵. 그리고 낙하. “으악!” 롤러코스터에 멋모르고 탄 나는 깊게. 그리고 오랫동안 후회를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는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졸업이 되었다. 6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마감하는.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의례를 졸업식 노래와 함께 통과했다. 새 봄이 오기 전. 아버지가 도시에 새로운 직장을 얻어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사귀었던 친한 친구들에게. 나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들께 편지를 썼다.

    “그동안 너무 즐거웠어. 다음에 또 만나자.” “저를 가르쳐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떠나기 전에 나는 나의 추억을 담은 타임캡슐을 학교 건물 뒤편 은행나무 밑에 묻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학교를 떠났다.

    타임캡슐 안에는 내가 학교에 다니던 그때를 회상케 하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 학교 미술시간에 그렸던 그림. 수학여행 갔을 때의 사진. 매일 매일 기록한 나의 일기. 그것들은 이미 빛이 바랬지만 학생이던 때의 추억은 생생하다. 학교는 나의 두 번째 부모님이었다. 학교는 나에게 배움의 장을 마련해 주었고. 만남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여러가지 지식은 나의 밑바탕이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기억은 나의 추억이 되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학교를 사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교가 싫어질 때가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학교라는 것의 참 의미를 알기에 이내 행복한 투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타임캡슐 안의 추억들을 나는 하나씩. 하나씩 보았다. 추억의 그리움에. 나의 눈은 촉촉해 졌다. 옛날을 생각한다. 지금을 생각한다. 미래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학교를 생각한다.

    나는 타임캡슐을 다시 닫았다. 다시 원래의 위치에 묻고 나서 학교를 나섰다. 운동장에는 아직도 공을 차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가 저 아이들을 만들고. 저 아이들이 학교를 만들겠지. 10년 후에도 이 학교가 남아 있어야 할텐데.

    <심사평> .........................................

    중학생 응모 작품들은 질과 양면에서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 백일장 등 많은 심사에 참여해 보았지만 이번 작품들은 단연 높은 수준을 보여 주었다. 솔직히 입상작 등위를 매기면서 상당히 고심했다.
    최우수작으로 뽑힌 성영준(양덕중 3년)의 ‘타임캡슐’은 신선한 소재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에서 단연 돋보였다.
    “바스락 바스락. 길을 걸을 때마다 들리는 소리. 그것은 노란색. 빨간색의 낙엽이 발에 깔려 아프다고 외치는 소리.” 라는 감각적 표현으로 첫 구절을 시작한다. 이는 독자를 자신의 글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된 장치다.
    원고지 13매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글을 지루하지 않게 이끄는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비어 있는 하얀 원고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느낌이다. 초등학교 때 묻어둔 ‘타임캡슐’을 통해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어제와 오늘을 관조하고 미래를 예감하는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맨 마지막 결구는 결코 중학생답지 않은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어 최우수상으로 뽑기에 손색없었다.
    대학입시에 논술의 비중이 커지면서 논술형 글쓰기가 하나의 전범인 양 잘못 인식되고 있다. 이런 획일적 사고가 글쓰기의 본질을 훼손시킬 우려가 크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소지가 있다. 글에 있어서 전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를 서정성의 옷을 입고 전달할 수 있고.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빌려와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좋은 글은 새롭되 생경하지 않아야 하고. 특별하되 자연스러워야 한다. 한편 한편이 다 다른 개성을 가져야 하고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도 사람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것이다. 응모한 작품들은 학생들 저마다의 개성이 보였다. 이 독특함을 하나의 것으로 묶는 시험은 자칫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심사를 하면서 새삼 느낀 점이다.

    심사위원 이달균(시인)·김홍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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